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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어디로] ‘관세→환율·기술’ 전쟁으로 전선 바뀔 듯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美 증시 부진, SOC 투자 여의치 않자 숨 고르기... 중국에 기술이전 강제 금지, 금융시장 개방 등 요구

▎시진핑 주석(왼쪽)과 트럼프 대통령.
“농산물과 에너지, 공산품 등 상당량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중국의 약속에 논의를 집중했다. 계속적 검증과 법 집행이 가능한 협상에 도달하는 내용이었다.” 1월 7~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차관급 무역협상에서 두 나라는 진일보한 협의 결과를 내놨다. 중국이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늘려 4208억 달러(지난해 1~10월 기준, 약 472조원)에 이르는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규모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1월 말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고위급 회담 등을 거쳐 휴전 시한인 3월 1일까지는 해법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일 아르헨티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하면서 이런 논의가 성사됐다. 지난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선 셈이다. 관세 문제를 꺼냈다가 되레 국내 경제에 타격이 생기자 서둘러 갈등 봉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완전히 물러서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패권국가로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입장이라 환율·특허 등으로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 압박을 거둔 것은 경제 문제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대중 수입액 전액에 해당하는 약 5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최고 25%의 관세를 매긴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이 세계적 교역 위축과 미국 내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미 증시가 급락하는 등 혼란이 가중됐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8%까지 하락했지만 경제정책 지지율만은 50%를 넘었다. 그러나 증시를 비롯해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지표가 나빠지자 부랴부랴 중국과의 관개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이번 미·중 차관급 무역협상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주식시장의 랠리가 다시 점화되길 바라고 있어 중국과 무역협상 타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진단했다. 당초 1월 7~8일 이틀 일정으로 시작된 이번 회담이 하루 연장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타결을 재촉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차기 대선 노리는 트럼프에게 경제 안정 급해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차기 대선 행보에 나서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경제 안정이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부터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임기 전반기인 2017~18년은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중심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미국 경제를 이끌었는데, 후반기는 실물 산업에 투자를 늘려 경제를 끌어가겠다는 계획에서다. 미 정부는 1조5000억 달러의 투자액 가운데 2000억 달러만 정부가 보조금 형태로 부담하고 나머지 1조3000억 달러는 민간에서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에너지 등 인프라 산업에 투자금이 유입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증시가 위축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미·중 무역전쟁이 종식될 경우 S&P500가 3000선으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압박하며 기준금리 인상을 억제하려는 것도 민간 SOC 투자자의 조달금리 부담을 낮춰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예산편성을 가로막고 있다. SOC 투자의 첫 단추인 57억 달러 규모의 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 편성부터 서로 충돌하며 미국 연방정부가 12월 22일부터 셧다운(일시 업무정지)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미국 정치 상황 때문에도 중국과의 갈등을 이어가기 어렵다.

다만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이어질 전망이다. 관세 카드가 먹히지 않았고 내부 문제가 불거져 미국이 숨을 고르고 있지만,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에 대한 압박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민주당도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대한 공격적 외교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구도는 백악관은 물론 의회도 지지하고 있어 중국을 향한 압박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다음 타깃은 중국 기술 기업일 확률이 높다. 미국의 핵심 산업 기술을 도용하거나 훔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한 일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휴전상태에 돌입했지만 자국 기술기업에 대한 중국의 자본 투자는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협의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자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와 지적재산권 도용, 비관세장벽, 사이버 절도 등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중국은 날로 높아지는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제조업 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후발 공업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다. 스마트팩토리·인공지능(AI)에 기반을 둔 인더스트리 4.0 체제 구축과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선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해외 투자를 통해 기술기업을 인수하거나 기술이전을 받고 있는데, 미국이 이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지난해 말 중국 정부의 기술이전 강요를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미국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만 역시 반도체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7명을 체포하는 등 중국에 대한 주요국의 기술 보호주의가 강해지고 있다.

유럽도 중국의 기술이전 강요해 강력 반발

미국은 환율 문제로도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위안화 환율을 미 1달러당 7위안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화폐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지 않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1985년 일본·독일과 맺은 플라자합의 때처럼 위안화 가치를 절상시켜 중국과의 무역역조 완화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서 글로벌 자금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금융시장 개방도 이번 협상의 의제로 올렸다. 중국은 지난해 4월 증권사·자산운용사·선물회사·보험사의 외국인 투자비율 제한을 3년 내에 폐지하는 내용의 금융시장 개방 로드맵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불투명한 내부 통제에 불신을 갖고 있어 이런 조치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미국은 앞으로 중국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줄이고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체제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거꾸로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어 막대한 중국 자본이 해외에서 차별 없이 투자되는 길을 모색할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백악관의 매파는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이전 강제 금지, 금융시장 개방 등 구조적 개혁을 축으로 중국을 압박하며 중국과의 문제 해결을 장기전으로 끌고가려는 전략을 세웠다”고 분석했다.

1468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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