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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창업의 3가지 성공 가능성] 부유층, 가성비 좋은 인력, 닮은꼴 사회 문제 

 

류승훈 300Dev CEO
스타트업이 베네수엘라 항공산업 대체… 한국이 이미 경험한 문제 풀 서비스 먹힐 확률 높아

▎과테말라 시티의 떠오르는 스타트업 구역인 꽈트로 그랑도스 노르테의 한 카페.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나르코스(Narcos)]의 배경이 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도시는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Pablo Escobar)를 낳았고, 그의 죽음 이후로도 군벌들은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벌였다. 메데진은 세계에서 가장 살인사건 발생률이 높은 위험한 도시였고, 모두가 포기한 구제불능 도시였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메데진을 폭력의 악순환에서 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폭력 자체였다. 내전을 끝낸 콜롬비아는 국가 재건을 시작하며 공공 프로젝트에 힘을 쏟았고, 어마어마한 폭력에 지친 일반 시민들이 폭력 조직에 협조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났던 젊은이들이 세련된 교육을 받고 돌아왔고, 창업가 정신을 발휘하며 초기기업(스타트업)을 창업한다. 그 결과 이제 메데진은 남미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게 됐고, 2013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로 뽑히기도 했다. 메데진의 옛 모습을 대표하는 파블로 에스코바가 메데진에 남겼던 그의 전용 감옥과 같은 자취들은 이젠 관광상품으로 변모해 메데진 혁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남미의 문제아 콜롬비아에서도 창업가정신 발휘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공유오피스 임팩트허브에서 스타트업 성공을 꿈꾸는 남미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두 명의 대통령이 상징하는 정치 불안,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빈발하는 전국적 정전이라는 극한의 경제 상황, 남미 최고의 부국에서 문제아로 전락한 베네수엘라에서도 이런 창업가 정신이 발휘되고 있다면 믿겠는가? 2018년 1월 필자가 카라카스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산하다 못해 스산한 기운을 느꼈다. 대형 항공사 직원들이 안전 문제로 카라카스에 가길 꺼리고 베네수엘라로부터의 항공기 국유화 위험이 불거지자 대부분 노선을 끊어 당시 카라카스 공항에 도착한 항공기는 필자가 내린 그 한 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빨간불이었던 상황은 한 포르투갈 사업가에게는 녹색불이었다. 카라카스에서 운영되던 수많은 국내 항공사 중 하나에 불과했던 에스텔라 항공(Estelar Latinoamerica)은 공격적으로 다른 항공사의 항공기와 승무원을 통째로 임대하는 계약을 해 단기간에 대형 항공사들이 버리고 떠난 황금노선의 주인으로 등극했고, 현재 9개 이상의 국제노선을 운영하며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한줄기 희망이 됐다.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디어? 기술? 메데진 르네상스와 에스텔라 항공은 어쩌면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힌트를 준다. 풀려고 하는 문제가 뿌리 깊을수록 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풀려고 하는 문제가 광범위할수록 스타트업의 성장 기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 면에서 중남미의 불안정한 사회와 산적한 사회 문제는 위대한 스타트업 탄생의 요람이라고까지 할 만하다. 그렇다면 중남미는 한국 스타트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스타트업 창업가인 필자에게 지난 중남미 생활은 한국 스타트업의 가능성 3가지를 보여줬다.

첫 번째 가능성은 한국 제품 수출 기회다. 이는 사실 중남미에서 일정 수준 이상 부를 축적한 한국 선배 사업가들은 이미 활용한 방법이다. 엘리베이터, 타이어, 엔진오일, 자동차 브레이크, 전자기기 등 한국의 좋은 제품을 가지고 중남미 미개척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선배들이 이미 했고, 대기업이 벌써 해외 조직망을 가졌기에 스타트업에 기회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중남미는 부족한 것이 많은, 아주 큰 시장이다. 또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직 한국 업체의 직접 진출도 다른 대륙보다 활발하지 않다. 따라서 현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한 제품 발굴, 참신한 마케팅, 끈기 있는 영업이 뒷받침되면 청년기업가들도 얼마든지 새로운 금맥을 발굴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한국 제품이 세계적 품질을 지녔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 요즘은 중남미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이 더 넓어졌다. 빈부격차가 우리 상상 이상이기에 실제 우리가 상대하는 소비계층은 대체로 부유층이고, 이들은 높은 품질의 제품을 찾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중남미의 싼 인건비를 활용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다. 전통적으로 중남미에서의 BPO는 영어와 스페인어 콜센터의 아웃소싱 업무 정도였지만, 현재는 IT 인력, 디자인 인력의 아웃소싱 등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미국의 정원 관리 업체 연결 플랫폼인 태스크 이지(Taskeasy)의 경우 과테말라를 원격 개발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높은 교육 수준으로 영어 구사력과 상당한 프로그래밍 실력을 갖춘 상위권 인재들을 미국 대비 50% 이하 저렴한 인건비로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만성적 IT 개발자 구인난에 시달리는 한국 스타트업에도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처음부터 과테말라나 멕시코 등지에 개발 팀을 세팅하면 개발자 구인도 쉽고, 한국보다 50% 가까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을 비롯한 미주 대륙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 능력을 가진, 우리보다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은 마케팅 인력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다만, 한국과의 거리와 문화적 차이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믿을 수 있는 현지 조력자를 구해 팀을 관리하는 것은 필수다.

세 번째 가능성은 한국의 경영 능력과 중남미의 인력을 활용해 중남미 지역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남미향 서비스를 만드는 방법이다. 앞서 언급했듯 중남미 지역은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보다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가 굉장히 많다. 또 중남미 국가들이 가진 사회적 문제는 양상이 대체로 비슷하고, 문화적성향이나 소비성향 역시 비슷하기에 한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면 똑같은 서비스로 중남미 전체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쉽다. 문제의 정도가 심각하기에 빠르게 성장할 잠재력이 있고, 시장 성향이 비슷하기에 한 국가에서 성공한 후 타국으로 바로 스케일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아주 큰 시장인 것이다. 어느 정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할머니도 비트코인을 주고받을 줄 안다’는 농담을 한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극단적 상황이다. 하루에도 환율이 50%씩 떨어진다. 베네수엘라는 자국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할머니들도 활용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은 70년간의 압축 성장을 통해, 현재 중남미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을 이미 해결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경험과 자본,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중남미 최고 수준 인재와 함께 현지의 문제를 푼다면 생각지도 못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할머니도 비트코인 주고받아

올 1분기 대한민국이 기록한 충격적 마이너스 성장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하면 낙오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가 가진 ‘가공 수출’이라는 경제 모델 효용성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숫자로 보여줬다. 중남미에서조차 가장 문제가 많은 국가인 베네수엘라와 과테말라에서 보낸 지난 2년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새롭게 나아갈 모델을 보여줬다. 야심 많은 청년들이 한국의 다양하고 멋진 제품을 들고 해외 미개척 시장으로 나가고, 해외 인력을 활용해 중남미 시장으로, 또 글로벌 시장으로 도전해 21세기 대한한국의 미래를 바꾸기를 기대해본다.

※ 필자는 중남미 지역 IT 인력을 교육하고 발굴해 다른 기업들에게 공급하는 스타트업 300Dev의 CEO다. 연세대를 졸업한 2010년 KOTRA에 입사했다가 2012년 퇴사 후 창업했다.

1485호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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