인간은 협력 양육하도록 진화한 존재…삶의 질 향상 정책 섬세하게 설계·집행해야
국내외를 막론하고 우리나라가 인구절벽을 너머 인구붕괴 조짐이 보인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고를 받게 된 데는 이미 한 세대 전 합계출산율(1983년 2.08명)이 인구대체수준 미만으로 하락하고 저출산 사회로 진입했음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가족계획 사업을 추진한 정부의 정책 실기가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정책은 타이밍인데 21세기 들어 합계출산율이 계속 감소하는 가운데 선진행정의 기본인 데이터 기반 정책구안을 간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초저출산국에 집입하는 1.3명 이하로 내려간 후에야 정책 의제화 해서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된 후부터 5년 단위로 부랴부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그런데 국회예산정책처가 2016년 말 발간한 저출산 대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차 기본 계획이 시행되는 2006년 이후 10년 간 80조2000억원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 부었음에도 초저출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2016년 말 행자부에서는 지자체별로 출산율 자율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 하에 가임기 여성 인구 수를 적시한 ‘가임기지도’를 발간해 성희롱 댓글이 달리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이어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저출산이 여성의 학력과 소득이 높아져서 나타난 비혼과 만혼 때문이라며 불필요한 스펙 쌓기 중단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간해 빈축을 샀다. 이 외에도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낙태라는 민감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상상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행복하고 잘 사는 게 중요해서 아이 낳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고 해서 위화감과 박탈감을 부추겼다.삶의 질 향상 정책을 섬세하게 집행하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기대치가 높은 데다 체면을 중시하고 경쟁적인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동기가 유발될 수 있도록 투자회임 기간은 길더라도 정책 목표와 가치는 명확하게 인구절벽 탈피에 초점을 둔 생애 단계별 맞춤 교육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종래 교육은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저출산을 야기하는 원흉으로 간주됐지만 사교육은 교육개혁으로 해결 가능한 교육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공교육을 내실화해도 학벌주의 관행과 학력 중시 고용 체계가 유지된다면 각종 사교육 문제는 교육의 탈을 쓴 공룡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회·정치·경제 문제다.인구절벽을 탈피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앎과 삶을 연결지으며 적합한 판단과 선택을 도와주는 생애 단계별 융·복합 프로젝트 학습을 도입·확대해야 한다. 요즘 전지구적으로 이상한 현대인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미래 노후 대책 때문에 오늘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희귀병에 걸린 현대인, 많은 것을 곁에 두고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이상한 현대인을 위한 실용적 가치관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사회선택 이론에 따르면 시스템 향상은 끊임없는 작업이다. 선진국 경제 성장에서 인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창조적 파괴가 가능한 포용적 제도가 관건이다. 미국에서 미혼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간호사가 방문해 고민을 청취한 가정의 아기가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언어습득도 빨랐으며 학대도 덜 당했다고 한다. 사회복지 정책을 수립할 때 미혼모 가정에 무조건 금전적인 혜택을 주기보다는 엄마의 양육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서적·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엄마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아기를 키우게끔 진화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 양승실 박사는…전문대학평가 인증위원, 고등교육정책학회 이사, 고용노동부 국가기술자격심의위원, 시도교육청 평가위원, 인사혁신처 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