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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만들 미래는] 고강도 교육 혁신 없인 유토피아도 공염불 

 

특이점 이전에 일자리 대체 문제… 미래형 직업교육으로 대비해야 극복 가능

▎북유럽 선진국 핀란드에서는 많은 고등학교에서 코딩 교육으로 학생들의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사진은 핀란드 민간 코딩 교육 업체 미헤킷의 프로그램과 이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 / 사진 : 미헤킷
글로벌 산업계를 사로잡은 인공지능(AI)은 현재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까지 갈까. 구글 딥마인드의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완승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직후 국내외에선 AI 담론이 한층 활발해졌다. AI가 만들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감 또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려감이 공존했다. 3년여가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는 담론 자체가 좀 뜸해졌다. AI 기술이 아주 멀지 않은 미래까지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지만, 일반 대중이 보기엔 막상 3년여 간의 ‘성과’가 눈에 띌 정도로 특별한 것은 적어서였다.

학계 일각에서도 일부 비판적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저서 [3년 후 AI 초격차 시대가 온다]를 펴낸 정두희 한동대 ICT창업학부 교수(기술경영학 박사)는 책에서 “자체 조사 결과 지난해 8월 기준 AI 기술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국내 기업인은 전체의 16%, 실제 업무에 AI 기술을 활용 중이라는 기업인은 12.5%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도 실용이라기보다 ‘AI를 활용하는 앞선 기업’이라는 이미지 만들기 용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발간 슬론매니지먼트리뷰(SMR)에 따르면 실제 AI가 현지 기업 프로세스에 적용된 사례는 23%에 그쳤다. AI를 완전히 통합한 경우는 5%, AI가 현재 조직 운영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18% 밖에 안 됐다.

“3년 후 AI 폭발적 성장기 접어들 것”

이에 대해 정두희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신기술의 수명주기를 나타내는 ‘S곡선’을 살펴보면, 기술 발전 초기엔 곡선이 완만하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갑자기 폭발적인 성장 궤도를 그린다. AI 기술은 아직 이 S곡선의 성장 지점에 이르지 않았다. 신기술을 배우고 기업 내 도입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게 돼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기 쉽다.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도 기술 발전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그는 3년 후인 2022년 무렵이면 AI가 폭발적인 성장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애플과 아마존 같은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AI 학습 속도가 물밑에서 급속도로 빨라졌으며, 무엇보다도 AI 발전의 연료 역할을 하는 데이터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최근 2년간 콤마닷에이아이나 테슬라 같은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수억 ㎞에 달하는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AI 딥러닝을 활용해 자율주행 기술 구현에서 전에 없던 성과를 내고 있다.

높은 기대치에 비해 AI 발전이 더딘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발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전망은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제기한 바 있다. 구글에서 엔지니어링 이사로도 몸담고 있는 커즈와일의 생각은 좀 더 과감하다. 그는 수학자이자 컴퓨터의 아버지로 통하는 고(故) 존 폰 노이만이 처음 언급한 ‘특이점(singularity)’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2005년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2030년 이후 인간과 AI가 클라우드와 결합한 ‘하이브리드 두뇌’가 구현될 것으로, 2045년 무렵이면 AI가 모든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 것으로 각각 예측했다. 그는 2017년 방한한 자리에서도 “반도체와 바이오, 인터넷 같은 모든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2030년이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신인류가 탄생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의 AI를 전문가들은 ‘강(强) AI’로 표현하면서 일반적인 ‘약(弱) AI’와 구분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보듯 꼭 로봇 형태가 아니더라도 인간처럼 사고가 가능하며 자아를 갖춘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특정 분야에서 인간의 생산성 향상을 돕는 데 쓰이는 경우를 가리킨다. 지금껏 산업계에서 선보인, 혹은 연구과 개발이 진행 중인 모든 AI는 당연히 후자다. 현 시점에서 국내외 전문가 대부분이 논하는 AI도 후자 쪽이다. 이런 약 AI는 인간이 통제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강 AI와 달리 눈앞에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지 않다. 그러나 하나 예외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데 최근 전문가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다. 산업계 각 분야에서 AI로 구축 중인 고도의 자동화 체계가 인간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급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영국 옥스퍼드대의 한 연구진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47%가 AI로 대체될 전망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도 올해 산하 연구소(맥킨지글로벌연구소, MGI)를 통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3%를 차지하는 10개국을 조사한 결과 2030년까지 남성 근로자 1억6300만 명, 여성 근로자 1억700만 명이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예측했다. 통상 공장 자동화가 주로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 일자리를 더 많이 뺏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MGI에 따르면 제조업에서는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일자리를 잃게 될 전망이다. 이에 더해 아마존의 ‘알렉사’와 같은 음성 인식 AI 비서 서비스가 기존 비서나 콜센터 등의 상담원 같은 서비스직을, 기타 AI 기술이 일반 사무직을 빠르게 대체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없지만 새롭게 필요해진 일자리도 속속 생겨날 전망이지만 ‘AI 시대의 직업교육’이 얼마나 잘 병행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한국이 처한 한계와 개선점을 지적하고 있다. 7월 22일 대한민국헌정회산하 정책연구위원회가 마련한 AI 및 일자리 관련 토론회에서 장정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AI로 새롭게 창출될 일자리도 많은데 정부가 규제를 개선하고 각 대학에선 전문적인 학과 등을 더 적극 설립해 AI 전문가 양성에 힘써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역시 교육 현장의 혁신을 주문하는 전문가다. 그는 같은 날 경기도 의정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미래형 인재는 AI를 잘 부리고 활용하는 사람”이라며 “그동안 한국은 미래에 대비한 교육을 거부하고 과거 방식의 주입식 교육과 대학 서열화에 안주해 학생들을 길러냈는데 이런 방식으론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AI가 모든 인류에게 혜택 되려면…

반면 선진국들은 AI 시대 대비를 위한 교육 시스템 재정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예컨대 독일 정부는 현재진행형인 ‘산업 4.0(Industry 4.0)’ 정책에 발맞춘 10년짜리 장기 교육 분야 계획 ‘플랜 4.0’을 2017년 말 발표했다. 2022년까지 매년 10억 유로씩을 투입, 독일 전역에서 직업학교를 포함한 초중등 교육기관의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는 프로젝트다. 전문 직업인을 꿈꾸는 학생이든 평범한 초중등교생이든 AI를 비롯한 각종 신기술 개념에 미리 익숙해지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한국도 교육 혁신으로 AI 시대를 맞을 토대를 쌓으면서 산업적 육성 노력을 더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강 AI라는 통제가 어려운 특이점이 오기도 전에 약 AI에서부터 일자리 대란으로 디스토피아를 겪게 될 여지가 있다.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최근의 한 해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AI가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변화를 몰고 올 지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모든 인류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496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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