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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출범으로 본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 현행법 어디에도 정의 없는 유령 같은 존재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배달라이더, 야간·장시간 노동에 노출… 4대 보험은커녕 사고 나도 보상 받을 길 없어

“대책 없는 배달산업, 라이더가 위험하다!” 지난 5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 단체가 노동조합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근로자의 날(노동절)이었던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 노동조합의 집회가 열렸지만, 유독 이 기자회견에 관심이 쏠렸다. 다소 앳돼 보이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 혹은 ‘디지털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플랫폼)을 통해 음식을 배달하는 20~30대 라이더였다. 이들은 이날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의 출범을 알리며 정부와 배달 플랫폼을 규탄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플랫폼사(社)의 배달기사 산재·고용보험 납부 ▶배달 오토바이 보험료 현실화 ▶최소 배달료 보장 ▶정부·기업·라이더유니온의 3자 단체교섭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오토바이 배달은 그동안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았던 영역임에도 플랫폼사는 이윤만 얻고 법적인 책임은 피하고 있다”며 “플랫폼사는 기존의 간접고용을 디지털 기술로 용이하게 한 것일 뿐 기존의 산업과 같다”고 주장했다. 김성혁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장은 “플랫폼 노동자는 현행법 어디에도 정의하고 있지 않은 유령 같은 노동자”라며 “4대 보험 적용 등 사회안전망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달산업 성장에 배달라이더도 급증

배달산업은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4월 월간 이용자 수가 1030만 명으로, 서비스 시작 9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이용자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민 5명 중 1명은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했다는 얘기다. 4월 주문 건수도 역대 최대인 3000만 건에 육박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지속적으로 배달 주문이 늘어난 영향이다. 배달의민족 등 관련 업계가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선 영향도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이 같은 배달산업 규모가 올해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배달산업이 쑥쑥 크면서 배달라이더도 급속히 늘고 있다.

라이더는 배민이나 부릉·바로고·생각대로 등 배달 플랫폼사의 콜을 받아 일을 한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플랫폼을 통해 근무를 할 수 있는 게 특징이자 장점이다. 플랫폼사는 라이더에게 입사 전 교육이나 로고 복장 착용을 요구하거나 근태를 관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플랫폼사는 라이더에 대한 사회보험,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 준수 의무가 없다. 라이더는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한 배달 플랫폼사 관계자 “(우리는) 배달기사와 고객을 연결하는 중계자로 플랫폼사와 배달기사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라이더는 심지어 배달 필수품인 오토바이도 본인의 것을 이용하거나 본인이 대여해 사용하기도 한다.

노동자가 아니므로 법에서 정한 노동 기본권은 물론 법정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과도 거리가 멀다. 그러니 근무 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배달라이더는 택배기사와 마찬가지로 배달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많이 배달할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여서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배달기사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0.6시간에 이른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라이더는 건당 수수료가 임금의 전부인데, 자동차종합보험의 3배 수준이 넘는 이륜차종합보험이나 수리비 등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야간이나 장시간 노동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등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업무 중 사고를 당해도 구제받을 길이 없다. 배달라이더가 늘면서 오토바이(이륜차) 관련 교통사고는 꾸준히 증가세다. 최근 5년간 전체 교통사고는 2015년 23만2035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접어든 반면, 이륜차 사고는 같은 기간 1만433건에서 1만3730건으로 30%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보상 받을 길은 없다. 일부 플랫폼사가 사고 라이더를 지원하고는 있지만, 이는 법령에 의한 공식 사업이 아니라 복지 차원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 실제로 배민은 5월부터 음식 배달 도중 사고를 당한 라이더를 위한 의료 지원을 시작했지만, 이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개인 자격으로 기부한 20억원으로 운영된다.

신특수고용노동자 55만명 넘어

문제는 이처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가 배달라이더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리운전·가사노동중개 등 앱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 플랫폼 노동자 대부분이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3월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의 공동조사 결과(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특수고용노동자 220만9343명 중 55만335명이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신(新)특수고용노동자였다. 이 55만335명은 점포의 소유 여부, 보수 책정의 주체, 업무지시를 받는지 여부,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는지 여부 등을 따지는 기존 연구나 통계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로 포착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들을 ‘기존의 특수고용노동자보다 자영업의 특성이 강한 업종’이라고 정의한다.

플랫폼 노동자가 급속히 늘면서 이들에 대한 노동환경 개선 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를 정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플랫폼 노동자는 국제노동기구(ILO)가 구분하고 있는 ‘비정형 고용’의 4가지 유형(임시고용, 단시간 노동, 파견 노동 및 다자 계약, 위장된 고용 관계 및 종속 자영업) 특징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조차도 이들을 노동자로 볼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플랫폼사와의 종속관계 여부 등도 사업 형태별로 다 달라 사업 형태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사업 형태별로 접근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륜차물류(퀵서비스·배달대행 등)를 포괄한 가칭 ‘생활물류서비스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배달라이더 등이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노동계는 기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5월 2일 이와 별도로 청소년(18세 미만)에 한 해 산업재해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을 내놨다. 우선 음식점 등지에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정부가 산별적으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근무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노동계는 기존 기업이 플랫폼 노동을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한다. 현재의 도급·파견·계약·일용직 등의 업무가 대부분 플랫폼 노동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혁 정책연구원장은 “전통적인 노동이 플랫폼 노동으로 전환되면 기존과 똑같이 배달하고 운전하고 집을 청소하지만, 퇴직금과 사회보험은 물론 주휴·월차수당까지 사라지는 등 처우는 확 나빠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새로운 기준 제시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서둘러 직접 근로자성을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보호 범위를 정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 현 정부 정책은 비정규직, 장기 근로자의 복지 제고 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며 “시장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만큼 플랫폼 노동자처럼 초단기 노동 등에 대한 배려, 보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당장 현행 노동법 체계 내에서 탄력성을 발휘해야 한다”며 “플랫폼 노동을 비정형 노동관계로 보고 노동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되, 일부 노동법 적용을 면제하거나 별도의 특별 규정을 두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484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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