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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커지는 경제위기론, 환율 상승은 필연?] 원·달러 환율 1200원 오래 넘지 않을 듯 

 

백석현 신한은행 외환이코노미스트
세계 교역 둔화가 환율 상승 배경… 미·중 갈등 완화되면 평소 수준 회복 전망

근래 경기가 곤두박질쳤다고 체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부채를 머리에 이고 사는 일반 개인은 보유세 등 세금 증가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로 살림이 팍팍해졌다. 기업인들은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 시간 근무제 등 정책 탓에 기업 환경이 악화됐다고 목청을 높인다. 4차 산업혁명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국내 기업도 찾기 어렵다.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정보 활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국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기술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과 달리, 한국은 차세대 기술을 선점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인상이 강하다.

2016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하는 한국의 해외직접투자(FDI)도 우려스럽다.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하기보다는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이 고용시장의 경직성과 높은 임금으로 한국 사업 철수를 검토한다는 소식도 잇따른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그 미약한 성장마저 성장의 과실을 향유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비난이 정부로 향하는 대통령 임기 중반부의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다. 과거 한국 경제의 위기는 환율 급등이 반복된 탓이다.

선진국 유동성 줄면서 교역 둔화

환율 급등과 함께 이제라도 달러화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의가 쇄도한다.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현재 환율 상승의 배경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의 환율 상승은 세계 경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국경을 넘나드는 막대한 자본과 교역량으로 한몸처럼 움직이는 세계 경제는 경기의 순환 국면도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한마디로, 흐름을 같이 탄다는 얘기다.

전 세계 교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국면에 직면했다. 늘 전년에 비해서는 증가 추세를 유지하던 세계 교역량은 지난해 말부터 위축되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의 둔화 흐름은 이미 1년여 전인 2018년 초부터 시작됐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줄곧 확대하던 유동성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기댄 경기 부양이 한계에 도달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세계의 경기 둔화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크게 드러나지 않던 주요 2개국(G2)간 패권 경쟁이 무역갈등의 형태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 계기다.

현재 경기 둔화 국면의 국가별 차별화 정도는 각국의 수출 의존도와 밀접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 원화의 약세폭(환율 상승폭)이 4월 중순 이후 여타 신흥국 통화 대비 컸던 것도 높은 수출의존도(2017년 기준 43%)와 무관치 않다. 제조업 수출이 전반적인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한국 경제는 세계 교역 추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업은 본질적으로 비교역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계 교역 둔화의 역풍에서 한발치 떨어져 있는 반면, 제조업 제품은 교역재의 성격이 강하다.

미·중 무역갈등에서 수세에 몰린 당사자는 중국이지만, 중국은 구조적인 맷집이 강해졌다. 중국은 2006년을 정점으로 국내총생산(GDP) 내 수출 비중이 계속 감소하면서 2017년 기준으로는 20%를 하회했다. 내수 시장이 큰 미국·일본(2017년 기준 각각 12%, 18%)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독일(2017년 기준 47%)이나 한국은 여전히 수출 비중이 상당히 높다. 올해 들어 독일과 한국의 경제지표 악화가 두드러진 이유다.

내부 지표로는 한국이 1분기에 직전 분기 대비 -0.3%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세계 교역 및 경제 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이 도화선이 됐다. 독일 등 유럽이나 호주의 지표 부진도 4월 들어 달러화가 대부분의 통화에 강세를 보이는 배경이 됐다. 5월 초에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해 환율 상승에 다시 불을 지폈다. 미국이 그간 유보했던 관세 인상(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어치에 10%→25%로 인상)을 기습적으로 실시하며 무역장벽을 더욱 높인 것이다. G2의 강대강(强對强) 대치 국면이 부각되면서 심리적 측면에서 달러화 강세에 힘이 실렸다. 5월 14일에는 서울외환시장에서 환율이 한때 1190원까지 상승하며 1200원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1200원 레벨 도달이 추가 상승의 신호탄이 된다거나 차익 실현 물량이 쏟아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원·달러 환율 1200원은 심리적 의미는 크지만 의외로 강력한 저항선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1200원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1200원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외국인 자본 흐름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이거나, 외화 유동성 악화 같은 이상 조짐이 감지되지 않는다면 그 수준 자체가 환율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보다 미·중 관계의 진전이 중요하다. 미·중 갈등은 정치적인 변수이며 지도자의 판단과 전략적 결정이라는 요소가 개입된다. 금융시장은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 미국의 이익을 지켰다’는 정치적인 성과를 과시함과 동시에 미국 유권자가 민감한 ‘주식시장 상승’이라는 경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협상 타결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도 ‘시간은 중국 편’이라고 자신하기에, 아직 힘으로 압도할 수 없는 미국에게 공개적으로 체면을 구기지 않는 선에서 단기적으로 합의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러한 낙관론이 틀리지 않는다면, 양국의 갈등이 다시 진화되고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되면서 5월의 환율 상승폭은 되돌림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환율이 4월 중순까지 장기간 유지된 기존 박스권 수준(1105~1145원)으로 복귀하기까지는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이 다시 시장의 핵심 변수로 등장하기 전인, 원·달러 환율이 1170원 수준까지 갔던 것을 고려하면 외환시장이 1차적으로 그 수준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다. 한가지 기억할 사실은 10년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1150원을 넘겼던 것은 유럽 재정위기 당시인 2010년의 1156원과 미국 금리 인상이 화두로 떠올랐던 2016년의 1161원뿐이었다. 환율이 1200원을 일시 상회하더라도 4분기까지의 올해 잔여 기간에 1200원을 넘는 기간은 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위기 가능성 작아 환율 상승폭 제한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지만, 일각에서 한국 경제를 우려하는 수준에 비해 환율 상승폭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현실은 현재 만성적인 문제들로 만신창이가 된 듯하지만, 순대외 금융자산이나 단기 외채 비율(외환 보유액 대비) 등 대외 건전성 측면의 지표는 여전히 양호하다. 외환위기는 결국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부실이 쌓였던 한국의 금융시스템 위기에서 비롯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부동산 대출 부실이 쌓였던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단초가 됐다. 신뢰로 쌓아 올린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는지 여부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비춰봤을 때 적어도 당장은 금융시스템 위기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 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485호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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