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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추진에 뿔난 일산] 분당과 같은 날 같은 가격에 분양했는데…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일산과 분당 집값 차이 최대 70%… 창릉 고분양가 반사이익 볼 가능성도

▎1기 신도시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명물인 호수공원의 1996년 모습.
일산 W와 분당 K. 1기 신도시 동기 아파트다. 29년 전 같은 날, 같은 키와 몸무게로 태어났다. 1990년 10월 31일(동시분양) 32평형(전용 84㎡), 분양가 5800만원가량(3.3㎡당 180만원 선). W는 첫째(1차 분양)이고 K는 여섯째다. K가 좀더 인기를 끌긴 했다. 청약 경쟁률이 각각 50대 1, 37대 1이었다. 동시분양 전체 평균 경쟁률은 17대 1이었다. 둘 다 2년 4개월 후인 1993년 2일 4일 차이로 걸음마를 뗐다(준공). K가 조금 빨리 자라기는 했지만 11살까지 별 차이가 없었다. 부동산정보업체 과거 시세를 보면 2000년 말 W가 2억원, K 2억1000만원이었다. 정부의 공인 평가도 비슷했다. 2001년 7월 기준 공시가격(당시 기준시가)이 각각 1억4000만원, 1억5400만원이었다. 차이가 10% 이하였다.

그런데 현재 주변에서 평가하는 몸값은 W 5억원, K 8억3000만원. W가 달아본 실제 최고 몸값은 지난해 10월 5억1800만원(실거래가격)이다. K는 지난해 9월 8억9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올해 1월 1일 기준 이들 공시가격은 W 3억4100만원, K 5억900만원이다. 태어나서 29년간 W가 시세 기준으로 8배가량 자라는 동안 K는 12배가량 컸다. 1994년 첫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이후 25년간 W가 2배, K 4배 올라갔다.

만만한 이웃 vs 힘센 이웃

W와 K의 몸값 격차가 벌어진 것은 21세기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후부터다. 조상 차이다. 강남이 가른 희비인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재건축 붐이 일어난 강남 몸값이 급등하면서 분당도 덩달아 올랐다. 분당은 신도시 개발 초기부터 근접한 지리적 이점 등으로 준강남권으로 분류되며 강남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1기 신도시 개발 직후 서울에서 가장 많이 이사한 곳이 분당이고, 서울 이주자의 절반 정도가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출신이었다. 강남4구 출신이 분당 입주민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2015년 기준으로 분당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인구 절반이 강남3구로 간다. 12세 이상 분당 인구 중 매일 강남으로 다니는 사람이 10명 중 1명이다. 일산은 서울 서북부인 은평·서대문·마포와 가까운 사이다. 강남 집값이 치솟을 때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가까운 분당이 덕을 봤다. 서울 강북지역은 강남보다 집값이 적게 오른 데다 일산과 강북 집값이 비슷해 ‘낙수효과’를 별로 보지 못했다. 분당은 금수저를, 일산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셈이다.

W와 K는 주변에 들어선 이웃 덕에서도 갈렸다. 분당은 서쪽으로 이어져 개발된 2기 신도시 판교 덕을 톡톡히 봤다. 판교는 행정구역상 분당구에 속해 사실상 분당과 같은 집안이 됐다. 고양이 수도권 택지 공급 창고 역할을 하면서 일산 이후 11개 공공택지가 개발됐다. 일산(1574만㎡)과 비슷한 규모인 총 1395만㎡에 일산보다 더 많은 9만여 가구의 새 집이 공급됐다. 분당 근처에도 판교를 제외하고 6개 지구가 조성됐지만 모두 소규모여서 모두 합쳐도 분당·판교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일산은 이웃들의 기세에 눌렸다. 330만㎡가 넘는 신도시급 삼송(507만㎡)과 보금자리 시범지구인 원흥(129만㎡) 등이 있다. 더구나 이들 상당수가 일산보다 서울에 더 가까이 들어서 서울에서 일산으로 가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일산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화정·행신 등이 일산과 서울 사이여서 서울 접근성이 좋았지만 작은 규모여서 일산 그늘에 가렸다. 지금은 달라 삼송·지축·향동·원흥 4개 지구가 일산 절반 규모(877만㎡)로 서울에서 일산으로 가는 관문을 차지하고 있다. 2012년 이후 지어진 새 아파트이기도 하다. 전용 84㎡ 기준으로 삼송 I가 2015년 입주했을 때 4억2000만~4억3000만원으로 일산에서 잘 나가는 집들과 비슷했다. 현재는 6억5000만원 정도로 일산보다 1억~1억5000만원 더 비싸다.

이런 마당에 일산은 창릉이라는 전보다 훨씬 센 이웃을 만나게 됐다. 창릉과 삼송 등을 합치면 일산보다 좀 더 큰 매머드급 신도시(1690만㎡, 9만 가구)가 탄생한다. 일산의 창릉 반발에는 30년 가까이 쌓인 주택시장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 외에 절망감도 깃들어 있다. 이번 정부 들어 분당과 집값 차이가 더욱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7년 5월까지 20% 정도이던 W와 K 가격 차가 지금은 3배가 넘는 70%로 커졌다. 역대 최대다. 공시가격 차이도 2017년 1월 1일 기준 26.5%에서 올해 49.3%로 벌어졌다. 집값으로 속상한데 창릉 날벼락까지 맞았다.

창릉과 삼송 더하며 일산보다 큰 매머드급 신도시

W 집값은 앞으로 희망이 없는 걸까. 13년 전 2006년이 되살아 나면 W 집값이 날개를 달 수 있을지 모른다. 일산이 어두운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전국 집값이 끓어 오른 2006년, 일산 상승세가 전무후무하게 두드러졌다. 그해 아파트값이 45% 오르며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분당 상승률은 24%였다. 일산과 가까운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과 파주시 운정신도시 고분양가의 반사이익이었다. 은평뉴타운 분양가가 3.3㎡당 최고 1500만원을 넘겼고 운정에서 주변 시세(3.3㎡당 800만~900만원)보다 50% 이상 비싼 3.3㎡당 1257만~1499만원이 책정됐다. 이 일대에서 신도시로 주거 여건이 나은 일산이 저평가됐다는 심리에 집값이 치솟았다. 일산 아파트 값은 3.3㎡당 1200만~1300만원이었다. 2005년 말 3억5000만원이던 W 가격이 1년 새 2억원가량 급등했다. 일산 아파트 값은 2007년 초 정점을 찍었다. 2006년처럼 창릉에서 고분양가가 나오면 일산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고분양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수요가 일산으로 향할 수 있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다. 현재 추세라면 창릉 분양가는 3.3㎡당 1800만원 이상 2000만원까지 넘볼 수 있다. 요즘 일산이 1300만~1500만원이다. 같은 생활권에서 가격 차가 한없이 벌어질 수 없기 때문에 정도가 심하면 다시 좁혀지게 된다. ‘갭 메우기’인 셈이다. 창릉 자족기능이 판교 테크노밸리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둬 주택수요를 빨아들여도 일산에 득이 될 수 있다. 창릉에서 흘러넘치는 낙수효과다. 창릉 3기 신도시가 개발되면 어떤 식으로든 일산은 창릉에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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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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