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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가계부채 대마에 빨간불 켜졌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가계 빚이 1550조원에 육박…프로기사들은 바둑의 집을 현금에 비유

우리 경제에 위험 신호등이 켜졌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를 어둡게 전망하고 있다.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와 미·중 무역전쟁 등 위험 요인이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업의 설비투자도 줄고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1990년대의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가계부채의 위험성: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가계부채가 가장 위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계 빚이 1550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1년 사이 110조원이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빚이 많아지면 파산할 가능성이 커질 것은 당연하다. 가계가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가 어려워지고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빚이 많은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예전에 뉴욕에서 지인 몇 사람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인이 초청한 자리였는데 식사가 끝나고 나서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같이 있었던 교포에게 물어봤더니 혼자서 부담하면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우리보다 2배 정도 봉급을 많이 받지만 월세 내고 할부로 산 생활용품 값 등을 내다보면 남에게 밥 한 번 사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가계 빚이 많은 사람은 이 미국인과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경고를 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특별한 노력은 없었던 것 같다. 매스컴에서 전문가의 의견과 함께 종종 기사를 내곤 했지만 가계부채의 원인 진단과 해결책 모색을 구체적으로 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물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려는 DTI 규제 같은 정책은 있었다. 하지만 가계 빚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적절한 선에서 조정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가계부채의 문제는 개인과 금융회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래이니 정부나 기업 등에서 부채 문제에 관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빚으로 파산의 위험성이 커진다면 어떤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담뱃갑에 붙이는 홍보 같은 것이 필요해 뵌다. 담배를 팔지만 담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처럼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홍보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위험신호가 오는 데도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기 쉽다.

기관의 부채: 기업이나 정부기관도 부채가 있다. 기업에서는 부채를 자본과 함께 자산으로 친다. 사업을 하려면 자기 자본만으로 하기는 어려우니 부채를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높다면 그 기업은 가계 빚이 많은 개인처럼 위험도가 높을 것이다. 정부도 국가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다면 디폴트의 위험성을 안게 된다. 지방정부에서는 도지사들이 자체 프로젝트를 시행하느라고 부채를 늘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큰 행사를 치르고 나서 별 활용도가 없어 애물단지가 된 시설의 경우 본전을 건지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투자로 지자체의 빚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자체의 특성화 사업을 해야 하지만 과도하게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바둑의 경고등: 집차지 경쟁인 바둑에서도 위험 신호가 온다. 집이 부족해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상황에서는 실리, 즉 현금을 벌어들이라는 압박을 느낀다. 상대방보다 집이 부족하면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집을 늘리려고 애를 쓴다. 프로기사들은 바둑의 집을 현금에 비유한다. 그래서 집이 부족한 것을 ‘집 부족증’이나 ‘실리 부족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현금 같은 집이 상대방보다 부족하면 빚을 가진 것과 같다. 그래서 상대방보다 집이 부족하다면 집 차이를 줄이기 위하여 고심을 한다.

바둑의 위험 신호는 직접적으로 바둑돌의 사활 문제에서 나타난다. 즉 돌이 사느냐 죽느냐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미생인 자기 돌이 잡힐 가능성이 보다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지만 덩치가 큰 대마가 잡히면 거의 파산이다. 이것은 빚이 많아 도저히 회복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대마가 잡히는 순간 항복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바둑의 위험 신호와 대응책을 하나 보기로 하자. [1도]와 같은 모양에서 백1과 같이 다가오면 귀의 흑집이 위험해진다. 따라서 흑2에 뛰어 보강을 해야 한다. 이렇게 두면 흑은 10집 정도를 확보하며 안정을 하게 된다. [2도]에서 백이 다가와 위험해졌는데도 지키지 않으면 백1로 파고드는 수가 있다. 흑2에 받으면 백3에서 11까지 흑의 안방을 차지하고 살게 된다. 그러면 흑은 집 없는 미생마 신세가 된다. 집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팽개쳐진 신세라고 할까. 이런 상황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3도]에서 흑의 대마를 등한시하여 흑1과 같이 딴전을 피우면 백2에 들여다보고 백4로 포위해 흑 대마가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대마가 잡혀버린다면 흑은 파산선고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예처럼 대마의 생존은 바둑을 꾸려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대마의 위기 상황에 민감하다. 대마가 위험해질 것 같으면 빨리 손을 쓰는 것이다. 고수들은 다른 곳을 두면서도 대마에 어떤 영향이 갈지를 끊임없이 검토한다. 비유하자면 가계 빚을 가진 사람이 정부정책이나 금리 인상 등의 요인에 따라 어떤 영향이 미칠지를 고려하는 것과 같다. 요즘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바둑에 비유해 생각해 보았다. 개인이나 기관이나 부채가 많으면 생존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위험 신호가 왔을 때 등한시하다가는 파산의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 필자는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59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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