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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 열리는 베트남] 북한에게 싱가포르보다 현실적인 참고서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공산당 지배 체제 아래 개혁개방으로 경제 키워… 적국이던 미국과 밀접한 경제관계

▎지난해 6울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위원장(왼쪽)과 트럼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 5일(현지시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월 27일부터 28일까지 양일간 베트남에서 개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미연방의회에서 가진 새해 국정연설에서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나와 김정은 위원장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와 김정은 위원장은 만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베트남을 지목하기 전부터 사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는 베트남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 얘기가 처음 나온 건 지난해 12월 2일이다. 이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던 트럼프 대통령은 에어포스원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관련해 말을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 군데를 검토 중이다. 아직 결정하진 않았다”라고 말한 후 “아시아인가”라는 질문에 “비행거리 내에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비행거리’를 말한다는 것은 북한에서 멀지 않다는 의미다. 이때부터 몽골·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이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북한, 베트남과 역사적 인연도 상당


하지만 캄보디아·라오스는 통신과 보안 인프라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몽골은 겨울철 혹한 가능성이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2월 13일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화학무기인 VX로 독살된 곳이라 북한이 꺼릴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는 12월 들어서도 규모 4.7~6.3의 지진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베트남 뿐이었다.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베트남을 방문하고 시리아를 찾았던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 12월 6~8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공식 방문하면서 2차 북미 회담의 베트남 개최설에 무게를 더했다. 이용호 외무상은 베트남에서 1월 30일 팜 빈 민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과 회담하고 2월 1일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비공개로 1시간가량 면담했다. 농업과학원과 함께 유명 관광지인 할롱 만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에서 회담 장소 문제를 논의한 이 외무상이 중국 측과 조율을 위해 베이징을 공식 방문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북한과 베트남은 역사적인 인연도 상당하다. 베트남은 60년 전인 1958년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김일성 주석이 북베트남을 방문한 인연도 있다. 베트남전 당시엔 다수의 북한군 조종사가 베트남 공군기를 몰고 미군기와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1967년 하노이 부근에 묘지가 조성됐으며, 2002년 북한 당국이 유해를 모두 가져간 후로도 베트남 당국이 묘터를 계속 관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월 말에 열릴 것이라고 밝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열렸던 1차 북미 회담은 여러 비판도 있지만 북미 간의 첫 정상회담이라는 의미에 일부 합의문까지 내는 성과를 낸 것이 사실이다. 당시 미국과 북한은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양국 관계 설립,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4·27 판문점 선언 재확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대규모 경제 개발 협력, 한반도 전쟁 미군 포로 및 전쟁 실종자 유해 수습·송환에 합의했다.

여기에 더해 번영하는 싱가포르에서 열렸다는 점 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회담 전날인 6월 11일 싱가포르를 돌아보며 야경을 구경하기까지 했던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의 번영에 자극 받아 북한의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인구 550만의 싱가포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7713달러로 세계 8위의 부자 나라다. 싱가포르는 특히 권위주의형 일당지배국가 체제를 유지하며 서구식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눈길을 끌만하다. 싱가포르는 시장경제와 개방경제 체제로 효율을 높이면서도 주요 산업과 미디어를 국영기업 테마섹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정치적으론 리콴유(李光曜) 집안의 인민행동당이 사실상 세습 일당독재를 하며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김 위원장에게 체제유지를 위한 힌트를 줄 수 있었다는 평가다.

베트남도 이런 배경에서 싱가포르와 일맥상통한다. 싱가포르가 너무 높은 목표라면 베트남은 북한에 훨씬 현실성이 클 수 있는 목표다.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발군의 경제개발 모범국가다. 경제지표가 이를 확실하게 말해준다. 국제통화기금(IMF) 2018년 전망치에 따르면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은 명목금액 기준 2407억 달러로 세계 47위다. 구매력기준(PPP)으로는 7057억 달러로 세계 35위에 해당한다. 1인당 GDP는 2018년 전망치가 명목금액 기준으로 2546달러지만 물가 등을 감안한 PPP로는 7463달러에 이른다.

경제성장률은 2018년 1분기에 7.38%를 이뤘으며 2017년에는 6.91%를 이뤘다. 실업률은 2018년 1분기에 2.2%로 완전 고용 상태다. 같은 기간 노동인구는 5510만 명으로 집계됐다.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이어갈 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평균 월급여는 2017년 기준으로 650만동(약 300달러)에 이른다. 국민이 먹고 살 만하다는 이야기다.

무역 통계를 보면 베트남이 대외개방형으로 확실히 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수출은 2140억 달러에 이른다. 휴대전화·의류·전자·기계·신발 등이 주요 수출품이다. 수출 대상국과 수출비중은 미국 19.4%, 중국 16.6%, 일본 7.9%, 한국 6.9% 순이다. 수입은 2100억 달러로 기계류·휴대전화(부품)·석유제품·의류 및 신발 재료·전자제품 등이다. 수입 대상과 비율은 중국 27.6%, 한국 22.1%, 일본 7.9%, 대만 6%, 태국 5%, 미국 4.4% 순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향해 경제개발 모델로 권유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북한은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IMF 등은 2015년 기준으로 GDP 약 250억 달러, 1인당 GDP 약 1000달러로 추정한다. 세계 최빈국 수준인 것은 물론 제대로 된 통계도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폼페이오 “베트남의 기적과 같은 경제 번영 이루라”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유력한 베트남 다낭. / 사진:연합뉴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폼페이오 장관은 이미 지난해 7월 8일 김정은 위원장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베트남의 기적과 같은 경제 번영을 이루라”라고 촉구했다. 폼페이오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현지 기업인 모임에 참석해 과거 미국의 적국이었던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 성장을 이룬 상황을 예로 들며 이런 발언을 했다. 미국과 베트남은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1995년 수교했다. 폼페이오는 “미국과 베트남 간 교역량은 지난 20년 동안 8000%로 늘었고, 미국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를 (베트남에) 투자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베트남이 싸우지 않고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국가가 미국과 함께 더 밝은 미래를 만들기로 결심하면 미국이 약속을 지킨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제 성장을 돕고 체제 보장을 지원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강조한 셈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는 수도 하노이나 중남부 경제도시 다낭 중 한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옛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었던 호찌민도 가능성이 있지만 과거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미국과 북한, 그리고 베트남 모두가 거북해 할 가능성이 있다. 다낭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다낭과 인근 지역은 도이머이를 시작한 베트남이 한국·미국 등과의 경제 협력으로 번성하는 밝은 현장이면서 베트남전 당시 비극이 벌어진 어두운 역사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낭은 남중부에 위치한 항구로 인구가 약 106만 명이다. 베트남 최대 도시인 남부 호찌민(약 844만 명), 수도인 북부 하노이(약 758만 명), 북부 항구도시인 하이퐁(약 210만 명), 메콩강 삼각주 도시인 남부 껀터(약 160만 명)에 이어 다섯째로 큰 도시다. 이 다섯 개 대도시는 행정구역상 베트남의 중앙직할시로 운영된다. 다낭도 1997년 기존 소속이던 꽝남성에서 분리돼 네 번째로 중앙직할시의 지위를 얻었다.

주목할 점은 다낭이 도시 규모와는 별개로 베트남에서 가장 도시화가 잘 진행됐으며 산업도시로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베트남의 개혁개방(도이머이)에 따른 경제성장의 성과가 가장 잘 드러난 도시이기도 하다. 다낭은 항공교통이 편리한 도시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공군기지가 위치해 다낭 국제공항은 물자와 인원 수송으로 세계에서 가장 붐비던 곳이었다. 지금도 항공 교통이 발달했으며 2011년 새롭게 신국제터미널을 개통했다. 한국, 일본, 중국 및 동남아시아의 주요 도시와 국제편이 연결되고 있으며 국내편 운항도 활발하다. 한국의 인천, 부산, 대구와 연결된다.

다낭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 휴양소가 설치됐던 지역으로 ‘차이나 비치’로 불리는 20km에 이르는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시내에 호텔에 많고 중심지에서 가까운 곳에 해변 리조트가 여럿 들어서 있어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르기에 인프라가 충분하다. 다낭은 관광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해변과 함께 강을 지나는 6개의 다리가 볼거리이다. 음식 문화로도 이름 높다. 인근 꽝남성의 미선 유적지는 고대 참파왕국이 4~14세기에 걸쳐 세운 힌두교 사원들의 유적지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참파왕국은 베트남의 한 민족인 참족이 세운 왕조로 192~1832년 베트남 중부지방에 존속했다.

도이머이 성과 두드러진 다낭


▎하노이 전경. / 사진:유튜브 캡처
다낭은 한국과도 악연이 있다. 해병 제2여단인 청룡부대가 1965년 10월 9일 베트남에 도착해 미군 101공수사단 1여단과 교대해 다낭 인근에 배치됐다. 미군 101 공수사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선봉으로 나섰던 정예 사단으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속에서 라이언 일병의 소속부대다. 노르망디에서 독일까지 계속 전투를 치렀던 미군 부대를 다룬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러더스]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그만큼 치열한 지역에 청룡부대가 배치됐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캄라인 만에 상륙해 주둔하다가 1966년 8월 꽝남성 쭈라이로 옮겼으며 1967년 12월부터는 호이안에 주둔했다. 청룡부대가 맡았던 다낭을 포함한 꽝남성과 꽝응아이성은 당시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했던 북위 17도선 인근으로 치열한 전투가 잦았다. 베트남전 최대의 보급기지였던 다낭 비행장 배후의 안전 확보를 위해 정예부대가 배치돼 수많은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청룡부대 병력 294명은 1967년 2월 14~15일 다낭 남쪽 쾅응아이성 추라이의 작은 마을인 짜빈동에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 2400명과 맞붙어 대승을 거뒀다. 짜빈동 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로 청룡부대는 베트남전 연합군의 엘리트 부대로 각인됐다. 청룡부대는 1972년 파리평화협정에 따라 5월 4일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육군 수도사단인 맹호부대도 1965년 10월 23일부터 73년 3월 8일까지 베트남에 파병됐다.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에 30만여 명을 파병해 5099명의 전사자와 1만1232명의 부상자와 4명의 실종자를 냈다.

안타까운 점은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게릴라전이 일반적이던 베트남전 상황에서 다낭 주변에서 주민이 학살되는 사건도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청룡부대는 1968년 북베트남군과 베트공의 구정공세에 맞서 1월 30일부터 2월 29일까지 당시 다낭이 속했던 꽝남성에서 반격작전인 괴룡1호 작전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1968년 2월 22일 꽝남성 디엔반의 하미 마을에서 청룡부대원들이 비무장 민간인 135명을 살해하고 가매장했다는 하미 마을 학살사건이 그중 하나다. 2000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하미 마을에 3만 달러를 기부해 위령비를 세우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전우복지회가 비문에 적힌 학살 과정에 대한 내용을 지울 것을 요청했지만 마을 주민이 반대하면서 결국 비문을 지우지는 않고 연꽃 모양의 대리석을 그 위에 덧씌우는 것으로 합의했다. 1968년 2월 12일꽝남성 디엔반의 퐁니·퐁넛 마을에서 청룡부대원들이 주민 69~79명을 살해한 퐁니·퐁넛 학살 사건은 미군에도 보고돼 문제가 됐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과도 악연

1966년 2월 26일 빈딘성 떠이선의 고자이에서 380명이 사망한 고자이 학살사건에 맹호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증언이 부실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당시 상황을 기록한 벽화에서 학살자로 기록된 군인이 오른팔에 견장을 붙인 것으로 묘사돼 왼팔에 이를 부착하는 맹호부대원일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1966년 12월 3일부터 6일까지 꽝응아이성 빈호아에서 430명의 주민이 사망한 빈호아 학살이 당시 이 지역에서 작전을 치렀던 청룡부대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청룡부대는 이 지역에서 다낭 공항을 보호하기 위한 추라이 작전을 벌였다. 민간인 36명이 사망한 구덩이에는 현지 주민들이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겠다’는 내용의 문구를 새긴 증오비를 세웠다.

이렇게 베트남은 한국과 비극적인 과거사라는 복잡한 사정은 있지만 현재는 최고의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다. 삼성전자의 생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 등 수많은 한국 기업이 투자해 베트남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 한국의 의류와 신발 관련 중소기업도 많이 진출해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장소다. 2차 북미 회담이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느냐도 중요하지만 이떤 곳에서 열려 북한에게 어떤 교훈과 영감을 줄지도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은 최적의 입지를 갖췄다. 베트남 스스로 실시했던 도이머이(개혁개방)의 성공을 보여주는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1471호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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