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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계 ‘큰 손’ 사우디 외면하나] 사우디 정부 주최 투자행사에 참석 보이콧 

 

한정연 기자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후 분위기 달라져… 사우디와 초대형 펀드 만든 손정의도 거리두기 행보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10월 23일 열린 투자행사에 서구권 금융회사 CEO들이 잇따라 불참했다. 행사장 곳곳에 빈 자리가 보인다. / 사진:FII 생중계 화면 캡처
금융자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중세시대 천재들의 꿈인 ‘영구기관’일지도 모른다. 영구기관은 외부 동력 없이도 영원히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관이다.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이런 동력기관은 존재할 수 없지만 중세시대 이후 천재 발명가들은 온갖 아이디어를 발휘해 이런 장치의 설계도를 발표하곤 했다. 금융자본이 개인의 만족이나 생활을 위해서 쓰는 돈과 결정적으로 다른 건 ‘돈을 버는 돈’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투자 판단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자본도 약해지는 순간은 있다. 우주공학자·수학자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해도 영구기관처럼 계속해서 수익을 만들어 내지 못 하고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날 때다. 돈을 벌지 못 하는 돈은 금융자본의 지위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10월 23일(현지시간) 열린 ‘퓨처 인베스트먼트 이니셔티브(FII)’ 행사는 자본이 약한 모습을 보인 흔치 않은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FII는 세계적인 ‘큰 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주최하는 투자 행사다. 매년 이맘 때면 3일 내내 세계 금융계가 주목한다. FII는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지난해 휴머노이드 로봇인 소피아가 최초로 등장한 행사가 바로 FII다. 소피아는 진행자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고,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까지 받았다. 다른 휴머노이드 로봇도 대거 등장했다. 소피아나 다른 로봇의 사진을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것 같다. FII의 진가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자 왕족들, 재무부장관 등 세계 금융계의 ‘큰 손’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세계적 대형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늘 이 행사에 우선적으로 참석해왔다. 사우디와 비전펀드를 만든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FII에서 직접 연설을 했고, 올해도 중요한 연설자 중 한 명이었다.

세계 금융계가 주목하던 FII 행사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가운데)가 FII에 참석했다. 그는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의심받고 있다. / 사진:FII
올해는 달랐다. 첫 날부터 참석하기로 한 세계 최대 펀드인 블랙록, 투자은행 JP모건 등 굴지의 금융회사 CEO들이 자리를 비웠다. 금융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올 3월에도 만나 투자 의견을 교환했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행보였다. 손 회장은 행사 둘째 날 계획된 연설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파이낸셜타임스는 10월 21일 서구 투자자자들이 10월 중순 이후 사우디 증시에서 6억5000만 달러를 뺐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0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사건’을 논의하기는 이른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미국에 투자돼 있는 사우디 자금은 대략 45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기사를 냈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도 금융 뉴스레터에서 사우디의 권력자이자 큰 손 중의 큰 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가 참석하는 FII에 어떤 금융회사 CEO들이 불참했고 참석했는지 자세히 알리며 많은 금융계 CEO들이 이 행사를 보이콧 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놨다.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출신으로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던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여파다. 터키 정부가 실종된 자말 캬수끄지가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됐고, 그 배후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자가 있다고 주장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CBS의 [60분]이라는 탐사보도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사건의 밑바닥까지 살펴볼 것이며 이에 따라 엄중한 처벌책이 나올 수도 있다”며 사우디 제재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미 의회도 사우디 제재를 주장했고, 영국·프랑스·독일 외무장관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사우디 정부에 신뢰할 수 있는 조사를 하라고 촉구했다. 독일은 사우디에 무기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성명까지 냈다.

카슈끄지는 지난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실종됐다. 그가 손에 찬 애플워치와 연동된 아이폰에서 그의 고문·살해 정황이 담긴 파일을 터키 정부가 입수해 사우디 왕실과 당국을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터키 언론 사바흐는 “(부검 전문가와 공군 장교가 포함된) 사우디 암살 요원 15명이 카슈끄지를 살해했다”며 이들이 촬영된 폐쇄회로TV(CCTV) 사진을 공개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해 보복을 경고했다. 사우디 정부는 국영 언론 ‘알아라비아’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만약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면 사우디는 더 큰 조치로 응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제유가에 변동을 주는 식으로 ‘보복’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우디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공식 조사 결과는 11월 중순 경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살해된 자말 카슈끄지가 올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중동 관련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POMED
미국의 시사잡지 뉴요커·포린폴리시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CNN 등에서 아시아 관련 국제관계 패널로도 출연한 한 변호사는 익명을 요구하며 “사우디가 아무리 막 나가는 나라라고 해도 자국도 아닌 타국 소재 대사관에서 백주대낮에 암살을 저지른 것은 (투자자들에게도) 비상식적이고 충격적인 일”이라며 “캬슈끄지가 미국 내 엘리트들 사이에서 연결점이 많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 반응이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크 회피 속성상 보이콧 오래갈 수도


▎지난해 FII 행사에서 첫선을 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가 사회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FII
언론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어 제 4부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쿠데타나 전쟁, 천재지변과 같은(소셜미디어가 작동하지 않는) 비상상황에서만 4부라는 이름값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감소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언론인 암살에 자본이 주목하는 건 바로 이 비상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제아무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해도 돈을 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비정상적인 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지극히 논리적인 이유에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초대형 펀드를 만들어 대형 투자를 이어가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장고 끝에 FII 연설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은 앞으로도 금융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뉴욕에서 헤지펀드에 근무하다가 최근 부동산 투자회사 MTY를 창업한 태이 문 대표는 “헤지펀드 등 미국 투자 업계는 속성상 정치적”이라며 “여론을 의식해 당분간 특별한 정책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지 않으면 사우디와의 거리두기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우디의 가장 큰 파트너사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사우디와의) 거리두기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런 일 자체가 리스크다. 헤지펀드나 투자은행이 가장 싫어하는 게 리스크다.”

-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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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8호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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