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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40대] 직장·서울·가정에서 밀리고 또 밀려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서울 떠난 연령대 중 40대 비율 가장 높아... 정부 “40대 고용 지원정책 법적 근거 없어”

#1. 올해 46세인 P씨는 회사에서 밀려나기 직전이다. P씨는 국내 한 중견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대기발령을 받은 후 현재 실체가 없는 부서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다. P씨는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고 1990년대 후반 작은 IT 기업에 입사했다. P씨는 중견그룹 전산실 등을 거쳐 14년 전 지금의 직장에 개발자로 입사했다. 현재 이 회사 핵심 임원인 당시 부서장이 다들 기피하는 지역으로 해외 근무를 갈 때도 함께 건너가 꼬박 3년을 일했다. 최근 회사가 구조조정을 거듭하면서 P씨는 이 임원의 뜻에 따라 파견과 파견해제 명령을 거듭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임원은 P씨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P씨는 “주변 눈치도 있어서 (퇴사가)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2. 49세인 B씨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외국계 기업들에서 20년이 넘게 근무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기업들이다. B씨는 지난해 또 다른 글로벌 IT회사 한국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직급도 높고 연봉도 많다. 하지만 그는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지금 직장도 떨어져 지내는 가족의 권유로 옮겼다. B씨는 기러기 아빠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 그곳에서 대학을 나와 일도 했다. 직계 가족이 아무도 없는 한국으로 온 지는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 만나 결혼한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에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B씨는 몇 년 전부터 가족들에게 미국으로 돌아가서 함께 지내고 싶다고 말해왔다. B씨는 “미국에 들어갈 테니 식당이라도 같이 하자고 가족들에게 얘기해봤지만 반대가 심하다”고 말했다.

#3.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이상 살았던 45세 L씨는 결혼과 동시에 인천으로 이사했다. L씨는 서울의 한 대형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노려왔던 서울 재입성의 기회를 몇 년 전 잡을 듯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L씨는 재테크에도 소질이 있었다. 신혼집을 매입가보다 두 배나 더 받고 팔았지만 크게 오른 서울 집값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했다. L씨는 다시 서울 아파트를 사기는 힘들 거라고 판단해 최근 부평으로 이사를 갔다. L씨는 “한번 서울을 떠나면 돌아오기 쉽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기둥이라고 했었는데…


전통적으로 수입과 소비가 가장 왕성해 대한민국의 기둥이라던 40대 세대가 흔들리고 있다. 40대는 직장, 서울 거주, 가족관계 등에 밀려나고 있다. 40대 후반 고용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서울 인구에서도 40대는 지난해에만 5만 명 넘게 줄어들어 20대, 30대, 50대를 제치고 가장 큰 감소율을 보였다. 이와 달리 40대 1인가구는 10년 간 47만 가구에서 84만 가구로 크게 늘어났다. 40대 중년층은 정부 지원정책에서도 소외돼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세대다. 40대 지원 정책은 생애 경력 설계 서비스와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 2개다.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 관계자는 “대상자별 고용정책에서 고령자의 법적 근거는 50대이기 때문에 법을 고치지 않는 이상 40대를 위한 고용정책은 비어있는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3일 통계청의 연령대별 고용률에 따르면 2018년 40대 고용률은 79%로 전년보다 0.4%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0.8%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추락한 수치다. 지난해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연령층은 45∼49세였다. 45∼49세 고용률은 80.4%로 전년보다 0.7%포인트 떨어졌다. -0.7%포인트를 기록한 2009년, -1.7%포인트를 기록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하락세다. 50대 고용률은 75.2%였지만 전년에 비해서는 0.1%포인트 소폭 떨어졌다. 50~54세 고용률은 카드사태 당시인 2003년 이후 15년 만에 고용률이 가장 많이 떨어졌는데도 40대보다는 감소 폭이 적은 -0.4%포인트였다. 반면 20대 후반과 65세 이상의 고용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8년 25∼29세 고용률은 전년보다 1.5%포인트 오른 70.2%로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처음으로 70%를 넘겼다. 65세 이상 고용률도 전년보다 0.7%포인트 증가한 31.3%로 198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서울을 가장 많이 떠난 연령대도 2012년 이후 처음으로 40대가 됐다. 이전까지는 주로 30대였다. 통계청의 주민등록인구 통계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말 기준 서울의 총인구는 976만5623명으로 2017년 말 대비 9만1803명이 줄었다. 이는 1996년 13만2765명이 서울을 떠난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특히 40대는 지난해 처음으로 탈서울의 주축 세대가 됐다. 40대 서울 인구는 1년 만에 5만7615명(3.5%) 줄어들었다. 2.44%가 줄어든 29세 이하, 1.93%가 줄어든 30대, 2%가 늘어난 50세 이상에 비해 40대 인구 감소율이 두드러졌다.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서울에서 가장 많이 감소한 연령대가 40대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서울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30대에 서울을 빠져나갔던 이들이 40대가 돼 다시 들어와야 하는 시점에서 집값이 오르면 움직이기 힘들다. 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8억1595만원으로 2억6782만원인 인천보다 3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3억6071만원인 경기도보다 2배 이상으로 높았다.

40대 고용률 큰 폭으로 하락

가장 최근 센서스인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27%인 1인가구에서도 40대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2005년 317만1000이었던 1인가구 수는 2015년 520만3000가구로 64% 증가했는데, 40대 1인가구는 47만4000가구에서 84만9000가구로 무려 79.2%나 늘어났다. 20대는 30.7%, 30대는 5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50대와 60대 1인가구 증가율도 50%대에 머물렀다. 40대 1인가구의 증가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미혼 독신가구의 숫자도 함께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8일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과 이성교제에 관한 한일 비교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40~44세 미혼 남성 비율은 1995년 2.7%에서 2015년 22.5%로, 45~49세 미혼 남성 비율은 1.3%에서 13.9%로 폭등했다.

40대 1인가구 증가, 탈서울 비중 증가는 고용 환경이 변하면서 직장에서 밀려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과 연관이 크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부작용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산업 간에 환경과 경기 변동의 편차가 커지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하거나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적 실업 혹은 탐색적 실업 형태의 증가가 50대에 비해 40대에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40대의) 전직이나 창업 때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469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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