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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휴전 그 후] 더 치열할 90일짜리 ‘협상전쟁’ 돌입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12월 중순 워싱턴에서 두 나라 대표단 첫 만남…양보 쉽지 않은 사항 많아 가시밭길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12월 1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월 5일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12월 1일 ‘90일 휴전’에 합의했지만 ‘정전 조건’으로 볼 때 충돌이 재발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역전쟁이 다시 가열되면 결국 우위를 차지하는 쪽은 미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중국의 수출품 절반에 대해 내년 1월 1일로 예정했던 추가 관세를 유예했다. 그 대신 중국은 미국에 많은 항목을 양보하는 협의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만일 양보가 모두 실행되면 중국의 경제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황으로 볼 때 중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 없었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12월 1일 합의한 90일 휴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우려를 서로 고려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두 정상이 휴전에 합의할 당시 미국이 특별 관세를 적용하는 중국 상품은 모두 2500억 달러에 이르고, 중국이 보복관세를 부가하는 미국 상품은 1100억 달러에 달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메가톤급 강펀치를 서로 주고받던 미국과 중국이 무역분쟁 150일을 앞두고 일단 90일 휴전에 합의한 데 대해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정상은 이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예상보다 긴 2시가30분 동안의 업무 만찬에서 양자 회담을 벌여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양국 정상은 이날 내년 1월 1일 이후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기존 관세율도 올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무역전쟁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 관세 대상으로 잡은 중국산 상품은 약 2500억 달러(283조원)어치에 이른다. 지난 7~8월 5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9월엔 2000억 달러어치에 10%를 매겼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1100억 달러(123조원)어치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해왔다.

미국이 압도적 우위 차지

두눈여겨볼 점은 이번 합의가 무역전쟁의 완화라기보다 ‘일시 유예’라는 사실이다. 이번 휴전 합의에도 일단 기존의 관세 부과는 당분간 그대로 유지된다. 핵심은 미국이 내년 1월로 예상됐던 추가 관세 부과를 90일 간 유예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내년 1월 1월부터 2000억 달러어치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올리고 나머지 2670억 달러어치에 대해서도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이었다. 만일 이렇게 됐다면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제품에 최고 25%의 관세가 매겨지는 최악의 전면적인 무역전쟁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이런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은 미국산 자동차에 부과하고 있는 40%의 관세를 줄이거나 없앨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다.

경제 규모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양 정상은 지난 6월 무역전쟁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았다. 그만큼 그동안 앙금이 깊었다는 의미이자 이번에 이렇게 급하게 만나 담판을 지어야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번 합의가 미·중 무역전쟁을 종식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 못하고 두루뭉수리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1월 1일로 예상되던 추가 관세 부과를 일단 보류하고 90일 간 무역협상을 재개한다는 내용만 담고 있다. 양국이 가능한 절충점을 모색한 끝에 ‘조건부 정전 합의’를 내놓은 셈이다. 경제적 의미보다 정치적인 의미가 더 커 보이는 이유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 실리를 얻었다. 대부분 트럼프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는 내용이다. 그중 핵심이 중국이 미국의 농업·에너지·산업 제품을 사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6월부터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자 7월 7일 미국산 수입품 547개 품목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콩·돼지고기·쌀·면화·사탕수수·포도주 등 미국의 주요 수출 농산물을 포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중서부 ‘팜 벨트(농업지대)’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품목이다.

실제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미국의 경쟁 농업국이 이를 계기로 중국 시장 진출을 확대해 미국 농산물 수출 시장의 입지가 줄어들 우려도 나온 것이 사실이다. 무역 보복에 나선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려고 한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로 합의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내 정치적 승리를 안겨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트럼프에 일방적으로 선물을 한 것만은 아니다. 미·중 무역갈등 자체가 쌍방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 보복 관세를 부과한 중국도 상당한 타격을 입어왔다. 특히 농산물 무역이 삐걱거리면서 중국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다량의 콩과 옥수수를 미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이지만 세계 최대의 소비국이기도 하다. 2010년부터 미국산 옥수수를 대거 수입하고 있는데, 중국 전체 옥수수 수입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콩은 상당수가 동물 사료로 가공된다. 가격 경쟁력이 큰 미국산 콩과 옥수수를 수입해 돼지를 비롯한 가축을 길러 중국인에게 공급하는 ‘축산 체인’이다. 중국은 부족한 고급 돼지고기를 미국에서 수입해왔다. 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며 인민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돼지고기를 충분히 공급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책임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중국 정치에 중요한 돼지고기 공급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료가 되는 농산물에 고율의 관세를 부가한 것은 중국에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중국 당국의 자해라는 평가를 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기로 한 것은 트럼프의 승리이면서 중국의 숨통 트기로 볼 수 있다. 결국 미·중 양국의 ‘윈윈’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의미보다 정치적 의미 더욱 커

트럼프가 거둔 가시적인 성과의 하나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에 대한 규제에 중국이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은 시 주석이 펜타닐을 규제 약물로 지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이는 미국에 펜타닐을 불법으로 판 사람은 중국에서 법정 최고형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펜타닐은 의료 분야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진통제나 마취제로 사용한다. 헤로인보다 약효가 최대 80배 강한 합성 진통제다. 아편 성분을 바탕으로 합성한 오피오이드(아편계) 약물이다. 문제는 이를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약으로 오남용하는 중독자가 미국에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오피오이드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강력한 단속을 펼쳐왔다. 미국은 그간 중국이 펜타닐의 주요 공급원이라고 지목하고 근절을 위한 협력을 압박해왔다. 공급원을 근절해 유통을 막겠다는 의도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트럼프에게 중요한 정치적 승리를 안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의 또 다른 승리는 세계 최대의 모바일폰 칩 공급 업체인 미국 퀄컴사의 NXP 반도체 인수계약 작업의 물꼬를 극적으로 텄다는 점이다. 미국 퀄컴은 NXP 반도체 인수계약과 관련해 승인을 얻어야 하는 9개 시장 가운데 중국만 남겨놨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미·중 무역전쟁이 가속화하자 최종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NXP 인수는 미·중 무역전쟁의 상징적인 인질이 됐다. 이에 퀄컴은 NXP 인수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에 미·중 무역전쟁의 ‘부차적 피해자’로 인식됐다. 트럼프에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합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소득을 얻었다.

미·중 무역전쟁은 6월 1일 미국의 관세국경보호청(CBP)이 340억 달러어치에 해당하는 중국 상품 818개 품목에 25%의 특별 관세를 매긴다고 발표하고 6월 15일 첫 특별 관세를 징수하면서 발발했다. 6월 1일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 12월 2일로 발발 150일을 맞았다. 그렇다면 미·중이 휴전에 합의한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9월 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게재된 미첼 베이징 지국장의 ‘미·중 무역전쟁은 틀린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칼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시 주석은 모두 자기 나라가 무역전쟁에서 우세할 것이라고 확신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옳지 않다는 게 칼럼의 요지다.

중국도 체질 개선 계기로 삼아


이 칼럼은 “미·중 무역전쟁이 심화하는 상황은 양측이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오해한 데서 비롯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측은 무역전쟁이 격화할 경우 중국 경제가 벼랑 끝에 몰릴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해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중국산 수입품 340억 달러에 25%의 특별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에선 이 조치가 중국의 투자와 경제 성장을 둔화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의 예상과는 달랐다. 중국 경제의 2분기 성장률은 6.7%를 기록해 1분기의 6.8%보다 0.1%포인트 떨어지는 정도였다. 무역전쟁은 예상처럼 중국 경제를 뒤흔들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이 금융 부문의 과도한 부채 문제를 비롯해 자신의 결점을 찾아 이를 해결하는 노력을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중국 경제를 공황으로 몰고 가기는커녕 체질 개선을 촉진해 오히려 더욱 탄탄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이야기다.

중국 측은 11월 6일의 미국 중간선거 이후의 미국 정치 상황을 지나치게 자국에 유리하게 전망하는 오류를 범했다. 중국 측은 중가선거 이후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더 이상 중국을 상대로 강공을 펼치지 못하면서 무역전쟁에서 후퇴할 것으로 여겼다. 결과적으로 이 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상원을 차지하고,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했다. 선거 이전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한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에 불리한 상황이 된 것은 맞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헌법이 부여한 예산권과 법률 제정권, 그리고 행정부 관리 소환권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를 애먹이거나 정책의 집행 과정을 꼬치꼬치 따지며 강도 높게 견제할 가능성은 크다. 다만 공화당이 하원 주도권을 잃었다고 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나 통상 정책 등의 정책 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의 정치체제는 대통령 중심제라 백악관의 권한이 막강하고, 의회는 상원을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의회 권한이 더욱 막강한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한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만 높일 수 있을 뿐이다. 하원만 장악한 민주당이 현실적으로 행정부의 도도한 흐름을 돌리거나 막을 수는 없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중국 측이 미국에서 무역 문제가 초당파적인 사안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볼 때 통상 문제는 더 이상 트럼프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실 미국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주의를, 민주당은 보호무역주의에 무게를 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민주당보다 더욱 강한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면서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 중서부와 북서부의 쇠락한 중공업·제조업 중심의 공업지대의 실업자들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기사회생으로 승리하는 원동력의 하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젠 민주당도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반대할 정치적 이유가 없어졌다. 미국의 중간선거에 따른 정치 상황의 변화가 미·중 무역전쟁을 완화시킬 것이라는 중국의 기대는 순진했거나. 미국의 정치 체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보호무역주의를 둘러싼 미국의 내부 정치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역전쟁을 펴온 셈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병법의 구절을 새롭게 떠올릴 때라는 지적이다.

서로의 약점 자국에 유리하게 전망한 오류


이제 남은 것은 무역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세부 협상이다. 이를 위해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12월 12∼15일 30명 규모의 협상단을 이끌고 워싱턴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류 부총리는 워싱턴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협상하게 된다. 이 협상이 이뤄지면 지난 5월 이후 미·중 간 본격적인 무역갈등 협상이 처음으로 벌어지게 된다. 두 사람은 지난 9월 말에도 협상을 하기로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발표하면서 일정이 취소된 전력이 있다.

두 사람이 협상 테이블에서 얼굴을 맞댄다고 해도 협상으로 가는 길을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에 기술 이전, 지식재산권 침해, 비관세장벽, 사이버 안보를 비롯한 양국 간 현안에 대한 정책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를 중국이 합의해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은 이 분야에서 우위에 있으며, 중국은 미국의 요구대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할 경우 첨단 산업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첨단 기술에서 미국을 따라내는 것을 시 주석 시대 국가 목표로 제시해온 중국으로선 양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몇 년 간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던 이런 난제를 90일 동안에 풀 수 있을까. 양보를 하는 순간 날아올 정치적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지난 150일 간의 미·중 무역분쟁 못지않게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는 90일 간의 ‘협상전쟁’에서 양국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1463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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