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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소용돌이 속 자동차 산업 어디로] 엔진을 버리고 자동차를 살려라?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
유럽 각국 내연기관차 퇴출 권고… 폴크스바겐 “앞으로 전기차만 생산”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소속 환경운동가가 영국 런던에서 기후변화 대응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돼 들려 나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 지난 4월 영국 곳곳에서 점거 시위를 벌였다. 멸종저항은 현재의 기후변화 양상을 ‘비상사태’로 규정,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정치권의 응답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멸종저항의 이번 점거 시위는 영국 역사상 최대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시위가 이어진 약 2주간 영국 경찰에 체포된 멸종저항 운동가만 1000명을 넘었다. 1961년 반전시위 이후 가장 높은 강도였다. 언론을 포함해 정치권은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가졌고, 지난 5월 1일 영국 의회는 기후 위기를 인정했다. ‘기후변화 국가비상사태’ 선포 결의안도 통과됐다.

영국 의회, 기후변화 국가비상사태 선포

멸종저항이 제시하는 목표는 2025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0)’다. 202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로가 되지 않으면 멸종·절멸을 걱정해야 할 만큼 긴박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목표가 됐다. 기후 악화로 식량 시스템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멸종저항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배출원 즉, 에너지·농업·산업·교통에서의 획기적인 변화가 뒤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교통 분야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를 위해선 2025년부터 휘발유·경유·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신규 판매가 모두 금지돼야 하며 이미 판매된 대부분의 자동차 운행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멸종저항의 요구가 과격하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 위기가 심각한 것은 맞지만, 교통 분야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내 제도권 학계와 지자체는 내연기관 자동차 운행과 관련한 퇴출 권고를 내고 있다. 영국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근간을 마련하고 있는 기후변화위원회(Committee on Climate Change)는 2030년부터 기존 자동차 즉, 가솔린과 디젤차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지난 5월 초 발표했다. 영국 정부의 기존 정책은 2040년부터 기존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보다 10년 빨리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권고가 나온 것이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은 영국보다 앞서 가솔린과 디젤차 판매금지 정책을 발표했다.

독일도 변하고 있다. 독일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줄이고, 2050년까지 95%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독일은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가솔린차와 디젤차 등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판매 감축을 계획하고 있다. 독일이 BMW·벤츠·폴크스바겐과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보유한 자동차 강국이며 이들이 독일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는 커다란 변화로 꼽힌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82만 명에 달하는 고용효과를 창출함과 동시에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0%가 자동차 산업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면 독일 경제가 흔들리는 구조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자동차 및 수송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9500만t을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나아가 유럽연합 차원의 강력한 이산화탄소 감축 규제 도입도 지지했다.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미국 정치권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는 그린 뉴딜 정책을 제시한 상태다. 이들은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강력한 온실가스 저감 정책을 내고 있다. 이들은 교통 부문에서는 기존 가솔린차와 디젤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도 최근 “기후변화가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됐다.

도시 차원에서의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은 지난 5월 2일, 2030년부터 기존 가솔린차와 디젤차의 도심 운행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노후 디젤차의 운행을 한정적으로 금지하는 것에 그쳤다면, 암스테르담의 이번 결정은 도심 내에서 가솔린차·디젤차의 운행을 모두 금지하는 것으로 이전 조치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를 위한 내연기관 퇴출 움직임은 전기차로의 전환으로 촉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성장한 중국은 이미 지난 4월부터 전기차 중심의 친환경차 의무판매제를 시행하고 있다. 친환경차 의무판매 목표는 2019년 전체의 10%, 2020년 12%이다. 이런 규정에 힘입어 앞으로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기차 제작에서도 중국 토종 업체들이 두각을 보일 전망이다.

꼼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자동차 시장에 전기차 바람이 불게 된 데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전기차·에너지 전문 기업 테슬라의 역할이 컸다. 테슬라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지속가능한 이동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2003년 창업했다.

테슬라는 이후 고성능 대형 세단 ‘모델S’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X’를 출시해 전기차가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테슬라가 출시한 모든 자동차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유럽연합의 이산화탄소 규제, 중국 친환경차 의무판매 제도에서 친환경차로 인정받고 있다.

테슬라의 성공과 국가 차원의 규제 강화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의 내연기관차 생산 포기 선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완성차 생산량 세계 1위 업체인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말 전기차만 생산하는 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또 2028년까지 전기차 70개 모델을 출시해 앞으로 10년 동안 전기차 2200만대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내연기관차를 발명한 벤츠 역시 2030년에 생산량의 50% 이상을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로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인 GM은 전기차에 집중하기 위해 선제 구조조정을 실행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디젤 SUV 여전히 인기

우리나라 상황은 사뭇 다르다. 2017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와 관련한 법안 논의가 이뤄지는 정도에 그쳤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소형 전기차를 소량 생산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국내 자동차 판매를 견인하는 것은 디젤 SUV다. 현재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높은 판매율을 올리는 차량은 대부분 싼타페, 카니발, 렉스턴 스포츠 등 디젤이 주력인 차량이다.

기후변화 문제가 발단이 돼 지금 이 순간에도 생물종 다양성이 줄고, 영국에서 시작한 멸종저항 시위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전역으로, 또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석유를 태우며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면 이런 동향을 주목하고 냉정하게 결단해야 한다. 엔진을 살리려다 자동차를 죽일 것인지, 엔진을 버리고 자동차를 살릴 것인지.

1491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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