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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의 노동시간 단축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936년 집필 때 프랑스에서 하루 8시간 노동제 시행…노동운동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

▎지난 9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근로시간 단축 현장 안착을 위한 정책 심포지엄’이 열렸다. / 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해져서 ‘아 죽음이 다가왔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점점 사라지는 고통에 평안함을 느낄까, 아니면 하지 못한 것, 해서는 안될 것들이 떠올라 후회와 허무함이 몰려올까.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죽음에 대한 짧은 서사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언제인지를 모를 뿐 정해진 운명인 죽음은 경제학에서도 종종 쓰였다. 벤자민 플랭클린은 “세상에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 밖에 없다”고 말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을 반대하는 학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는다”고 말했다. 높이 1만9710피트.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 서쪽 봉우리의 명칭은 마사이어로 ‘신의 집’이라는 뜻의 ‘누가예 누가이’. 이곳에 얼어붙은 한 마리의 표범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표범이 여기까지 오려면 열대우림에서 황무지를 지나 올라와야 한다. 표범은 왜 굳이 거기까지 갔을까. 소설은 말한다.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고.

죽음 앞둔 주인공의 회환


[킬리만자로의 눈]은 시작부터 몽환적이다. 그(해리)는 아프리카 정글 한가운데서 죽어가고 있다. 영양의 사진을 찍으려다 가시나무에 다리를 긁혔는데 소독약으로 치료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됐다. 방치한 탓에 상처 부위가 악화됐고, 결국은 다리에 괴저가 발생했다. 썩어가는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소설가였다. 파리에서 돈 많은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안일함은 그에게서 일에 대한 의욕을 빼앗았다. 더는 무엇도 쓸 수 없다고 느꼈을 즈음 그는 변화를 주기 위해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왔다가 낭패를 당했다.

다리의 고통과 공포감이 사라지고 피로가 몰려오면서 그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죽음에 대해 두려움도 더는 없다. 최고의 글을 쓸 때까지 쓰지 않고 간직해온 글도 이제는 쓰지 않기로 했다. 머릿속에는 과거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불가리아에서, 파리에서, 이스탄불에서 그가 겪은 많은 무용담들이다. 언젠가는 글을 쓰겠다며 남겨뒀지만 차마 쓰지 못했던 소재들이다. 모든 것을 포기했건만 작가로서는 쓰지 못한 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파리 뒷골목인 콩트레스카르프 광장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그곳에는 술주정뱅이가 많았다. 사람들은 지독한 가난을 잊기 위해서는 언제나 싸구려 와인에 취해있었다. 해리의 가정부 마리는 하루 8시간만 일하도록 한 노동계 때문에 주정뱅이 천국이 됐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6시까지 일을 하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한 잔 정도 할 테니 돈도 과히 낭비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5시에 일이 끝난다면 매일 밤 취하게 되니 돈이 남아날 리 없어요. 노동시간 단축으로 골탕먹는 사람은 노동자의 부인들뿐이라니까요” 가정부 마리의 불만은 헤밍웨이가 살던 당시 부녀자들의 실제 불만이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1936년 집필됐다. 프랑스에서 하루 8시간 노동제가 시행된 해다. 2년 후 독일과 미국이 이를 따라간다. 프랑스의 8시간 근무제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빨랐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다. 18세기 산업혁명은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이끌었다. 24시간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자본주의 초기, 노동시간과 노동환경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하루 12시간~16시간씩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사망과 부상 등 산업재해가 잇따르자 1802년 영국에서 어린이 노동은 아침 6시 이후에 시작해 저녁 9시 이전에 끝내야 하며, 하루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협동조합운동의 창시자인 로버트 오웬은 1810년 하루 10시간 노동을 요구했다. 당시로서 10시간 노동은 파격적이었다. 7년 후인 1817년 오웬은 주 8시간 노동을 요구한다. ‘8시간 노동-8시간 재충전-8시간 휴식’의 논리였다.

노동시간 단축은 시대적 요구였다. 1833년 영국은 공장법을 통해 하루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정했다. 1847년에는 어린이와 여성의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했다. 오웬이 하루 10시간 노동제를 주창한 지 37년 만이었다.

1848년 2월 파리에서 노동자들의 폭력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정부도 하루 12시간 노동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1858년 호주에서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건설업에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된 것이다. 1865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도했던 국제노동자협회는 ‘8시간 노동’을 정식 요구했다. 하루 8시간 노동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졌다.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 시행을 요구하며 시카고 전역에서 총파업을 벌였다. 국제노동자협회는 이날을 기념해 메이데이를 국제 노동자 투쟁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이 노동절이다.

국가적으로 8시간 노동제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은 러시아다. 러시아는 1917년 10월 혁명을 계기로 8시간 노동제를 선포했다. 국제적인 움직임도 뒤따랐다. 2년 후인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첫 세계 총회에서 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를 협약으로 채택했다. 프랑스는 1936년, 독일과 미국은 1938년 8시간 노동제를 받아들였다. 프랑스는 1998년 주 35시간 노동제를 담은 오브리법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 주 48시간으로 정했다. 1989년 법정근로시간은 주 44시간으로 단축됐고, 2003년부터는 주 4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아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많다. 법정근로시간(40시간)에 추가근로(12시간)가 허용되고, 주말근무(하루 8시간)까지 포함하면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은 주말 근무 8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일주일 간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 건은 경영계와 매번 충돌했다. 노동생산성이 같이 높아지지 않으면 비용증가에 따라 경영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에 마냥 나쁘다고 보기 어렵다. 1914년 헨리 포드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전격 도입했고, 이는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은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편시키는 트리거가 되기도 한다. 또 노동자의 휴식시간 증가로 레저·외식·숙박 등 서비스산업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국내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헤밍웨이가 두 번째 부인 폴린 파이퍼와 결혼했을 때 쓴 소설이다. 그녀는 재력가의 딸로 헤밍웨이의 삶은 전례없이 풍족했다. 배경과 등장인물만 놓고 본다면 이 소설은 그의 자전적 소설에 가깝다. 헤밍웨이는 중위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기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체험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냉철하게 관찰한 후 이를 원고지에 남겼다. 가정부 마리의 주 8시간 노동제에 대한 투덜거림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쏠쏠한 재미다.

1459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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