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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경제 시대 비즈니스 전략은] 고객 ID별로 맞춤형 제품·서비스 제공해야 

 

전호겸 고려대 회사법센터 연구원
충성도 높은 고객 확보한 애플, 3가지 구독 서비스 동시 출시… 숨은 욕구 파악하고 데이터 축적해야

우리는 이미 구독경제 시대의 구독자다. 어린 시절 아침마다 집으로 배달되는 우유는 하얀 병에 담겨 왔다. 일반적으로 판매하는 종이팩에 담긴 우유보다 배달되는 하얀 병 속의 우유가 훨씬 맛있고 고소해서 매일 아침마다 기다렸던 추억이 있다. 오래 전부터 집으로 신문·우유·요구르트 등이 아침마다 배달됐다. 한 달에 한 번 신문 배달원 아저씨는 정기적으로 ‘구독료’를 받으러 오셨다. 바로 그 ‘구독’이 지금 경제 비즈니스 트렌드로 주목 받고 있는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다. 구독경제란 ‘일정 금액을 내고 정기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것’을 통칭하는 경제 용어다.

구독은 기존의 신문·우유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트, 소프트웨어, 게임, 의류, 식품, 꽃, 농수산물, 음악, 자동차에서 비행기까지 영역이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최근 인기 유튜버의 동영상을 보다 보면 항상 빠지지 않는 멘트가 있는데, 바로 ‘재미있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또는 ‘구독 부탁드려요~’다. 왠지 구독경제가 낯설고 구독이란 말도 와 닿지 않는다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유튜브를 보고 ‘구독’을 눌렀을 것이고, 신문과 우유 등을 구독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이미 구독 서비스를 즐기고 있는 구독경제의 소비자(구독자)다.

넷플릭스, DVD 대여로 구독서비스 시작


구독경제가 최근의 경제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의 발전, 경제의 저성장에 따른 효용성 중시, 소비주체의 변화다. 이 세 가지 요인이 모두 반영된 사례가 바로 구독경제 시대의 대표 비즈니스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넷플릭스(Netflix)다. 넷플릭스는 한 달에 일정액을 지불하면 영화와 TV 프로그램과 같은 각종 동영상 콘텐트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다. 올해 1분기 전 세계 가입자가 약 1억50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대세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가입자도 1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회사의 성장은 바로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의 발전에서 비롯됐다. 사실 넷플릭스는 1990년대에 월정액으로 DVD를 대여하는 구독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보고 싶은 영화명을 대여 희망 목록에 등록하면, 우편이나 배달원을 통해서 지정한 장소로 DVD를 배송하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의 발전으로 언제 어디서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실시간으로 원하는 콘텐트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 그것도 DVD 한 개 가격으로. 인터넷이나 모바일은 이제 모든 세대가 다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튜브 주 이용자가 10대 다음으로 50~60대 이상 어르신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새로운 소비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밀레니얼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통칭하는 단어다.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을 접했고, 경제의 저성장을 경험하면서 성장한 세대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밀레니얼세대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은 세대로 ‘성장’보다는 ‘위기’라는 말을 더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이 때문에 가격 대비 제품 성능이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에 관심이 많다. 즉, 소위 말하는 ‘가성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제품을 구매하기보다는, 적은 금액으로 물건을 향유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밀레니얼세대뿐 아니라 전 세대로 확산하고 있다. 이른바 나홀로 세대인 1인 세대의 증가 역시 소비주체의 큰 변화 중 하나다. 오랜 시간 경제 성장이 정체됨에 따라서 모든 세대가 ‘가성비’를 기반으로 한 ‘효용성’과 커스터마이즈(customize)된 ‘나만을 위한 서비스(경험)나 제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구독자 유치하면 수익 지속적으로 창출


과거에 기업은 제품 생산을 표준화하고 대량 생산을 통해 제조 단가를 낮추고, 유통 과정에서 물류비 등을 절감하는 게 가장 큰 관심사였다. 기업은 많은 사람이 구매할 ‘대박’ 상품을 기획하고, 그 제품을 대형마트 등 유통망을 통해 많이 판매한 후에는 누가 물건을 사갔는지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구독경제 시대에서는 기존처럼 한 번의 판매로 매출이나 재고 소진이 종료되지 않는다. 구독경제는 구독서비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구독서비스’라는 단어 자체 그대로 단순 물건 판매뿐만 아니라 ‘서비스(경험)’의 제공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미 글로벌 대기업은 이런 구독경제의 트렌드를 간파하고 구독서비스 회사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3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디어 행사를 열고 독점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가 포함된 ‘Apple TV+’와 게임 구독 서비스인 ‘Apple Arcade’, 뉴스 구독 서비스인 ‘Apple News+’, 그리고 골드만삭스와 함께 자체 가상 신용카드 서비스인 ‘Apple Card’를 발표했다. 서비스만 가지고 이런 큰 행사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애플은 세 가지 구독 서비스를 발표하면서 기존의 하드웨어 제품 판매 기업에서 구독서비스 회사로의 진화를 전 세계에 선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 등 하드웨어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의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애플의 서비스 부문 매출은 약 410억 달러였다. 또 애플은 “내년까지 서비스 부문의 매출이 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애플은 서비스 사업만으로도 글로벌 대기업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독경제는 기업에게 과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까. 우선 온라인을 통해 콘텐트 등을 제공하는 구독서비스 기업에게 구독경제 시대의 도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일 수 있다. 콘텐트 파일은 비용 부담 없이 무한히 복사하고 스트리밍할 수 있어 구독자만 유치하면 지속적으로 매출과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제공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자가 구독하는 제품의 수량과 종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생산 또는 구매량을 확정할 수도 있고, 사업계획·재고 예측이 수월하다. 또 구독자만 많이 확보할 수 있다면 플랫폼 등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추가 이익도 생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온라인·오프라인 할 것 없이 구독자만 확보할 수 있다면 구독경제는 분명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은 한 번 구독을 하기 시작하면 그 서비스와 제품에 락인(lock-in)돼 해지를 잘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충성스러운 구독자가 아니더라도 구독자를 계속 늘려갈 수 있다면 기업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즉, 최초로 시장에 진입해 구독자를 상당수 확보한 기업에 구독서비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대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스타트업만이 구현할 수 있는 구독 틈새시장과 비즈니스 모델이 있기 때문에 구독경제 시대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에도 상당한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기업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콘텐트 제작에 투자를 줄인다거나, 혁신적인 제품이나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지 않고 구독자를 등한시한다면 구독자는 떠나기 시작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구독서비스는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오랜 시간 소비자와 신뢰를 쌓으며 계속 함께 해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언제든지 구독을 해지하고 떠날 수 있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주던 주인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잡은 우화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구독료라는 달콤한 음식을 제공하는 주인이면서도 기업을 문 닫게 할 수 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어느 날, 더는 원하는 콘텐트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면 구독을 해지하고 떠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쟁도 경계해야 한다. 수많은 기업이 유사한 서비스와 상품을 가지고 구독서비스 시장에 뛰어든다면 구독경제 생태계 역시 소수의 승자만 살아남는 ‘치킨게임’이 될 수 있다.

데이터 확보 위해선 ‘ID’가 중요

왜 사람들은 비싼 아이폰을 살까.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있는데 굳이 왜 스타벅스를 갈까. 특정 브랜드만이 주는 서비스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업은 모두 개인 계정 즉, ID를 가지고 있다. 아이폰의 경우 휴대폰을 바꾸더라도 ‘애플 ID’로 로그인만 하면 자신의 추억(사진 등)과 기록(연락처 등)을 볼 수 있다. 지속적으로 고객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애플의 어떤 제품을 사용하던 나만의 추억과 경험은 계속된다. 스타벅스는 손님 개인 취향에 맞게 메뉴판에 없는 레시피로 토핑해 주문할 수 있는 ‘커스텀 주문’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나만의 맞춤형 음료 서비스인 것이다.

나이키는 나이키 ID를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 신발을 주문·제작할 수 있는 커스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구독경제의 가장 핵심은 효용성을 기반으로 커스터마이즈된 서비스와 소유를 통해 개인별로 차별화된 ‘구독서비스 경험’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숨어 있는 욕구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빅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를 한정하기 위해서는 로그인하는 개인별 ID가 필수 요소다. 빅데이터를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분석해 고객의 취향과 숨겨진 불편(Pain Point)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애플이 자신 있게 한 번에 세 개의 구독서비스를 발표한 것은 바로 다른 글로벌 대기업은 가지고 있지 않은 충성심 가득한 고객과 애플 ID가 있기 때문이다. 이 ID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독경제도 ID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기업은 ID를 단순하게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 로그인이나 멤버십 포인트 정도를 쌓아주는 수준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고객 ID별로 맞춤형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해야만 한다. 구독경제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고 꾸준히 성장하려면 ID경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이는 비단 비즈니스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등이 모두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일련의 경제 활동과 시대 변화에 따른 필요 현상을 필자는 지난해 ‘ID경제(ID Economy)’라고 네이밍했다. 앞으로 경제 트렌드는 구독경제를 넘어 ID경제로 향할 것이다.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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