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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진짜 ‘취업 천국’일까] 명문대 나와도 대기업은 높은 벽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대졸 초임 300만엔대로 급여는 ‘상후하박’ 구조... 인문계 관련 일자리 대부분 임시직

▎일본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지만, 연봉이 높은 중견 이상 기업의 경쟁률은 높은 편이다. 채용박람회 때마다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지난해 10월 일본 3위 철강 업체인 고베제강이 품질 조작 사건을 일으켰다. 검사 결과를 조작해 부적격 제품을 고객사에 납품한 것이다. 미쓰비시·가와사키중공업 등 일본 업체들은 물론 제너럴모터스(GM)·테슬라·푸조시트로엥그룹(PSA)·롤스로이스 등 글로벌 기업 30여 곳이 고베제강의 제품을 사용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책임을 묻겠다며 일본은 물론 미국 수사 당국까지 소매를 걷어부쳤다. 저승사자 같은 소비자단체도 일어나 집단소송에 나섰다. 고베제강 사태 직후 이와 비슷한 스캔들이 일본 재계에 잇따라 발생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고베제강과 비슷한 품질자료 조작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 닛산과 스바루도 무자격 검사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신뢰를 얻어온 일본 제조업의 배신에 모노즈쿠리 신화가 몰락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런데 문제가 된 기업들은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한편 마치 짜기라도 한듯 억울한 측면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손이 부족해 규정을 지키기 어려웠다.”

2030년 640만 명 일손 부족 전망


일본의 일손 부족 문제는 일본 제조업이 지난 60여 년 간 쌓아 온 품질과 신뢰를 흔들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 10월 15일 일본 시장조사 업체 도쿄상공리서치 발표에 따르면 올 1~9월 일손 부족으로 도산한 일본 기업 수는 299개에 이르렀다. 지난해 연간 도산건수 317건에 육박한다. 이대로라면 올해 400여 개 기업이 인력 부족으로 문을 닫을 전망이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전업주부의 경제활동 참여와 겸업 허용, 정년 70세로의 연장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노동 부족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버블종합연구소와 주오(中央)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2030년 노동 수요는 7073만 명에 이르는데, 노동 공급은 6429만 명에 그친다. 전체 노동 수요의 10분의 1에 육박하는 644만 명의 일손 부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부족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고용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 청소년들이 일본 취업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아무리 인력난을 호소한다고 해도, 채용 조건에 맞지 않는 직원은 선발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의 급여 수준은 취업준비생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며, 대기업 취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일본 기업에 취업했더라도 언어 장벽과 이질적 기업문화, 낯선 환경과 생활 여건 등에 적응하지 못하면 ‘취업 낭인’으로 맴돌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서의 취업난에 시달려 섣불리 일본으로 눈길을 돌리지 말고 현실감각부터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취업, 도·소매 〉 숙박·음식서비스〉 정보통신 순


▎사진:코트라 제공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일본 내 한국인 노동자 수는 5만5926명으로 전체 외국인 노동자(127만8670명) 수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 2만명, 2010년 2만8000명, 2012년 3만1000명, 2014년 3만7000명, 2016년 4만8000명 등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외국인 노동자도 동반 증가해 한국인 노동자 비중은 4%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이 20.9%로 가장 많고, 숙박·음식서비스업 14.2%, 정보통신업 13.8%, 기타서비스업 10.8%, 제조업 9.1%, 교육·학습지원업 8.4% 등 순이다. 파견·계약직 근로자 비중은 13.3%로 중국과 더불어 가장 낮은 편이다.

일본 기업들은 정보기술(IT)을 전공한 한국인 노동자를 가장 많이 찾는다. 일본은 한국보다 한발 늦은 2000년대 중반부터 고속통신망 보급이 확산되고 오픈마켓 등 온라인 산업 생태계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 등 교육계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데다 소자화 현상까지 겹쳐 웹 기획·디자인 등 기본적인 IT 전공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의 IT 인력은 현재 22만 명 부족하다. 2020년에는 29만 명, 2030년에는 59만 명 정도 모자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일본 기업에 취업한 현지 한국인 유학생 가운데 비제조업 취업자의 27.3%가 IT 업종에 입사했다. 일본 내각부도 2013년부터 업종 분류에 정보통신업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정보·보안, 모바일 등 분야의 인력도 부족할 전망이다. 일본 최대 헤드헌팅 회사인 리쿠르트도 한국 청년 채용을 위한 전담 인력을 두고 IT 인력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구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비전공자도 IT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무역협회가 교육·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일본 기업의 신입사원 급여는 낮은 편이다. 리크루트 워크스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월급은 20만4000엔(약 205만원), 대기업 평균은 22만엔. 월급의 3~4배 정도 지급되는 상여금을 고려하면 연 300만~350만엔 수준이다. 물론 일본은 직급이 오르고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급여가 크게 오르는 ‘상후하박(上厚下薄)’ 급여 구조라 오래 다닌다면 고임금을 노릴 수 있다. 급여가 윗사람에게는 후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박하기 때문이다. 2017회계연도 기준 일본 매출 상위 224개 기업의 평균 연봉은 780만엔. 일본 최대 IT 회사 소프트뱅크의 평균 연령은 40.5세, 평균 연봉은 1억1640만엔이다. 특히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급여 차별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들도 일본인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초과 근로수당 지급이나 연월차 사용은 기업의 규모를 떠나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다. 노동기준법에 따라 1주 40시간 또는 1일 8시간을 초과한 근무나 휴일에 출근한 경우 기본급의 25% 할증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한다.

신입보다 경력 선호 … 이직하려면 ‘3년의 벽’ 지켜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하기는 일본도 한국만큼 어렵다. 소니·히타치 등 대기업이 선발하는 대졸 신입사원 수는 해마다 대개 30~1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도쿄대·히토츠바시·교토 등 일본 3대 국립대에서만 매년 1만 명에 육박하는 졸업생이 나온다. 대기업에 취업하려면 입시만큼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한국인 일본어학교 교사는 “대기업이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하다 보니 대졸 신입 공채 경쟁률은 과거보다 더욱 높아졌다”며 “급여도 크게 늘지 않아 직장인들끼리는 헤이세이(平成) 불경기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지 기업으로 취업하는 경우는 13%에 불과하다.

다만 중소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더라도 업무의 전문성을 인정받는다면 대기업으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력파견 업체를 통해 대기업에 파견근로로 일하다 전입하는 경우도 많다. 이직을 위해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첫 직장에서 최소 경력 기준인 3년을 채워야 한다. 여인욱 리쿠르트R&D 글로벌채용 담당은 “경쟁력 있는 한국인 노동자가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옮긴 사례가 적지는 않다”며 “외국인 근로자가 3년 안에 전직하는 경우가 많아 ‘3년의 벽’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현지 생활에 잘 적응했는지 등을 인정할 수 있는 기간인 셈”이라고 말했다.

IT 인력 수요는 넘치는 데 비해 인문계 출신자의 취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통·번역, 무역, 어학 교육 등 일부 분야에서만 채용이 이뤄지고 있지만 채용인원이 적고 비정규 근로인 경우가 많다. 인문계 출신자는 대개 영업·인사·총무·회계·기획·법무 등의 분야로 취업하는데, 소통에 한계가 있는 외국인을 앉히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부 외식 업체들은 회계 등 사무직원으로 뽑은 외국인 노동자를 당장 일손이 부족한 영업점 조리사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해외 관광객 급증과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 유학생 등을 가이드나 통역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인문계 취업자 수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시 채용 늘리는 추세 … 일본어 1급은 필수

일본 기업들이 바라는 일본어 능력은 엔지니어의 경우 일본어 능력시험(JLPT) N2급을 내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일본 유학생 가운데 80% 가까이가 N1급을 보유하고 있어 N1급을 취득해야 취업 안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일본 데이터뱅크가 1만개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어떤 인재를 바라느냐’는 설문조사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38.6%로 1위를 차지했다. 또 최근 일본도 글로벌 인재를 선호하고 있어, 영어를 잘하면 취업에 유리하다. 일부 기업은 토익 점수에 따라 장려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대부분 일본 취업은 국내의 경우 취업박람회를 통해 이뤄진다. 비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정례적으로 취업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에 취업 사이트를 꼼꼼히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 현지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이라면 직접 현지 구인 사이트나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입사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이 좋다. 일본의 채용시장은 대학입시처럼 6월에 일괄적으로 구인전형을 개시한다. 다만 최근 게이단렌를 주축으로 상시 채용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일괄 취업 전형을 노리기보다는 우회로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대개 일본 기업의 채용 절차는 응모 접수, 설명회 개최, 서류 전형, 2~3회의 실무·인성 면접, 최종 면접, 내정, 입사 순이다. 일본의 기업에는 과거의 상명하복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데, 한국 남성 노동자의 경우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 비해 적응이 빠르다는 것이 현지 인사담당자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다만 나이 어린 상사와의 마찰이나 상사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업무 방식은 불만사항으로 꼽힌다.

1464호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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