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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가 ‘포스트 반도체’ 될까] 삼성·LG·SK 앞다퉈 兆 단위 투자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중간소재 제조사 투자·합작도 활발… “망설이면 끝” 반도체 치킨게임 경험 영향

▎중국 난징 신장 개발구에 있는 LG화학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다. 올 한 해 조(兆) 단위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급증하는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고 ‘포스트 반도체’로 주목 받는 배터리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전기차, 원통형 배터리 수요 증가


▎광양의 포스코 수산화리튬 생산라인.
LG화학은 1월 10일 중국 난징 배터리 생산공장 증설을 위해 총 1조2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난징 신장 경제개발구에 위치한 전기차 배터리 1공장과 소형 배터리 공장에 2020년까지 각각 6000억원씩을 투자하기로 했다. LG화학은 이곳 외에도 중국 난징 빈장 경제개발구에 지난해 10월부터 전기차 배터리 제2공장을 짓기로 했다. 2023년까지 2조1000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해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1회 충전에 주행거리 320㎞ 이상) 50만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폴란드 전기차 배터리 공장 생산능력도 6GWh 수준에서 15GWh까지 늘리고 있다.

중국 산시성 시안에 배터리 공장을 둔 삼성SDI도 1조원 안팎을 투자해 제2공장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연간 약 40만대분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규모로 추정된다. 중국 톈진시 소형 배터리 공장 증설도 올해부터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설립한 기존 소형 배터리 공장 인근 10만㎡ 부지에 4000억원가량을 투자해 신규 라인을 3~4개 추가한다. 미국 미시간주 전기차 배터리팩 생산라인 증설에도 미시간주로부터 약 111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약 7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도 지난 1월 4일 미국 조지아주와 1조90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장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이 자리에서 수년 내로 5조6000억원를 추가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중국 장쑤성 창저우에 베이징자동차·베이징전공 등 합작 파트너사들과 함께 8200억원을 투입해 신규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해 3월에는 2022년까지 총 8400억원이 투자되는 헝가리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열기도 했다.

배터리 업체들은 공장 증설뿐 아니라 중간소재 제조사 투자 및 합작법인 설립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SDI는 2차전지 핵심 소재를 제조·납품하는 자회사 STM(에스티엠)에 684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또 양극재 제조설비를 STM 측에 384억원 규모에 양도한다. SK㈜도 지난해 11월 말 약 2700억원을 투자해 2차전지 필수 부품인 동박(銅箔)을 제조하는 중국 왓슨(wason)의 지분 약 30%를 인수해 중국 1위 동박 제조 업체의 2대 주주가 됐다. LG화학은 2016년 9월 GS이엠의 양극재사업을 인수해 양극재 생산기술을 확보하면서 양극재 자체 생산을 시작했다. 올해 4월에는 2020년까지 2394억원을 출자해 세계 1위 코발트 생산기업인 중국의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전구체 및 양극재 합작 생산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이들 업체의 생산 확대는 시차를 두고 재료 업체의 증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포스코는 전남 광양에 건설하기로 한 리튬공장 생산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호주 광산개발 기업 필바라와 함께 추진하는 리튬공장의 생산 규모를 기존 계약보다 33% 확대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 포스코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총 10조원을 리튬 추출 기술 효율화와 공장 신설, 국내외 양극재 공장 건설 등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스코에 따르면 세계 리튬 수요량은 2017년 25만t에서 2025년 71만t으로 증가할 전망이며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이처럼 국내 기업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배터리 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단 핵심 수요처인 전기차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뉴스 파이낸스 에너지(BNEF)에 따르면 현재 전체 차량 판매에서 1%에 불과한 순수전기차 판매 비중은 2020년 3~6%로 오르고 2030년이면 30%에 육박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내년 610만대에서 2025년 2200만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뿐 아니라 파나소닉·CATL 등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도 생산 확대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유럽의 새로운 국제표준 시험방식(WLTP) 도입 등 환경 규제 강화도 전기차 수요를 늘리는 요소다.

전기차용 배터리뿐만이 아니라 전기스쿠터와 전기자전거를 비롯해 무선청소기 등에 들어가는 원통형 배터리 수요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B3에 따르면 원통형 배터리 세계 수요는 2015년 23억개 수준에서 신시장의 확대에 따라 연평균 27% 성장, 2019년에는 60억개 수준에 다다를 전망이다. 업계는 2017년 33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인 세계 배터리시장 규모가 연평균 25% 성장해 2025년 1600억 달러(약 182조원)로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5년이면 글로벌 배터리시장 규모가 메모리반도체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주는 곳이 있을 때 시설을 늘리자는 계산도 깔려 있다. 최근 배터리 업체의 수주 실적이 나쁘지 않다. LG화학은 BMW·제너럴모터스(GM) 등 11개 완성차 제조사에 전기차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다. 삼성SDI도 재규어·포르쉐 등 8개 완성차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11월 폴크스바겐 전기차 배터리 공급자로 추가 선정됐다. 현재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누적 수주 잔고는 65조원, 삼성SDI는 45조원, SK이노베이션 35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적어도 몇 년 간은 물량을 해소할 곳이 있다는 점에서 생산 증설의 부담이 적다.

업계에선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과점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저 배터리 회사들이 연간 50GWh 이상의 생산 규모를 갖추면 후발 주자들이 쉽게 진입할 수 없는 ‘장벽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 반도체 산업에서 경험했던 과정이다. 신생 회사가 배터리시장에 진입하려면 기술력 및 시장 확보에 7~10년은 걸린다는 것이 정설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향후 상위 5개 업체가 배터리시장의 80%를 장악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리 몸집을 키워놓지 않으면 생산량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2020년 中 전기차 보조금 폐지 기대감도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할 것이란 기대도 배터리 투자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2016년 초부터 지난해까지 자국 기업 육성과 사드 보복에 따른 보조금 차별 조치로 중국 시장 공략에 애를 먹었다. 지난해 마지막 중국 정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도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기업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자동차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보조금 지급 규모는 단계적 하향 조정이 이뤄진 후 2020년 소멸될 예정이다. 이렇게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할 경우 중국 배터리 제조사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2020년 보조금 제도 폐지를 앞두고 정책 변화 가능성이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내수 시장에서 몸집을 키운 중국 배터리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은 위협 요소다. 한국 업계가 중국의 보조금 견제를 받는 동안 중국 CATL과 비야디는 현지 내수시장 독점을 바탕으로 각각 전기차 배터리 세계 시장점유율 1위, 3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실제 CATL은 이미 폴크스바겐·벤츠·BMW와 공급 계약을 했다. 패러시스는 최근 독일 완성차 업체와 140GWh 규모 배터리 공급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보조금 정책이 풀린다 해도 이들이 구축해 둔 독점 체제를 어떻게 뚫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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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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