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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IF’ㅣ부자를 꿈꾸는 당신에게(19) 부자놀이를 한다면] 우리 모두 서로의 파이를 키워보자 

 

커티스 캐롤, 동료 재소자와 금융문맹 퇴치 프로그램 만들어

▎강도살인죄로 수감된 커티스 캐롤은 동료 재소자와 금융문맹 퇴치 프로그램 만들어 재소자들이 출소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희망을 선사했다. / 사진:유튜브 캡처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그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 왔다. 이국종의 [골든아워] 속의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가 왜 생명을 살리는 골든아워에 그리 골몰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의사. 돈 벌기 위해, 부자 되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우리 사회에서 이국종 교수의 말 한마디는 희망의 빛이 되기에 충분하다. “내 환자들이 숨을 거둘 때 살이 베어나가듯 쓰렸고, 보호자들의 울음은 귓가에 잔향처럼 남았다. 죽음과 눈물이 일상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손 끝에서 죽어간 환자들의 수를 머릿속으로 헤아리는 것을 그만 두었다.”

제대로 된 의사 한 명 보는구나 생각하며 그는 어떻게 의사의 길로 입문했는지 궁금해진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 유공자였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반갑지 않은 분이었다. ‘병신의 아들’이라고 친구들이 놀렸다.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를 둘러쌌고,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술의 힘을 빌렸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그의 이야기에 감화돼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배고픔에 빵 하나 훔친 장발장에 나오는 주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이 얼마든지 교화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런 삶의 감동을 알게 해주는 사람들을 여전히 만날 수 있다. 슬픔은 함께하면 반이 되고 희망은 함께하면 배가된다.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찾았는데 국가 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의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결국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몇몇 병원을 돌아봤지만 모두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이 사회가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 곳인지 잘 알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의사의 따뜻한 격려에 삶의 이정표 바꾼 이국종 교수


▎이국종 교수는 중학생 시절 축농증 치료차 병원에 갔다가 자신의 삶을 바꿀 의사를 만났다.
자신을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찾던 중 이국종 교수는 자기 삶을 바꿀 의사 한 분을 만난다. 그는 어린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 카드를 보고는 아버지가 자랑스럽겠다고 말했다.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해주고는 마음을 담아 어린 이국종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격려했다. 그 한마디가 어린 이국종의 삶에 결정적 한방이 됐다. 마치 장발장이 주교님의 마음에 감화됐듯이 말이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는 이국종 교수의 삶의 원칙도 그때 탄생했다고 한다. 그는 환자는 돈을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과 건강을 생각해서는 맞는 이야기이나 자본의 논리에서는 꼭 맞다고 보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의사가 많을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미국의 산 퀜틴(San Quentin) 수용소에서 ‘월스트리트’라 불린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커티스 캐롤(Curtis Carroll)이다. 그는 마약에 찌든 가족 틈바구니에서 아무런 미래도 없는 나날을 보내다 강도살인죄로 수감하게 된다. 게임 기계를 턴 죄로 소년원을 들락거린 경험도 있었던 그에게 교도소 생활은 낯설지 않았다. 그는 지독히 가난한 공동체와 40달러에 혈액을 파는 엄마를 보면서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증오감을 갖고 있었다. 수용소에서의 어느 날. 문맹인 그에게 같은 방 동료가 신문의 비즈니스 섹션에서 주식 이야기를 읽어 준다. 주식이 백인들이 자기 돈을 모두 넣어두는 곳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래서 그는 글을 먼저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피나는 공부를 한다. 글을 배우면서 문맹에 벗어나고 자신의 능력이 향상됨을 만끽하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은 걸까? 그는 주식에서 한줄기 희망을 찾았고, 돈 관리와 투자법에 눈을 뜬다. 교도소가 그에게 인생을 바꾸는 장소가 됐다. 이 흑인 청년은 백인들이 돈을 묻는다는 주식에 관해서 모든 걸 걸고 공부를 시작했다. 범죄를 선택한 것은 자신의 환경에서 저지른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문맹을 넘어 금융문맹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감자들에게 돈을 관리하는 습관을 가르쳐 주면 다시 교도소에 들어 올 확률을 줄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된다. 대부분의 재소자들이 돈 관련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많았고 그와 같은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쉽기 때문에 그는 금융문맹을 일종의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이를 퇴치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동료 재소자와 금융문맹 퇴치 프로그램(FEEL, Financial Empowerment Emotional Literacy)을 설계한다. 그의 금융문맹 퇴치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4가지 황금률이다. 저축, 근검절약과 우선순위에 따른 생활비 관리, 빚의 늪에 빠지지 않는 차입 관리, 포트폴리오 최적화를 통한 돈이 제대로 일하게 하는 투자법 등이다.

누구는 뻔한 구성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사실 모든 재테크 책은 이런 내용의 반복인 점을 생각하면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필요가 없다. 그는 돈을 함부로 대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1달러의 위대한 힘을 설파한다. 그런 그를 보고 오히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느껴진다. 미국에서 수감자가 교도소를 나갈 때 200달러를 받는다. 이 돈은 60세 이상의 고령 출소자에게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그는 재소자들이 장기적인 계획으로 자립할 수 있는 장기 자립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묘한 기분이 든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통상적인 미국 가정에서 저축계좌에 1000달러도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스포츠 스타가 은퇴하면 파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부 갈등의 40%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재소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금융문맹에서 벗어나야 나라가 건전해진다고 역설한다. 금융지식을 쌓는 것이야 말로 안락한 삶을 사는 기본으로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외침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재소자 도와줄 걱정을 하는 것은 사치일 수 있다는 그의 멘트가 정곡을 찌른다. 돈 관련 범죄는 금융문맹이란 전염병의 결과로, 제대로 된 경제교육으로 맞서야 불구가 된 자본주의를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누가 공감하지 않을 수 있나! 그가 금융지식을 잘 전파해 자신처럼 어려운 생활을 한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야말로 멋진 세상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와 같은 사람이 늘어나야 이 사회가 건전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지 않을까? 경제 전체의 파이 중 일부를 나누어 주는 것 못지않게 가난한 자들이 스스로 파이를 키워 가도록 도와주는 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빈자와 빈자의 교감이 느껴지는데, 과연 빈자와 부자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진다. 그에게서도 이국형 교수의 향기가 난다.

부유한 자들이 누리는 그들만의 세상


살아가면서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잊을 수가 있다. 태생적으로 부자인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세상의 부는 점점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버클리대에서 주사위와 주사위판을 가지고 ‘독점 놀이(a game of Monopoly)’를 통해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누군가는 이 게임이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같은 대학의 폴 피프 교수는 돈을 가지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말을 직설적으로 한다. 독점은 폐해가 많다. 게임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유하도록 이미 조작된 인생을 살아간다 생각하면 그의 말처럼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인생에서 후천적으로 누군가는 성공적인 기술이나 재능을 연마해서 성공한다. 때로는 운으로 부를 움켜쥘 수도 있다. 그 모든 게 불가능한 상황을 생각하며 인간의 모습이 어떤지를 실험해 보자는 것이 버클리대 연구진들의 의도였다.

게임판에 한 무리가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돈을 갖고, 세상이라 표현되는 게임판을 좌지우지 할 기회도 더 빈번하게 포착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특권계층으로 살아간다. 영화 제목처럼 조작된 사회다. 이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는 것이다. “조작된 사회에서 당신이 특권을 누린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특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게 이 실험의 질문입니다.”

연구진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실험실로 데리고 와서, 동전 던지기를 통해 조작된 사회를 만들어 부자와 가난한 그룹을 만든 후 15분 동안 감춰진 카메라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관찰했다. 부유한 그룹의 실험자와 가난한 그룹의 실험자 사이에서 벌어질 일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우연히 운명이 결정된다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모습도 달라지지 않을까? 실험결과는 이렇다. 부자 그룹과 가난한 그룹 사이에 극적이면서도 두드러진 차이점이 나타났다. 부유한 그룹은 게임판 위를 더 시끄럽게 돌아다녔고 자신의 말판을 자신 있게 놓으면서 세상으로 표현되는 게임판 위에 군림하고자 했다. 부자가 더 많이 가져 베푸는 삶을 살 것 같은데, 오히려 권력 지향적이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니 실험이긴 하지만 마음 한켠이 불편해진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연구진은 더 흥미 있고 극적인 현상을 관찰했다. 부유한 그룹 실험자들이 상대방에게 더욱 무례해지고, 빚으로 점점 가난해지는 실험자들의 어려움에 더욱 무심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물질적인 성공을 숨기지 않으려 했고, 자기들을 더욱 과시하려 했다. 부자들은 ‘이 돈으로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야’라는 태도를 보였고, 가난한 그룹은 부자 그룹이 산 물건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부자 그룹은 건방지게 가난한 그룹에게 “너 나한테 빚졌어. 너는 그 돈도 다 잃어버리게 되어 빚쟁이가 될 거야. 내가 여기 있는 물건 다 살 게, 나 돈 진짜 많아. 나 돈 많아서, 진짜 하루 종일 부자놀이만 할 것 같아. 내가 이 게임판을 몽땅 살 거야”라는 멘트를 마구 날린다. 가난한 그룹을 보며 부자 그룹이 “곧 너희들은 돈이 다 떨어질 거야. 이제 나는 돈으로는 끄떡없는 천하무적이야”라고 말할 때 고개가 숙여진다.

마지막 실험으로 연구진은 실험자들에게 게임을 하면서 느낀 경험을 물었다. 조작된 게임에서 부자 그룹이 이길 수밖에 없던 이유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게임이라는 생각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모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대답했다.

조작된 현실에서 바라본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자화상


▎버클리대 연구팀은 주사위와 주사위판을 가지고 ‘독점 놀이(a game of Monopoly)’를 통해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7년 동안의 실험 결과가 현실의 축소판일까? 연구진은 많은 실험과 수천 명의 실험 참여자를 통해 소유한 부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남에 대해 가진 동정과 연민의 감정은 줄어든다고 했다. 반대로 그들 자신의 권리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은 강했다. 부자들은 탐욕을 선의라고 포장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게 더욱 기쁘고 도덕적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누군가는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실험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진행됐다. 타인에 선한 도움을 더 베풀고자 하는 그룹은 누구일까? 실험에서 부유한 공동체의 사람과 가난한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똑같이 10달러를 주었다. 실험대상자들은 10달러를 그냥 갖고 있거나,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나눠가질 수도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관찰 결과는 이렇다. 2만5000 달러, 경우에 따라 1년에 1만5000달러 이하로 버는 그룹은 1년에 15만 달러 혹은 20만 달러를 버는 그룹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44% 더 많이 줬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주사위를 던져 상금을 타는 게임을 하면서 누가 속임수를 쓰는지 살펴보았다. 부자일수록 상금을 받기 위해 속임수를 더 많이 썼다. 사탕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도 했다. 사람들이 사탕을 먹으려는 경향이 있는지를 관찰하고 실험하고자 한 것이다. 참가자들에게는 사탕이 다른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환기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참가자들이 사탕을 얼마나 많이 가져가는지 보았다. 부자 그룹은 가난한 그룹보다 2배나 더 많은 사탕을 가져갔다.

실험 결과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부자라고 다 나쁜 사람들도 아니고 실제 자선을 베푸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 실험 결과를 통해서 이런 해석을 할 수 있었다. 부는 권력이 된 지 오래다. 부라는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연대라는 의식으로 뭉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커티스 캐롤도 그런 생각에서 금융문맹 퇴치를 위한 황금률과 장기 프랜을 마련한 것일까?

인생을 살다 보면, 시시각각의 삶에서 자신의 이해를 다른 사람의 이해보다 우위에 둘 것인지를 망설이게 된다. 우리는 때로는 주변의 행복이나 이해관계보다 우리 스스로의 행복이나 이해관계를 우위에 놓을 수 있다. 그런데 더 부유한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며 자기이해와 개인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데 골몰한다면 문제가 아닐까?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증가하고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전례 없는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을 목도하고 있다. 부유함은 선택된 집단의 손에 점점 더 집중되어갈 뿐만 아니라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점점 더 도달하기 어려운 꿈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이해를 위한 일에만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연대라는 이름과 파이 키우기

지금의 현실은 진행 중인 추세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 혹자는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지기만 할 이유가 널려 있다고 한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미래 세대가 마주하게 될 상황은 악몽이리라. 이제 경제적 불평등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바닥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불평등에 따른 고통을 받으며 더 못 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로 야기되는 문제점은 많다. 우선 사회적 이동성이 줄어드는 슬픔을 빼놓을 수 없다. 건강, 안전, 사회적 신뢰 역시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모두 낮아진다. 이와 달리 부정적인 것들, 예를 들어 비만, 폭력, 구금, 처벌은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악화된다. 심지어 소득이 상위인 계층도 인간이 비교의 동물이기에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행동해 나가야 할까? 이런 지속적이고 치명적이며 부정적인 결과가 폭포처럼 솟아올라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분명히 개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사람들의 가치에 있어 작은 변화, 특정한 방향으로의 작지만 의미 있는 자극이 사회 전체에 퍼질 때 그 사회는 더 평등해지고 타인에 대한 연민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협력의 혜택이나 공동체의 장점에 대해 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만큼 부유한 사람들에게 평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버클리대 연구진들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년 시절의 가난을 생각해 보도록 46초가량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낯선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시간을 얼마나 제공하고 싶어 하는지를 의미 있게 관찰했다. 영상을 시청한 후 1시간이 지났다. 부유한 그룹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자기들의 시간을 자발적으로 할애하고자 했다. 전혀 낯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작은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선천적인 게 아니었다. 그들이 보여준 가치관에서의 작은 변화, 작은 연민의 표현, 작은 동정심이로 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건 희망이다. 영상을 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는 더 유연해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역시 훨씬 너그럽게 느껴졌다.

실험실의 벽을 넘어 현실에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많은 변화의 징후가 있다. 많은 사람이 불평등한 사회가 직면한 문제야말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부 서약(Giving Pledge)이 넘치는 사회는 행복한 공동체다. 각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서약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전체 인구에서 1%에 속하는 특권층이 자기들이 지닌 자원을 이용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사회의 가치관을 바꾸고,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준다면, 불평등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그런 일들이 단기적으로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에 반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파이를 늘리는 것이다. 물론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국종 교수는 생명이 위태로운 곳이면 어디로든 달라간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국종 교수는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그 일을 계기로 뭔가 획기적인 개선이 있을 것처럼 보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그저 터질 일이 터진 것뿐이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부자놀이를 한다면, 타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을까? 부자놀이에 빠져 우리가 신선놀음만 한다면 사회는 이국종 교수가 말하듯 똑같은 일상의 반복일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며 실험은 현실과 다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게임의 법칙은 때로는 현실을 다 반영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천사는 아름다운 꽃을 퍼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고대하는 사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함께 파이를 늘리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니 벌써 배가 불러진다.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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