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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社名) 변경의 경제학] 글로벌 이미지-사업 다각화 부각의 선봉장 역할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불리하면 떼고 유리하면 유지… 사명 하나에 기업가치 ‘오르락내리락’

모든 사람에게 이름이 있듯, 모든 기업에도 이름이 있다. 사명(社名)이다. 이 사명만 잘 알아도 때론 돈이 보인다. 해당 기업이 어떤 방향성(전략)을 갖고 움직이는지, 시장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 과거엔 어땠으며 미래엔 어떤 모습일지 윤곽을 나타내는 역할을 해서다. 특히 기존에 있던 사명을 변경하는 경우야말로 기업 입장에선 산업계 전반은 물론 소비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경영상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안내하는 의미와 같다. 그 과정에서 실적이 요동치기도, 주가가 출렁이기도 한다.


▎사진:gettyimagesbank
사명 변경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실적 부진에 따른 침체된 분위기의 반전을 위해(보타바이오→카테아→위너지스, 최근 상장폐지), 혹은 다른 기업에 인수되면서 바뀐 소속을 시장에 알리기 위해(하이닉스→SK하이닉스 등) 사명을 바꾸는 경우가 많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예컨대 기업은 당초 기대치보다도 크게 성장하면서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성이 커졌을 때, 바로 이 사명 변경의 카드를 꺼내든다.

대표적인 예가 LG그룹이었다. 1947년 설립된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이 그룹의 모체인 LG는 이후 ‘금성사(현 LG전자)’를 세워 가전제품 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여기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기업 규모가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치약과 비누 같은 기초화학 분야 생활용품 제조사로 출범했던 기업이 순식간에 각종 가전을 글로벌 시장에 내다파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화학 업종에서도 동반 성장하고, 다른 분야에까지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럭키→럭키금성→LG’ 차례로 이름 바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왼쪽)이 2016년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에서 열린 ‘글로벌 챌린저’ 발대식에 참석해 국내외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생전의 구 회장은 글로벌 시장 공략 강화를 위해 사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다. / 사진:LG그룹 제공
1970년대만 해도 럭키그룹(첫 사명에서 ‘락희’는 영단어 ‘럭키(lucky)’에서 비롯됨)이었던 사명을 1983년부터 럭키금성그룹으로 바꾼 것도 그래서였다(금성사도 1984년 럭키금성으로 사명 변경). 금성이라는 이름의 브랜드 파워가 기존 럭키와 나란히 할 만큼 커져서다. 그룹의 두 주력 사업 분야인 화학과 전자가 동시 반영된 이름으로 재탄생했음에도 충분치 않았다. 그만큼 회사의 성장세에 거침이 없었다.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 간 LG의 매출은 연평균 50% 이상 성장했다. 1995년 고 구인회 창업주와 그 아들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총수 자리에 오른 고(故) 구본무 회장은 이에 사명을 또 한 번 변경하기로 결심하고서 실행에 옮긴다. LG라는 사명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LG의 한 전직 임원은 “당시 럭키금성이라는 이름은 국내에서 이미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어 주변에서 사명 변경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다”며 “하지만 구본무 회장께서 글로벌 기업으로 대성(大盛)하려면 변경이 꼭 필요하다며 추진력 있게 (변경을) 실행에 옮겼다”고 회상했다. 해외 투자자나 소비자들이 기다랗고 발음하기 어려운 럭키금성보다 LG를 더 친숙하게 여길 것은 자명했다. 구 회장은 지금까지도 남아 LG를 상징하는 기업 로고 ‘미래의 얼굴’을 직접 최종 선택하면서 이런 사명 변경에 힘을 실었다. 이때의 사명 변경은 탁월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구 회장이 그룹을 이끈 23년 간 LG의 전체 매출은 연간 30조원(1994년)에서 2017년 160조원으로 5배 이상으로 커졌는데, 이 중 해외에서 발생한 매출만 1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11배로 급증하면서 국내 실적을 압도했다.

화장품 제조가 주력 사업인 아모레퍼시픽그룹도 비슷한 이유로 사명을 변경해 마찬가지로 크게 성공한 경우다. 1945년 설립된 ‘태평양화학공업사’가 전신인 아모레퍼시픽은 애초 태평양이라는 사명 하에 화장품 외의 많은 분야에서 오랜 기간 사업 다각화에 도전했다. ‘태평양증권’ ‘태평양전자’ ‘태평양물산’ ‘태평양패션’ 등으로 70~80년대 경제 호황기 국내 산업계에 유행처럼 번졌던 사업 다각화 흐름에 동참,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 다만 LG의 경우와 달리 사업 다각화 자체는 실패였다. 경영진과 그룹 인력 전반의 신사업에 대한 이해도 부족과 각 사업 간 시너지 효과 발생 실패로 본업인 화장품을 제외한 다른 분야 다수에선 적자가 발생했다. 1990~2000년대 들어서는 비(非)주력 계열사를 잇따라 매각하는 ‘선택과 집중’에 힘써야 했다.

이렇게 해서 모은 자금 대부분은 화장품 연구·개발(R&D)과 브랜드 마케팅 같은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데 투입했다. 그러는 한편 글로벌 화장품 시장 공략에 한층 전념했다. 사명을 한글인 태평양에서 2006년 영문인 ㈜아모레퍼시픽으로 변경(태평양이 인적 분할돼 신설 회사로 출범하면서 화장품 등 주요 사업을 전담)한 것도 글로벌 시장에서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1964년 일찌감치 화장품 브랜드 이름으로 도입했던 ‘아모레(이탈리아어로 ‘사랑(love)’을 의미)’와 기존 사명인 태평양을 뜻하는 영단어 ‘퍼시픽’을 결합해 만들었다. 이후 지주사인 태평양까지 2011년 사명을 아모레퍼시픽그룹으로 바꿨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2014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뷰티사업장 준공식에 참석해 소감을 전하는 모습. 아모레퍼시픽도 ‘태평양’에서 사명을 바꿔 중국 시장 공략에 한층 공을 들인 끝에 매출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 사진:아모레퍼시픽그룹 제공
㈜아모레퍼시픽은 2006년 증시에 상장됐다. 이 무렵 이 회사의 이름 변경과, 그간의 고강도 구조조정 노력에서 향후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읽고 ‘베팅’한 개인투자자라면 떼돈을 벌었을지 모른다. 2008년 5만원대였던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2015~2016년 40만원대를 기록할 만큼 껑충 뛰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3~2015년 3년간 중국 시장에서 화장품 라인업이 대성공하면서 연평균 매출 49% 성장 신화를 쓰는 등, 2010년대 중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한 외국계 화장품 기업이 됐다.

2003년 7%가량에 불과했던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매출 비중은 2015년 약 40%에 육박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중화권 핵심 도시부터 공략한 후 10년여 동안 차근차근 사업 범위를 넓히는 식의 단계적 글로벌 진출 지역 확장 전략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비록 이후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등 한계에 부딪히면서 최근 들어선 성장세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글로벌 화장품 업계 강자 중 하나다.

‘모터스’ 뗀 테슬라, ‘게임즈’ 뗀 넷마블


▎사회공헌활동 중인 넷마블 직원들. 좌측 상단에 회사 로고가 그려져 있다. 넷마블은 본업인 게임 외에 블록체인 등 다양한 신사업으로의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사명에서 ‘게임즈’를 삭제했다. / 사진:넷마블 제공
다음으로 기업들은 사업 목적을 바꾸려 할 때, 즉 사업 다각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려 할 때 이를 세상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알리고자 한다. 이때도 사명 변경이 선호되는 카드 중 하나다. 현실판 ‘아이언맨’으로 통하는 혁신가, 일론 머스크 공동창업주가 이끄는 미국의 테슬라(Tesla)는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테슬라모터스(Tesla Motors)’가 정확한 사명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2월부로 사명을 테슬라로 단순화했다. 공식 홈페이지 주소 역시 ‘teslamotors.com’에서 ‘tesla.com’으로 바뀌었다. 앞서 테슬라라는 브랜드는 세계인들에게 전기자동차 이미지로 각인돼 있었다. 태생부터가 전기차를 설계·생산하는 스타트업(2003년 설립)이었다. 그런 테슬라가 사명에서 자동차를 의미하는 ‘모터스’를 뺀 것은 최근 에너지 분야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서다.

경영진 입장에선 자동차 사업을 하는 기업이라는 뜻에만 국한된 기존 사명 대신, 자동차 외에 에너지 등으로 다각화한 각종 사업을 포괄하는 사명이 필요하다고 봤다는 얘기다. 실제 테슬라는 2016년 미국의 태양열 패널 제조사 ‘솔라시티’를 인수하면서 신재생 에너지의 대표 분야로 꼽히는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고, 일본 기업 파나소닉과 제휴해 태양전지를 생산하는 데 나섰다. 아울러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나 리튬이온전지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사업 다각화를 진행 중이다. 비슷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지난 상반기 기준 국내 2위 게임 업체인 넷마블은 앞서 3월 주주총회에서 사명을 기존 ‘넷마블게임즈’에서 넷마블로 변경할 것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0년 설립 당시 넷마블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이 회사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첫 이름 그대로를 갖게 됐다.

규모가 큰 게임 업체임에도 사명에서 ‘게임즈’를 뗀 이유는 테슬라의 경우처럼 사업 다각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상장 이후 확보한 자금을 통해 다양한 사업 영역에 투자할 계획”이라며 “게임 중심의 사업은 유지하되,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본업과 접목이 가능한 신기술 분야 투자를 계속해서 늘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경영진 구상엔 구체적으로 인공지능(AI)·가상현실(VR)·증강현실(AR)·블록체인 등의 분야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R&D 인력을 늘리면서 AI와 블록체인의 연계 플랫폼 구상과 같은 후속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성훈 전 넷마블 대표는 지난 8월 공식석상에서 “AI와 블록체인 신기술의 활용처로서 게임은 어느 산업 분야보다 연관성이 크다”며 “신사업들과 게임 간 연계를 강화해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지 사업 다각화라는 기업의 방향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직관적 이해를 돕기 위함일까. 이는 표면상 사명 변경의 가장 큰 이유이고 실제로 주된 이유 중 하나임에 분명하지만, 이면에선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게 산업계의 해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는 물론 투자자들에게 사세(社勢) 확장을 과시하는 의미가 있는 사명 변경”이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사업에 힘쓰는, 성장성이 큰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투자 유치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우리를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해 달라’는 무언의 제스처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사명 변경 전인 2016년 적자 지속과 성장성 논란에 100~200달러대를 횡보하면서 지지부진했던 테슬라 주가(나스닥)는 지난해 사명 변경 후 급등해 연말까지 300달러대를 유지했다.

물론 사명 변경 효과가 증시에서 곧바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넷마블은 사명 변경 후 아직까지 주가가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CJ E&M 산하였던 2014년 이미 중국 텐센트로부터 5300억원대의 거액을 투자받고 물적 분할된 뒤, 지난해 기업공개(IPO)로 상장하면서 한층 자금력을 끌어올린 상태다. 눈앞보다 5년에서 10년 후를 내다보고 신사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사업 다각화 선언 자체가 빠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만큼, 투자자들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미국 투자정보 분석 업체 CFRA리서치의 에프레임 레비 연구원은 지난 8월 외신 인터뷰에서 “부채가 많은 테슬라의 자금력은 아직 회의적이고, 투자자들의 지지를 변함없이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테슬라는 솔라시티 인수 후에도 90% 이상의 수익을 전기차 부문에서만 올리고 있으며, 그조차 눈에 띄는 성과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테슬라의 사업 다각화가 성공하기까지 몇 년이나 걸릴지 알 수 없으며, 당분간은 회사 실적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우’ 버린 한국GM, 안 버린 대우전자


그런가 하면 다소 정치적인 이유로 사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김우중 창업주가 1967년 설립한 ‘대우실업’이 모체인 대우그룹은 현대그룹·삼성그룹과 함께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급성장하면서 영광의 세월을 누렸다가 외환위기 직후 도산하면서 해체됐다. 전성기에 거느렸던 20여 계열사 중 대표적인 기업으로 대우자동차와 대우전자가 있다. 이 중 대우차는 애초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관련이 깊었다. 과거에 있던 ‘신진자동차’라는 기업이 1972년 GM과 손잡고 ‘GM코리아’를 설립하면서 GM 기술 기반의 자동차를 국내 출시한 것이 GM의 공식적인 한국 진출 첫 발걸음이었다. GM코리아는 판매 부진에 1976년 사명을 ‘새한자동차’로 바꾸고 새 출발을 했다. 1978년, 자동차 사업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대우그룹은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83년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사명 변경에 경영권까지 GM으로부터 넘겨받았음에도 지분 및 제휴 관계는 꾸준히 유지됐다. ‘르망’ 등 히트작의 탄생으로 성장에 탄력을 받은 대우자동차는 1992년 GM 지분까지 인수하면서 독자 경영에 나섰다. 하지만 그룹 해체와 법정관리의 아픔을 겪으면서 2002년 다시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다. 그러면서 탄생한 기업 이름이 GM과 대우자동차의 만남을 뜻하는 ‘GM대우’였다. GM대우는 2011년 사명을 한국GM으로 변경해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9년 간 유지했던 GM대우 사명을 한국GM으로 바꾼 데 대해 한국GM 측에선 “당시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새롭고 친밀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였다”는 입장이다. 그해 한국GM은 승용차 26만대를 만들어 국내외에 판매한 성과를 내며 그간의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호탄을 쐈다.

다만 자동차 업계 안팎에선 한국GM이 사명에서 ‘대우’를 뗀 데 대해 “대우그룹과 대우자동차라는 ‘실패한 기업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는 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GM대우가 한국GM으로 바뀔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예컨대 2000년 설립돼 여전히 ‘SM’ 시리즈 등의 제품을 내놓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는 삼성과의 연관성이 작아진 이후에도 시장 선도 기업 이미지가 강한 ‘삼성’ 브랜드 유지를 위해 사명을 변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 창업주의 숙원 사업 분야이자 이건희 회장의 주요 관심 분야였던 자동차 사업 진출을 위해 1995년 삼성자동차를 출범시켰다. 이후 삼성자동차는 1998년 첫 양산 모델을 출시했지만 때마침 터진 외환위기에 고배를 마셨다.


▎2010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국제모터쇼’ 프레스데이 현장 사진. 상단에 큼지막하게 ‘GM대우’ 사명이 쓰여 있다. 한국GM은 2011년 사명에서 대우를 지웠다.
현 르노삼성자동차는 프랑스 업체 르노그룹이 자산을 인수해 출범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카드가 지분율 약 20%로 르노(약 80%)에 이은 2대 주주다. 르노 측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시장 안착을 위해 삼성과 연매출의 0.8%를 지불하는 상표권 사용 계약을 했다(10년 단위로 2010년 재계약해 오는 2020년이면 다시 만료가 된다).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르노 측은 이 금액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삼성 브랜드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내에서 르노보다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더 강하다고 판단돼서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도 삼성그룹의 자동차로 인식하고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서 삼성전자 스마트폰 서비스 품질과 비교하는 소비자들이 적잖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르노삼성자동차가 르노 독자 브랜드를 강화해 2020년 이후 삼성 브랜드와 결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2030년까지 재계약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렇듯 자동차 업계에선 사명 변경으로 홀대된 대우 브랜드이지만, 전자 업계에선 거꾸로 우대되고 있다. 대우전자는 대우그룹 해체 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이름을 바꿨다가 2013년 동부그룹(현 DB그룹)에 인수되면서 동부대우전자로 또 이름을 바꿨다. 이때도 대우 브랜드를 유지했지만, 올 2월 중견 가전 업체 대유위니아의 모기업인 대유그룹이 인수하면서는 아예 사명을 대우전자로 변경했다. ‘대유대우전자’라는 이름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대우 브랜드를 오히려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 브랜드는 아직 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다”며 “대기업들 틈바구니에서 내수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한계를 느껴 해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생각을 가진 대유그룹으로선 발음에 혼선을 주는 자사 이름(=대유)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우 브랜드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공략처가 내수에 국한된 한국GM이 국내에선 불리한 대우 브랜드를 버렸다면, 내수뿐 아니라 해외 공략에도 힘써야 하는 대유그룹은 해외에서 유리한 대우 브랜드를 지키는 쪽으로 승부수를 던졌다는 얘기다. 사명 변경에서 이런 치밀한 셈법은 자주 적용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대성공한 카카오가 2014년 포털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하면서 사명을 ‘다음카카오’로 바꾸고, 2015년 다시 지금의 카카오로 변경한 이유도 네이버에 이은 ‘만년 2인자’의 이미지가 강한 포털 다음(Daum) 브랜드를 떨쳐내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다.

사명 때문에 눈치 보이는 대한항공·광동제약


▎대한항공 사명이 영어(‘Korean Air’)로 크게 적힌 항공기들.
한편, 사명은 변경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무시 못 할 경제적인 파급력을 가진다. 첫 단계에서 잘 확립된 사명 하나가 바뀐 사명 열 가지 안 부러울 만큼 기업 가치를 크게 끌어올리기도 한다. 한진그룹 산하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경우가 그렇다. 한진그룹이 국영 기업이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1969년 사명을 바꿔 창립한 대한항공은 1984년 적용한 태극 문양의 기업 로고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국내외 탑승객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제치고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동력 중 하나다. 오너 리스크 문제로 홍역을 치를 때마다 온라인에선 “대한항공이라는 사명 대신 ‘한진항공’을 사명으로 쓰라”는 네티즌 요구가 빗발치면서 현 사명의 위력을 방증하고 있다.

반대로 오래된 사명을 쉽게 바꿀 수 없는데, 안 바꾸자니 눈치가 보이는 애매한 경우도 있다. 1963년 설립된 광동제약은 고 최수부 창업주가 ‘광동제약사’라 이름 붙인 사명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지만 지난 2007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업 목적을 확실히 하라”며 사명 변경을 권고 받아야 했다. 제약사치고는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으니 사명에서 ‘제약’을 떼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적이었다. 광동제약은 지난해 매출이 1조1415억원으로 국내 제약사 중 상위권에 위치했지만 ‘제주삼다수’ ‘비타500’ ‘옥수수수염차’와 같은 단순 음료제품 매출 비중만 54.6%에 달해 “무늬만 제약사”라는 달갑잖은 평을 일각에서 받고 있다. 제약이라는 단어가 사명 안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워낙 크다 보니 겪는 해프닝이다. 알면 알수록 복잡한 사명의 세계다.

1461호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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