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뉴트로 열풍 달구는 모자 패션 

 

김지용 칼럼리스트(시인, 전 문화일보 부국장)
1960년대 영화 [템페스트(La Tempesta)]의 여자 주인공 마샤는 러시아 사령관의 딸로, 새로 부임한 초급 장교와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마샤가 챙넓은 모자를 비껴쓰고 꽃밭을 사뿐사뿐 뛰어가는 모습은 당시 숫한 남성을 설레게 했고, 여인상의 표상이 됐다. 마사역을 맡은 이탈리아 배우 실바나 망가노(Silvana Mangano)는 이 장면으로 자신을 세계에 알리며,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로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 영화는 제정러시아 시대의 농민혁명을 다룬 알렉산드르 푸시킨 원작 [대위의 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19세기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이렇듯 모자라는 소품은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중절모를 쓴 찰리 채플린의 코믹한 트레이드는 큰 인기를 모았고, 밀짚모자를 쓰고 파안대소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소탈한 인상을 남겼다.

1990년대 외환위기를 즈음해 많은 일터를 잃은 직장인들이 갑작스럽게 늘면서 모자를 즐겨 쓰는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직장을 잃은 허전함을 채우기에도 모자가 필요했고 모자가 하나의 자아변호와 열등감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다.

우리 민족은 옷과 관을 갖춰 입는 예의민족이다. ‘망건쓰다 장 파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의관을 중시했다. 원래 모자는 부여시대 때부터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 왕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금관·단각사모·정자관·초립·갓·족두리 등 다양하게 애용됐다. 서양에서도 예복용 실크해트와 양복용 중절모·파나마 모자·헬멧·터번·베레모 등이 사용됐다. 학생·군인 등 조직이나 신분상 일체감을 살리기 위해 필요했던 때도 있었다.

등산 등 스포츠인구가 늘면서 각종 스포츠단체의 고유 모자가 출시되고 즐겨 착용되고 있다. 재질도 펄프·모직·털실·가죽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계절에 따라 성별로 분류돼 리본 등 한껏 멋들어지게 제작되고 있다. 색상도 검정·흰색 수준을 넘어 빨강·파랑·노랑 등 울긋불긋 다채롭다. 흔히 야구모자가 주류를 이루지만 다양한 느낌을 주는 패셔너블한 패션이 등장했고 볼캡도 여러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캡의 길이나 모양에 따라 플로피햇·페도라·버킷햇 등이 선보이고 있다. 중장년층의 경우 옷을 입고 난 후 모자로 포인트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헌팅캡의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머리에 밀착돼 얼굴형을 돋보이게 하는 비니형태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캐주얼화 하는 추세다.

미국 육군이 내년부터 신형 제복을 도입하기로 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착용했던 모자 등 제복을 재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 육군 대변인은 “군이 존경받고 인정받았던 시기”라며 군의 전문성과 신뢰와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도 군의 이미지 제고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미 육군이 1940~50년대를 소환했듯, 한국에서도 1970~80년대 추억을 떠올리는 패션트렌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조류 속에 모자 역시 복고 바람이 불지않을까 생각한다.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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