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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마침내 현실이 되나] 최악의 경우인 무협상 브렉시트 피할까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영국 브렉시트안 각의 통과…탈퇴협정 초안은 ‘보류’ 투성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Brexit) 협상 합의 이후 각료들의 잇단 사퇴, 불신임 투표 요청 등으로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영국이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지 2년 5개월 만에 탈퇴 협정문의 초안이 마련돼 11월 14일 영국 각의를 통과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EU 측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인 미셸 바르니에는 이날 브뤼셀에서 양측의 미래관계에 관한 선언문과 함께 580쪽 분량의 탈퇴 협정 합의문 초안을 공개했다.

긴 협상 기간, 밀고 당기는 실랑이와는 무관하게 이날 발표된 초안의 내용은 평이했다. 영국이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지난 45년 간 이뤄진 양측 간의 통합과 권리 설정 등을 원래대로 환원하는 조치와 함께 앞으로 양측이 준수할 의무사항, 그리고 원활한 브렉시트를 위해 설정한 전환 기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며 추가 협상

브렉시트 협상 막바지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현안이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국경 문제였다. 양측은 사람이나 물자가 국경을 통과 때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를 막기 위한 별도 합의를 이루기 전까지는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잔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안전장치(backstop)’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어려운 과제의 해결을 별도 합의 때까지 일시 미룬 셈이다. 이로써 영국이 앞으로 EU 측과 영구적인 새 무역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EU 관세동맹에 남게 됐다.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계속 남으면 수산물을 제외한 모든 상품이 관세 혜택을 계속 받게 된다. 스페인의 반환 요구가 끊이지 않는 스페인 서남부의 영국령 지브롤터와 관련해 영국과 EU는 공동위원회를 설치해 이 문제 해결 방안을 정기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 역시 오랜 역사적 맥락과 군사적 필요성 등이 뒤엉킨 과제의 해결을 뒤로 미룬 셈이다.

세계 최대의 금융시장인 런던 시티의 운명을 좌우하는 내용이 ‘금융시장’ 부문이다. 브렉시트를 하게 되면 영국은 지금까지 예상했던대로 EU 금융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수준’의 접근만 가능해진다. EU가 비회원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동등성 원칙’을 영국에 적용하게 된다. 이 원칙은 한 국가의 규제가 EU와 동등하다고 평가될 경우 해당 부문의 영업과 관련해 인허가 및 보고 절차를 면제해주는 원칙이다. 미국이나 일본 기업이 현재 누리는 수준이다. 영국은 앞으로 이들 나라와 같은 조건에서 유럽 시장을 뚫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영국은 EU 금융시장에서 ‘외국’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거대한 자금력과 유럽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바탕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온 시티의 경쟁력이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 물론 시티의 금융사들이 워낙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 보니 유럽 영업에서 경쟁력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헤쳐야 할 난관은 분명히 늘게 된다.

거대 금융시장 ‘시티’ 타격 불가피

그동안 개인 차원에서 가장 큰 현안이었던 ‘역내 거주 상대방 국민의 권리’에 대해서는 기존의 권리만 인정해주기로 했다. 즉, 영국에 거주하는 EU 시민이나 EU 내에 살고 있는 영국 국민은 현재와 같이 상대국에 머물면서 일할 권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앞으로 새롭게 상대 지역에 거주할 사람은 새로운 절차에 따라야 한다.

눈여겨볼 점은 ‘동일규제’의 원칙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안전장치가 가동되는 동안 영국은 경쟁과 국가보조, 고용·환경기준·조세 등 분야에서 EU와 동등한 규제 수준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 기간 중에 영국이 감세를 하는 등 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혜택을 EU보다 늘리고 규제를 더 완화할 경우 EU의 기업이나 산업계가 대등한 환경에서 경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협정문에는 ‘퇴행 금지’ 조항이 명문화돼 영국은 사회·환경·노동 등 분야에서 기존의 기준보다 더 후퇴할 수 없도록 했다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전환기간이다. 영국은 2019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되 2020년 말까지를 전환기간으로 정해 EU 단일시장에는 계속 잔류하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영국도 EU의 규제를 따라야 한다. 전환기간 동안 영국와 EU는 새로운 미래관계를 확정지어야 한다.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전환기간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연장 결정은 양측이 공동 합의를 통해 할 수 있으며 2020년 7월 1일 이전에 연장을 결정해야 한다. 다만 연장기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좀 더 연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EU로서는 영국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영국으로서는 탈퇴에 따른 충격을 일시 미루는 효과를 거뒀다. 어느 쪽의 의도대로 될지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상황이 됐다.

양측은 전환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까지 새 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도 전환기간이 종료되는 2020년 말이 되기 전에 새로운 미래관계를 구축해 안전장치가 가동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잔류한 상황에서 안전장치를 종료하려면 한 쪽이 상대방에 종료 이유를 포함해 이를 통보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를 논의할 공동위원회가 6개월 안에 개최되고 양측이 모두 동의할 경우 안전장치가 종료된다.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이다.

영국이 EU와 ‘이혼’하면서 부담해야 하는 ‘이혼 합의금’에 대한 규정도 합의문에 적혔다. 정확히 말하면 브렉시트에 따른 영국의 EU 분담금 정산으로 방법만 규정됐을 뿐 액수는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 이에 따르면 영국은 EU 직원들의 연금을 부담하고 EU 회원국 시절에 약속했던대로 2020년까지 EU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기여를 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이 부담해야 할 이혼합의금을 390억 파운드(약 57조원)로 추산했다. 게다가 영국이 EU에 실질적으로 머무르는 전환기간에 해당하는 2019년과 2020년분 EU 예산 분담금도 내야 한다. 전환기간이 연장될 경우 EU 예산을 추가로 더 부담해야 하는데 그 내용은 추후 협상으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이혼을 하더라도 서로 미래를 개척할 여지는 남겨뒀다. 영국과 EU는 ‘미래 관계에 관한 정치적 선언’에서 양측은 내년 3월 29일 브렉시트가 이뤄진 직후 미래 관계에 관한 구체적인 협상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미래 선언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금융 분야다. 사실 영국의 금융산업은 유럽 시장이 필요하고, EU는 유능하며 창의적이고 수익률이 좋은 시티의 금융사들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력이 강한 영국의 서비스 산업도 유럽과 상호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양측은 금융을 포함한 서비스 부문에서 야심차고 포괄적이며 균형 잡힌 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양측 모두의 경제적 실리가 걸린 이 분야는 이혼 이후에도 여전히 협력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아울러 양측이 앞으로 자유무역지대 설치를 추진하고 규제와 관세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점도 눈에 들어온다. 단기 방문에 관한 비자도 면제하기로 했다. 영국이 EU라는 조직에서 떠나는 것일 뿐 유럽과의 협력과 교류는 여전히 하겠다는 이야기다. 다만 장기 방문은 외국인 대우를 받게 된다. 영국과 EU의 관계가 현재 한·일 관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되는 셈이다. 철도와 항공, 선박 등 교통 분야 협력과 사법 협력도 공동 목표로 잡았다. 역시 상호이익이 걸린 분야다.

이번 합의문 초안을 보면 영국은 브렉시트를 계기로 글로벌화와 EU통합의 수혜자에서 고립의 국외자로 신분이 크게 변하게 된다. 사실 영국과 그 수도 런던은 전 세계 사람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글로벌과 EU 통합의 최대 수혜자였다. 부자들과 그들의 재산, 그리고 인재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와 도시를 부유하게 하는 커다란 자산이었다. 특히 돈 거래가 자유로웠던 런던은 금융시장인 시티를 바탕으로 경쟁력에서 우위를 유지해왔다.

런던이라는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의 하나가 유럽은 물론 중동·북미 등과 연결이 쉽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런던은 전 세계 부자들이 재산을 들고 투자와 거주를 위해 몰려드는 ‘매력 도시’다. 올해 5월 선데이타임스가 발표한 2018년 영국 부호 순위를 보면 상위 10명 가운데 영국 국적자는 단 3명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 출신이다. 인도·우즈베키스탄·러시아·이탈리아·노르웨이· 캐나다 등 국적도 다양하다. 이들 10대 부자들의 비즈니스 영역도 제조업·에너지·광산·유통업·해운업·부동산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있다. 이 덕분에 런던은 국제적인 부자도시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타에 따르면 시티를 포함하는 그레이터 런던의 중심부로 115만 명이 거주하는 이너런던 웨스트의 경우 구매력 기준(PPP)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7만8200유로로 나타났다. 그레이터 런던의 GDP는 6650억 유로로 국가로 치면 세계 20위권에 들어간다.

부자도시 런던의 미래는


런던이 전 세계 부자들을 끌어들이는 부자도시로 일어선 요인으로는 비교적 낮은 세금, 끈끈한 글로벌 네크워크와 투자기회, 비즈니스 서비스 등이 꼽힌다. 우선 런던은 세금이 싸다. 영국은 최고 세율이 45%로 EU에선 낮은 편이다. 기업 경쟁률을 높여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다. 게다가 영국 바깥에서 얻은 소득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아 부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통했다. 게다가 런던은 금융가인 시티와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수많은 투자은행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할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부동산 개발과 투자 기회는 런던에 부자를 끌어들이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자들을 부자답게 해주는 거의 모든 인프라와 세계 최고 수준의 각종 서비스도 부자들에겐 매력적이다. 자가용 비행기, 요트, 리무진에 최고급 저택과 사무실, 보석가게, 미슐랭 별이 주렁주렁 달린 최고의 식당과 와인, 개인적으로 쇼핑할 최고급 부티크까지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경호업체, 재산을 불려줄 투자 자문과 법적인 문제를 처리해줄 법률서비스회사, 명성을 관리할 홍보회사까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런던에 자리 잡은 부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주목된다. 부자들의 임직임은 곧 거대한 자금의 움직임과 같기 때문이다.

1460호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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