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재정 적자보다 무서운 신뢰 적자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풍조는 성장 잠재력을 잠식시켜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갈지도 모를 위험과 불확실성 요인이다. 각 경제 주체가 서로 대립하고 증오하는 불신 풍토가 이어진다면, 사회적 수용 능력이 부지불식간에 저하돼 생산성이 낙후되며 국가경쟁력이 급강하하게 마련이다. 서로 믿지 못해 대립하고 증오하면 하는 일마다 이래저래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어 경제활동의 편익(benefit)은 줄어들고 비용(cost)은 늘어나 경제적 성과가 저하된다. ‘신뢰의 적자 (deficit of trust)’가 점점 더 쌓이면 경제의 성장동력이 침식돼 급기야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뢰란 공동체 구성원이 합리적 사고와 정직한 행동을 예상하게 하는 도덕적 기반을 뜻한다. 서로 존중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하는 규범의 바탕이기도 하다.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신뢰다. 공동체의 경제적 역량이 경제적 성과로 연결되려면 신뢰기반이 구축돼야 한다.

절대빈곤,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경제구조가 단순한 데다 서로 믿지 못하더라고 되돌아 볼 겨를이 없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숙 단계에 접어들어 신뢰관계가 깨지면 얽히고설켜 복잡해진 경제순환에 장애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언뜻 생각하기에 불신의 대가가 처음에는 미미할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불신이 일단 쌓이기 시작하면 경제적 낭비와 비효율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된다.

불신 사회에서는 사고와 행동반경이 혈연·지연·학연·파벌 같은 끼리끼리 과거 인연에 얽매이게 되어 인재 발굴이 불가능해져 미래 지향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인재를 찾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불신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 판단된다. 오염되고 무능한 인사가 주요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청렴하고 유능한 인재가 공동체를 위해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은 ‘세기말 증상’의 공통점이다. 한마디로 나라의 앞날은 어두워진다.

새로운 제안이나 사업을 놓고서도 신뢰가 두터우면 장점을 찾아내 토론하고 개선하는 긍정적 효과를 내지만, 서로 믿음이 없으면 불필요한 오해로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융합과 응용이 어려워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신풍조는 의사결정 지연과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은 물론 신용조사비용, 보험료, 리스크 프리미엄 등 부대비용을 별도로 지출해야 한다. 예컨대 금융시장에서 신뢰가 무너져 내려 신용경색(credit crunch) 상태가 벌어지면 대부분의 기업이 높은 금리를 지불하고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

신뢰는 인간관계의 출발점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과 같다.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결제능력에 대한 신용(credit)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동양에서는 인간적 신뢰(trust)를 중시해왔다. 신용불량은 경제 형편이 좋아지면 곧바로 회복될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불신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 원상복원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주나라 태공망(太公望)도 깨진 항아리에서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며 신뢰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조직이든 사회든 외부 요인에 의한 간난신고는 힘을 합쳐 극복할 수 있지만 공동체 내부의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역사의 오랜 경험이다. 고대 로마도, 천하를 통일한 진제국도, 부르봉 왕조도 그리고 근세조선도 쇄락의 원인은 다름 아닌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져 내린 데서 비롯됐다.

신뢰기반이 붕괴되면 사람들을 까닭 없이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남을 믿지 못하는 환경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신뢰의 함정’에 빠져들 수도 있다. 서로 믿지 못해 서로 시기하고 질시한다면 인간으로서의 화합과 행복을 느끼기 전에 먼저 의혹과 시기심의 포로가 되기 쉽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도 우리나라 행복지수가 세계적으로 낮은 원인은 아마도 뿌리 깊은 불신풍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유명 인사의 언행에 대해 옳고 그름보다는 그저 내편이냐 네편이냐를 가려 막무가내 트집만 잡거나 까닭 없이 떠받드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지도층 인사들이 알게 모르게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남의 편으로 몰아가는 편향성 심리를 조장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 기본 흐름보다 임시변통의 묘수를 내다가 시행착오가 나도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그저 덧칠만 하려들기에 불신이 생성된다.

지도계층이 말과 행동을 달리하기 시작하면 조직이나 사회 전반으로 불신풍조가 퍼져나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군자의 행동은 바람과 같고 백성들의 행동은 풀과 같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論語 第十二 顔淵)’고 했다. 풀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눕거나 일어선다. 이 말에는 불신풍조의 책임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두루 있지만, 사회 분위기를 이끄는 지도층의 언행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과거에도 다를 바 없었지만, 정부가 공약으로 강조했던 ‘5대 인사 원칙’이 국민의 열망과 달리, 시작부터 흐지부지되면서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 느낌이다. 얼마 전에는 원칙에 배치되는 여러 의혹을 해명하지 못해 국회인준을 거부당한 인사에게 ‘국가백년대계’를 맡겼다. 그러면서, 높은 곳 대변인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비춰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국민의 눈높이는 낮아지고 신뢰기반도 흔들린다는 우려를 버릴 수 없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 지속적 성장과 발전의 조건은 경제사회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그 실천방안의 처음이며 끝은 바로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단기로는 몰라도 중장기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일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관계를 두텁게 하는 일부터 선행돼야 한다.

신뢰는 억지로 주입시킨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신뢰를 강요한다면 유언비어가 생성되고 불신의 뿌리만 깊어질 수 있다. 어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인위적으로 묶을 수 있겠는가? 신뢰 사회 구축은 공과 사,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일관된 자세로 약속을 지키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거창한 선언이나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살다 보면 언제든지 일이 잘못될 수 있는데, 허망한 변명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해명이 신뢰를 두텁게 하는 길이다.

불신으로 말미암은 국민경제적 손실이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듯이 신뢰가 쌓이고 쌓이면 계산할 수 없는 거대한 편익이 되어 돌아온다. 생각건대, 개인이나 사회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개인·기업·국가를 막론하고 신뢰에 대한 비용과 편익을 먼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트러스트(TRUST)]를 저술한 후쿠야마(F. Fukuyama)는 “국가경영에서 경상수지 적자, 재정 적자보다도 ‘신뢰의 적자’가 더 위태롭다”고 경고하고 있다.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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