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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 개편에 수제 맥주 날개 다나] 판매 확대 걸림돌이던 가격 인하 여지 생겨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수제 생맥주 가격 약 30% 낮출 수 있어… 다양한 맛, 규제 완화 거치며 성장

▎사진:© gettyimagesbank
서울 가로수길, 경리단길, 종로 익선동, 경주 황리단길, 전주 한옥마을 등 이른바 ‘핫’한 거리에서 대세는 수제 맥주다. ‘**크래프트’ ‘**양조장’ 등 생소한 이름의 수제 맥주가게가 거리를 채우고 있다. 여러 맥주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샘플러’를 주문해 맛을 보면 ‘태어나 처음 맛보는 맥주 맛’을 느낄 수 있다.

수제 맥주는 국내에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대중성이 더해지며 주류시장의 핫한 트렌드로 떠올랐다. 수제 맥주를 취급하는 펍뿐만 아니라 일반 술집과 편의점에서도 캔이나 병으로 포장된 수제 맥주를 팔고 있다. 특히 맥주에 붙는 주류세가 종량세로 달라지면서 수제 맥주 전성시대가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수제 맥주는 대형 양조장이 아닌 ‘마이크로브루어리’라고 불리는 소규모 맥주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를 뜻한다. 1970년대 미국양조협회(ABA)가 개인을 포함한 소규모 양조장이 소량 생산하는 수제 로컬맥주를 뜻하는 용어로 ‘크래프트 맥주’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일반화됐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제 맥주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2013년 93억원에서 2018년 633억으로 7배 정도로 커졌다. 업계에서는 2023년 수제 맥주시장 규모가 1500억원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수제 맥주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어떤 맥아와 홉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 맥아의 건조방법, 발효방법 등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맛을 낸다. 대규모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보다 깊은 풍미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제 맥주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이런 ‘다양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조혜정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제 맥주 소비자들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일반 맥주에서 벗어나 독특한 스타일과 맛으로부터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맥주의 풍미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즐거움뿐만 아니라 개성 추구, 삶의 변화와 자극의 욕구에 대한 만족감을 얻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분석했다.

2002년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제 도입

규제 완화도 수제 맥주시장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 수제 맥주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다. 2001년까지 맥주를 제조해 판매하는 면허를 얻는 것은 대기업이 아니면 어려웠다. 그때까지는 주류제조 면허를 얻기 위한 주류제조장의 시설기준 최소 용량이 커서 소규모 사업자의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 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다양한 맥주에 대한 수요가 커졌고, 외국인 방문객들이 다양한 맥주를 원한다는 지적이 나오며 변화가 시작됐다. 정부는 2002년 주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만들었다. 다만 소규모 맥주 제조자는 영업장 안에서만 맥주를 판매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규제는 2014년 4월에 확 풀렸다, 정부는 주세법 시행령을 통해 업체가 수제 맥주를 다른 매장에 팔거나 맥주 축제 등 야외 행사에 공급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수제 맥주 시장의 규모는 급성장했다.

규제에 따른 수제 맥주 산업의 변화는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 사업자 수를 살펴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2002년 도입된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를 보유한 사업자는 2005년까지 112개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 2014년 54개로 감소했다. 2010년 말 정부가 일반 맥주 제조 사업자 면허의 시설 기준을 낮추며 세븐브로이 등 중형 수제 맥주 기업이 탄생하긴 했지만 수제 맥주의 다양성의 핵심인 소규모 면허 사업자는 더욱 줄어들었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 제도 도입 후 고급 상권을 중심으로 수제 맥주 펍 창업이 이어졌지만 상당수가 고전하며 폐업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맥주 제조 사업자는 2014년 4월 두 번째 규제 완화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난해 109개로 늘어났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올해 3월까지 114곳의 소규모 맥주 제조 사업자가 면허를 받아 운영 중인 것으로 집계했다. 규제 완화 후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증가한 것이다. 이 시점부터 대기업도 수제 맥주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세계푸드가 2014년 말 수제 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를 론칭했고 이듬해에는 진주햄이 수제 맥주 업체 카브루를 인수했다.

지난해 4월 이뤄진 세 번째 규제 완화는 수제 맥주의 성장세에 날개를 달게 만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세 번째 규제 완화의 핵심은 일반 맥주 제조자와 마찬가지로 소규모 맥주 제조사의 맥주도 병입해 대형마트와 편의점, 백화점 등을 통해 판매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소규모 맥주 제조자 기준을 5㎘~75㎘에서 5㎘~120㎘로 확대해 양조장의 규모도 키울 수 있도록 했고 일부 주세 경감 조치도 실시됐다. 대기업의 수제 맥주시장 진입이 본격화된 것도 이 시점부터다. 오비맥주가 지난해 4월 수제 맥주 업체 더핸드앤몰트를 인수했고, LF는 지난해 12월 수제 맥주 브랜드 ‘문베어’를 론칭했다. 이에 따라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 사업자의 제품이 다양한 유통채널을 통해 판매되며 소비자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될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소규모 업체들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조원가가 비싼 탓에 마진을 남기기가 쉽지 않아서다. 특히 원가가 너무 높아 유통채널에 진입하더라도 4캔에 1만원에 판매하는 수입 맥주와 가격 경쟁이 불가능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현재 소매점에 유통하고 있는 곳은 8곳에 불과하며 이 중 전국 단위로 공급하는 곳은 4곳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도 수제 맥주시장에 잇따라 뛰어들어

수제 맥주 업계는 이번 주세 개편에 주목하고 있다. 제조원가에 따라 매기던 종가세가 제품의 양에 따라 매겨지는 종량세로 바뀌면 마진을 높이거나 저렴하게 수제 맥주를 공급해 매출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제 맥주 업계에서는 7000~1만원 수준인 수제 생맥주의 경우 5000~7000원 대로 가격을 낮출 수 있고, 4000~5000원 선인 수제 캔맥주의 경우 1000원 정도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맥주 종가세 전환으로 수제 생맥주의 대중화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뿐더러 더욱 좋은 재료로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490호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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