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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끄는 남북 회계협력 단계별 로드맵] 남북 회계협력 “시장경제요소 반영부터”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한국공인회계사회 [남북경제협력, 회계통일이 우선이다] 발간... 회계 전문가 양성, 용어 통일 등 과제

▎지난해 9월 14일 개성공단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해빙 무드를 이어가면서 어느 때보다 남북 경제협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북한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남북경협 관련주가 급등락하고 있다. 방향과 속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북한과의 경제 협력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남북 간의 경제정책 협력이 성공을 거두려면 서로의 신뢰가 절실하다. 이 때문에 양쪽의 회계통일의 필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남북 경협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투자자들이나 기업가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릴 문제는 회계다. 남과 북은 70년 넘게 분단된 상태가 이어지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서 상이한 방향으로 성장했다. 당연히 경영의 언어인 ‘회계’ 역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에 한국공인회계사회(KICPA, 회장 최중경)에서는 [남북경제협력, 회계통일이 우선이다]를 발간하고 북한 회계에 대한 이해와 향후 통합 방안을 제시했다.

남과 북의 경제 체제가 다른 만큼 회계제도 역시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회계가 필요한 이유에서부터 출발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따르고 있는 남쪽의 회계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에 따라 기업 이해관계자들에게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달리 사회주의 체제를 따르고 있는 북쪽 회계는 국가의 계획에 따라 하부조직이 중앙의 명령에 복종하는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제체제 달라 개념·용어 등 딴판


목적이 다르다 보니 회계처리 방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기업 특성에 따라 회계처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남쪽의 회계기준과 달리 북한에서는 중앙 통계국과 재정성의 통일된 지도에 따라 단일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회계처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복식부기 방식은 경영 과정을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부기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대변해 경영 과정을 고의로 왜곡하고 잉여가치의 창조 과정을 숨길 수 있게 편성돼 있다. 부기계산의 허위성은 특히 독점자본의 초과이윤 원천을 숨기기 위해 더욱 강화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에서 회계란 국가 재정 기관이 설정한 목표를 하부조직인 기관과 기업소, 단체 등이 달성했는지 통제하기 위해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회계 분야에서 남쪽과 북쪽의 또 다른 차이점은 세무회계다. 남쪽에서는 회계 분야를 크게 재무회계·원가회계·세무회계·회계감사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와 달리 북한의 회계 분야는 회계계산(재무회계)·회계분석(원가회계)·회계검증(회계감사) 등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세금이나 세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세금이라는 표현 대신 거래수입금(부가가치세)·국가기업이익금(법인세)·사회협동단체이익금(소득세)·봉사료수입금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회계결산시에는 국가예산납부의무수행표를 작성해 국가납부금을 계산하기 때문에 세무회계와 유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세무회계가 없다.

시장가치를 적용하는지 여부도 큰 차이점이다. 시장가치 반영은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래 기존 회계 기준과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꼽히는 부분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적용 이후 국내 회계 업계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꼽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에서도 상장 때 지분가치 평가에서 공정시장가격을 활용한 자산가치 평가가 활용됐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서는 시장가치는 빈번하게 활용되는 개념이다. 반면 북한에서는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최근 해빙 무드에 중국과의 국경 일부에서는 암시장이 형성됐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가격 결정 기능을 갖춘 시장이 없다. 따라서 시장가치를 활용한 자산가치 평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 자산 가치 평가 방식의 중심에는 노동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에서는 재산을 생산하는 데 지출된 사회적 노동의 크기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노동의 지출로 재산가치를 반영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재평가를 실시한다. 재평가 역시 시장가치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연도에 전국적으로 재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완전복구가격이라는 개념을 활용하는데, 우리 회계기준에서는 재취득원가와 유사한 개념이다. 재취득 원가는 쉽게 말하면 토지처럼 재생산이 불가능한 자산을 다시 구매할 경우 필요한 가격이다.

남과 북의 회계가 상이한 모습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남북 경협이 본격화될 경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남과 북이 이미 개성공단을 운영해봤다는 점이다. 개성은 현대 회계의 기본이 되는 복식부기의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다만 개성공단에서도 남북간의 회계협력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성공단에서도 남북 회계협력 미흡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는 남북 회계협력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남과 북이 서로 상이한 목적을 위해 회계 제도를 발전시켜온 만큼 단시간에 성과를 낼 수는 없어서다. 일단 시장경제 요소를 반영한 회계처리 기준을 제정하는 것에서부터 회계협력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어 재무정보의 신뢰도 확보를 위한 회계감사 제도를 운영하는 단계다.

북한에서는 우리의 회계감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회계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차이점은 북한의 회계검증은 결산의 정확성과 합법성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우리의 회계감사는 신뢰성 있는 재무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회계감사 분야에서 남과 북이 협력하는 단계를 넘어선 후에는 이를 반영한 회계 전문가 양성으로 이어진다. 이어 국제적 교류를 진행한 후 개성공단 등 경제 특구 위주로 개방하는 단계다. 마지막으로는 남과 북의 회계 용어를 통일하는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1485호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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