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강조하며 실효성 없는 정책만 내놔 …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올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0명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정부 전망이 나왔다. 지난 7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출생아가 약 32만 명을 기록해 출산율이 1.0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무술년은 황금개띠해라 예전에 황금돼지해와 마찬가지로 예년보다 많은 아기가 태어날 수 있다면서 출산율 반등을 예측했던 연초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든 발표였다.도대체 한국의 출산율은 그렇게 소란스러운 대책과 대응에도 왜 올라가기는커녕 끝없는 내리막을 걷고 있는가. 이번에 새로 여당의 당대표가 된 이해찬 전 총리가 총리 재임 시절 최초의 저출산 종합대책으로 부부 둘이서 둘은 낳으라는 ‘둘둘 플랜’을 내놓은 것이 2005년의 일이다. 이후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정권은 바뀌었어도 저출산 대책은 거의 한결 같았다. 언제나 위기를 강조했고, 획기적인 대책을 이야기했고,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효는 거의 없었다.거듭된 대책에도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데 아이를 낳으라고 압박만 하니, 그나마 초기에는 저출산 위기론으로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환경이라도 개선될까 기대를 하던 여성들은 이제 어떤 대책을 내놔도 믿지 않게 됐다. 특히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라며 국가가 성과 재생산 문제에 개입하는 데 대한 젊은 여성들의 반발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지금의 저출산 대책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면, 이제는 더 이상 어떤 대책을 내놔도 통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다. 역효과나 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 된 것이다.이는 기본적으로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자체가 어떻게 해도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인구 지표를 관리하는 것은 근대 국가의 통치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출산과 같은 인구위기론을 사회적인 담론으로 가져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출산율을 높인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고 나면 결국 여성의 건강이나 인권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인공임신중단을 줄여 출생아의 수를 늘여보겠다는 조치에서 발단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다.여성운동에서는 꾸준히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출산은 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일면 타당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정책 담당자를 설득할 때나 필요할 뿐, 사회적으로는 불필요한 말이다. 성평등은 애초에 출산율을 높인다는 과제와는 독립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생애주기 내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을 제거하는 데 저출산 위기론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청년들을 위한 주거복지를 제공하고 고용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문제도 어차피 그 자체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들이다. 여성의 출산을 문제의 근원으로 본다는 비판을 받는 출산율이라는 용어 역시 정책에 혼선을 줄 수 있다. 가임기 여성이 줄어드는 현실에서는 출생아가 줄어드는 데도 합계출산율은 올라가는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이제까지 정부는 저출산 위기론을 이야기하면서 보통의 시민들이 실제로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개선하기보다는 출산을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여성시민이 다해야 하는 의무로 규정하고 보수적인 가족가치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저출산이라는 틀은 이제 그 자체로 수명을 다했다.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과제들은 출생률을 높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각각의 문제들을 잘 풀어가다 보면 출산이 늘어날 가능성은 있다. 그러니 한국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 그 이상의 저출산 대책은 없다.
※ 백영경 교수는…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영국사를 공부했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 인류학과 석사·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