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다시 돌아보는 등가교환의 법칙 

 

정영수 칼럼리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드라마 속의 ‘자곡동’은 자줏빛 ‘자(紫)’와 골 ‘곡(谷)’자의 서울 강남구 자곡동(紫谷洞)이 아니다. ‘허물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고깝게 여긴다’는 뜻의 자곡동(自曲洞), 즉 결점이 있어 자신을 고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자곡은 ‘자국’의 옛말이기도 하다.

자국은 다른 물건이 닿거나 묻어서 원래의 상태가 달라진 흔적을 말하기도 한다. 무엇이 있었거나 지나가거나 작용해 남은 결과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드라마에서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곡2동’으로 좀 더 비껴간다.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지난 2~3월에 걸쳐 방영된 월화 드라마 [눈이 부시게(Blindingly)]는 주어진 시간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젊음을 잃어버린 여자와, 누구보다 찬란한 순간을 스스로 내던지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남자가 나온다.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시간 이탈 판타지 로맨스이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등가교환의 법칙’이란 단어로 자신의 인생 철학을 이야기 한다. 소중한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큼의 다른 소중한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나간 삶에서 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추억 하나 가슴에 묻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오늘 내게 주어진 눈부신 반짝임만으로도 등가교환은 충분하다고 본다는 메시지가 묻어난다.

등가교환(等價交換·Exchange of equivalents)은 원론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갖는 두 상품의 교환을 일컫는다. 화폐가 생긴 후에는 대개 상품과 화폐가 교환되므로 상품의 가치와 가격(화폐량)이 일치하는 교환이 등가교환이 된다. 가치와 가격의 일치는 그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엄밀히 일치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양자가 일치하는 것은 아주 희소하고, 대개의 경우 엄밀한 의미의 등가교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부단한 부등가교환을 통해 평균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등가교환이 성립된다. 등가교환은 원래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쓰는 용어이며, 이때의 가치는 사회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상품생산에 필요로 하는 사회적 노동시간이며, 같은 사회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등가물로서 교환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등가교환에 따라 움직인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있다. 물건의 가치만큼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우리가 뭔가를 갖고 싶으면 그 가치만큼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둬야 할 것은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이 세상에 거저 쥐어지는 건 없다는 점을 드라마는 강조한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다른 타임 슬립(Time slip) 드라마와 다른 점이 있다. 보통 타임 슬립 드라마는 그저 시간을 되돌리기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눈이 부시게]에서는 시간을 거스르되 등가교환, 즉 시간을 돌리는 대신 내 시간을 내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드라마에서 혜자(김혜자)는 이 ‘등가교환’ 때문에 시간을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눈이 부시게]가 색다른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혜자가 25세와 75세를 번갈아가며 눈이 부시게 연기를 해서만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알콩달콩한 만남과 러브 라인에 더욱 큰 기대감을 가질 수 있어서도 더욱 아니다. 이른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다’는 이 법칙이 늘 캐릭터들의 뒤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보는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시계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매력적인 질문인가.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 인간들의 질문일 것이다. 언제나 지나간 날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되돌려놓고 싶은 것들을 꿈꾸며 시간여행 드라마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그래서 드라마는 줄곧 현대인의 대안공간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지닌 [눈이 부시게]의 주인공 혜자가 부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을 되돌리려 수없이 시계를 돌리는 그녀의 절박한 노력에 가슴 졸이며 힘을 실어준다. 아빠를 살리려는 노력은 끝내 절반의 성공을 거두지만, 시간을 되돌린 대가로 꽃다운 나이의 딸은 노인이 되고 목숨을 건진 아빠는 다리를 잃는다.

“이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 돌아가. 우리가 무언가 가지고 싶다면 그 가치만큼의 무언가를 희생해야 해.” [눈이 부시게]는 어쩌면 단순한 시간여행 드라마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고통의 실체를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역경을 통해 시간의 소중함을 말해준다.

젊으나 늙으나 발레를 하는 오르골이 혜자의 방임을 알려준다. 자동으로 곡을 연주하는 악기 오르골(Orgel)은 시간을 얼마든지 되돌릴 수가 있다. 태엽을 감으면 쇠막대기의 바늘이 회전하며 음계판(音階板)에 닿아 곡이 연주되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혜자와 대비되듯 꿈과 희망을 상징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지명과 소품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그들만의 밀회장소인 허술한 포차와 우동, 소주는 시간(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곳은 왠지 보는 이들에게도 알 듯 모를 듯 희망을 안겨준다. 촌티 나는 할머니들의 모임 공간인 ‘행복미용실’은 혜자의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이를테면 그녀의 가족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행복’과는 멀게만 느껴지는 공간임을 어쩌랴.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늙고 불편해 뭔가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주인공 김혜자는 행복을 일깨워주는 로맨스 판타지 [눈이 부시게]를 이렇게 말한다.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비용)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공부 많이 했다”고도 털어놓았다.

‘공짜점심’이란 어쩌면 공짜의 오류가 아닐까.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이 정말로 자본주의를 설명하기에 적합한가의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젊음과 늙음의 맞교환. 드라마에선 미리 알 수가 없다는 불확실성까지도 감수해야 할 ‘등가’에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바꿔야 할 포기와 고통의 과정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값은 아니라는 점도 일깨워주지 않았을까.

1492호 (2019.07.1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