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산극대화·효용극대화 동시에 이루는 사회 

 

신세철
‘생물의 세계에는 약육강식(적자생존)과 상호수혜(공생관계)의 두 가지 삶의 모습이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사회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과 서로 돕고 돕는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 중 어느 쪽이 문명의 진화와 발전에 더 크게 기여했을까? 능률을 의미하는 적자생존과 형평을 뜻하는 공생관계는 언뜻 대립되는 개념 같지만, 생각해 보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보완관계에 있다. 형평은 능률을 높이면서, 능률은 형평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생산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효용극대화를 이루는 최고선(the supreme good)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경사회 같은 단순 재생산 사회에서는 서로 도와가는 상호수혜가 인류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여유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해마다 생산량이 거의 일정했던 시기에는 되도록이면 더 나누어야 한정된 재화의 효용가치를 좀 더 크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 이후 확대 재생산 사회에서는 적자생존 원칙에 따른 인센티브 효과가 생산성을 더 높이고, 더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이 돈을 버는 과정에서 경제 성장과 발전이 추구됐다. 기업가정신과 근로의욕을 발휘해 계속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결과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도 먹여 살리고 삶도 더 윤택해진다.

경제사회에서 적자생존과 공생관계의 틀을 생각해 보자. 먼저 적자생존 세계에서는 경제활동의 목표가 생산극대화를 통한 이익극대화에 있다.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윤이,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생산이 중요하다. 이윤극대화 세계의 강령(code)은 가격기구에 따른 ‘정글 법칙’이다. 누가 만들든 관계없이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만이 팔리는 냉정한 시장에서 개인의 이윤추구 동기에 따라 창출된 부가가치는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해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귀착된다. 토지·노동·자본·기술·정보 같은 생산요소들이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대가로 시장에서 지불되는 몫이 바로 제1차 분배다.

1차 분배가 외부 개입이 없는 경쟁시장에서 합리적으로 이행될 때 효율적 자원배분을 가져오고 생산성이 향상되는 과정이 바로 시장경제의 축복이다. 생산성, 즉 능력에 따라 1차 분배가 이루어지므로 소득불균등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데,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합리적 평등이 경제적 동기를 유발해 중장기로는 생산능력도 확충된다. 생산능력 증대는 경제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수용능력을 증대시키는 지름길이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누구는 큰돈을 받고 다른 누구는 푼돈을 받는 나라가 과연 자유주의 민주주의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

다음, 공생관계는 경제활동의 최종 목표를 효용극대화에 둔다. 경제의 대원칙은 ‘한계효용체감 법칙’이다. 나누어 가질수록 재화의 가치를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배부른 사람들이 먹는 고급 호텔의 상어지느러미 요리보다, 배고픈 사람들이 먹는 장터 순댓국 한그릇의 효용이 때로는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1차 분배의 결과 초래되는 불균형을 보완하는 제2차 분배가 활발할 때 효용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조세·사회보장기구에 의한 보정(補正) 재분배, 즉 2차 분배는 사회의 총효용을 키우는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하고 있다. 사실이지 모든 생산 활동의 최종가치는 효용에 있다.

제2차 분배는 조세·사회보장기구·자선단체 등에 의한 보정적 분배다.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에게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그리고 경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된다. 2차 분배의 경제적 순기능은 ▶빈곤선(poverty line)을 완화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소비수요 안정을 통해 재생산이 촉진하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회에서 ‘누구나 자칫하면 경제적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기능을 하며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경쟁력을 상실할 경우의 불안감을 줄여 부당한 과당경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적정한 2차 분배야말로 사회를 안정시켜 간접적으로는 생산성도 향상시키는 기능을 한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생산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해 생산극대화를 위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복지는 자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 누구도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에는 누구든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할 때 제2차 분배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기능까지 한다.

제1차 분배 왜곡은 누군가의 초과손실과 동시에 누군가의 초과이익을 발생시켜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가격 기능,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여야 할 시장이 임금 가이드라인, 담합, 노조 압력 등 ‘보이는 손’에 의해 일그러질 경우 시장가격기능이 훼손되며 그 사회의 총생산능력(성장잠재력)은 쪼그라들고 결과적으로 총효용도 감소하게 마련이다.

보정적 재분배가 과다하면 경제 주체들의 경제적 동기부여를 약하게 만들어 삶의 기반을 근원적으로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총생산도 총효용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도한 사회안전망은 공짜 심리를 유발해 가난에서 벗어날 의지를 상실하게 하고 삶의 근거를 뿌리째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미국의 빈곤층에서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실제로 시장기능이 발달해 1차 분배가 합리적으로 잘되는 나라일수록 제2차 분배도 활발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예컨대, 부자이면서도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고 자기 재산의 90%를 기부했다는 워런 버핏의 경우가 그렇다. 반대로 남미·남유럽 일부 국가처럼 빈부격차가 극심할수록 기부문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사람일수록 사회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가지게 마련이다. 사회수용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혼자서는 재산 형성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반대로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악착같이 큰돈을 번 사람일수록 더 인색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부정부패 또는 정경유착으로 수단 방법가리지 않고 돈을 번 사람일수록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남을 더 무시하고 깔보는 행태를 보인다. 아마도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으로 짐작된다.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적 모습이다.

성장과 분배 논쟁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면 대부분 1차 분배와 2차 분배를 혼동하는 데서 엇갈린 판단과 비생산적 주장을 한다. 공생관계는 효용극대화, 적자생존은 생산극대화의 명제를 가진다. 생산 없는 효용은 불능이며, 효용 없는 생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자생존과 공생관계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보완관계에 있다. 형평은 능률을 해치지 않으면서, 능률은 형평을 보완해가는 사회가 생산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효용극대화를 이루는 최고선(the supreme good)을 추구할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다가는 이것저것 다 망친다.

-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전 금융감독원 조사연구국장)

1475호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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