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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한전’ 포툼이 핵심 사업부 정리한 까닭은] 규제 많은 전통 사업 내려놓고 혁신 추구 

 

허정연 기자
송배전 사업부 팔고 전기차 충전소, 스마트그리드 등에 투자… 정부·민간 합심해 배터리산업 키워

▎포툼은 전통적인 핵심 사업부를 정리하고, 전기차 충전소 보급 등 신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핀란드 최대 에너지기업인 포툼(Fortum)은 최근 에스포로 이전했다.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30km가량 떨어진 에스포는 기업들이 몰려있는 위성 도시로, 핀란드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로 꼽힌다. 포툼이 새롭게 입주한 건물은 노키아의 옛 본사가 있던 바로 그 자리다. 마이크로소프트 지사와 소프트웨어 기업인 ‘티에토’가 사이좋게 건물을 나눠쓴다.

핀란드 정부가 50.8% 지분을 보유한 포툼은 우리나라의 한국전력공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핀란드 최대 에너지 기업이다. 보수적이고 변화가 더딘 공기업과 혁신적인 글로벌 회사의 이웃관계가 낯설 법도 하지만 포툼은 건물 이전과 동시에 여느 민간 기업 못지 않은 혁신을 추구해왔다. 사무실 내부만 둘러봐도 혁신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뻥 뚫린 사무공간은 모두 자율석으로 운영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임원실은 물론 회장 사무실도 없앴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 옆으로 사옥 옮겨


▎핀란드 국영 에너지기업인 포툼(Fortum)은 옛 노키아 본사 건물로 새롭게 이전하며 혁신을 단행했다. / 사진:Fortum 제공
외관만 바뀐 것이 아니다. 포툼은 오랜 세월 전력망 설치 등 송배전 관련 업무를 핵심 사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2016년 포툼은 관련 사업부를 과감히 정리했다. 핵심 사업부를 팔아 마련한 자금을 토대로 전기차 충전소 보급, 스마트그리드 등 각종 신산업에 투자했다. 그 결과 포툼은 현재 북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16개국에 전기차 충전소 약 2200곳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등록된 고객 수만 7만5000명에 이른다. 올해 3월에는 유럽 31개국에 5만 명의 충전 고객을 확보한 스타트업 플러그서핑을 인수했다.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가정용 온수기 등의 잉여전력을 활용한 가상배터리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포툼의 폴리나 보시아 커뮤니케이션담당 부회장은 “송배전 사업부는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분야였지만 핀란드 내에서는 관련 규제가 많아 다른 신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며 “국영기업이지만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해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는 판단 하에 변화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포툼은 새로운 주력 사업인 가상배터리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노르딕 국가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집집마다 물을 데우는 펌프를 연결해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원을 배터리처럼 저장, 이를 다시 이용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같은 원리로, 대규모 데이터센터 내 수백대의 컴퓨터가 뿜어내는 열기를 에너지 공급원으로 삼아 지역 냉·난방에 이용하기도 한다. 핀란드 고용경제부 산하 무역진흥기관인 ‘비즈니스 핀란드’ 관계자는 “핀란드는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짧아 여름이나 낮 동안 열을 저장해 재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관심이 오래 전부터 많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ESS를 이용하면 원하는 시간에 전력을 생산하기 어려운 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미리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대에 사용할 수 있다. ESS가 전력 인프라를 구성하는 요소이자 스마트그리드와 같은 차세대 전력망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인 셈이다. ESS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영역에서부터 생성된 전기를 이송하는 송배전 영역, 그리고 전달된 전기를 실제 사용하는 이용자의 영역에 모두 필요한 시스템이다.

특히 에너지 수요가 최대에 달하는 시점의 전력 부하를 조절해 발전 설비에 대한 과잉 투자를 막아주고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가 일어나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나라는 2011년 지식경제부에서 ‘에너지저장 기술 개발 및 산업화 전략 K-ESS 2020’을 마련해 2020년까지 세계시장점유율 30%를 목표로 총 6조4000억원 규모의 연구 개발 및 설비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촉진법을 통해 2022년까지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자 비율을 1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을 발표하면서 ESS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핀란드 민간기업도 ‘에너지 혁명’을 준비하며 ESS와 더불어 차세대 연료전지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개발 전문 기업인 콘비온(Convion)과 엘코젠(Elcogen)은 이탈리아 폐수 처리시설에서 나오는 폐열을 연료전지로 만들어 시스템화하는데 성공했다. 에르코 폰텔 콘비온 대표는 “연료전지는 각종 에너지를 저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며 “황산화물·질소산화물과 같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100% 재사용이 가능해 태양광 등 다른 친환경 에너지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연료전지 기술은 현대자동차와 같이 수소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에 필수다. 미국·일본 등은 대규모 자동차 시장을 바탕으로 수소차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연료전지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다. 핀란드는 자동차 제조회사는 없지만 리튬이온전지의 원료인 니켈과 코발트 매장량이 풍부해 일찍이 배터리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의 3대 전략투자 분야로 데이터경제, 인공지능(AI)과 함께 수소경제를 꼽았다.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하는 원소인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자는 전략이다. 수소는 고갈 우려도 없고, 연소를 시켜도 산소와 결합해 다시 물로 변하기 때문에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친환경 에너지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정부는 전략투자 분야에만 내년 5조원을 투입해 혁신성장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수소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수소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싼값에 오래 저장하는 기술이 필수다. 국내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수소가 친환경 에너지원이 되려면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뽑아내야 하지만 국내 기술로는 아직 미흡하다”라며 “이 분야에 대한 전망이 밝아 시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 경쟁이 치열하지만 막연히 정부 지원만으로 단기간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닌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수소전기차 핵심인 연료전지 기술에서 우위

2001년 설립한 엘코젠은 회사 역사는 짧지만 수소연료전지 제조에 집중해 미국·독일·일본 등 세계 50개국 이상에 진출했다. 2021년경 50MW 규모의 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엘코젠의 폴 할라노로 대표는 “에너지원의 온도가 섭씨 700도 이상이면 이를 전달할 별도의 스틸그리드가 필요해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지만 우리는 그 온도를 700도 이하로 낮춘 저온형 연료전지를 개발해 비용을 높이지 않고도 효율적인 공급이 가능하고, 8개의 특허를 보유할 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핀란드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핀란드산 배터리(Batteries from Finlan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배터리 관련 산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비즈니스 핀란드 관계자는 “연료전지 시장이 2015년부터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특히 에너지 저장기술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높다”며 “관련 시장의 내수 규모는 작지만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많아 이들의 해외 진출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원자재 생산 중심에서 해외 기업과의 합작 등을 통해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헬싱키·에스포(핀란드)=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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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2호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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