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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IF’ㅣ사랑을 믿는 당신에게(2) 아들의 연인을 사랑한다면] 가슴 벅찬 사랑의 찬미인가 파국으로 끝나는 금기인가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 속 아버지와 아들의 연인... 비정함에 더 성숙해지는 계기 되기도

▎사진:© gettyimagesbank
한 웹툰에서 남자와 여자가 끝말잇기를 한다. 남자의 공격에 지던 여자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이때다’ 하고 벼른다. “탄산마그네슘.” 도저히 이기지 못할 거야 하며 회심의 미소를 날린다. 남자가 말한다. “슘페터.” “뭐야, 슘페터가?” “경제학자야. 여성 편력이 상당한 경제학자.”

혁신, 창조적 파괴, 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에게 닉네임이 많다. 천재 소년, 오스트리아 귀족, 영국 신사, 카이로 변호사, 빈의 경제학자, 대학교수, 재무장관, 자유분방한 카사노바. 그가 내놓은 혁신 이론의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 요한나였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이 컸던 어머니는 슘페터가 네 살 되던 해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큰 마음을 먹는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간다. 한 경제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그라츠로, 다시 빈으로 끊임없이 ‘더 큰 도시’를 찾아 이주했습니다. 아들의 뒷배경이 되어 줄 ‘돈푼 꽤나 있는’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어머니는 33세 연상의 남자와 재혼했습니다. 어쩌면 슘페터가 어머니를 통해서 배운 경제학적 교훈이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은 과거의 유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혁신적 사고에서 온다는 교훈 말입니다. 돈푼 꽤나 가진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가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경제학자 슘페터의 여성 편력

어머니의 죽음 후 그는 둘째 부인이 분만하는 도중에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학문적 성공에 진정한 조력자였던 셋째 부인을 만나면서 안정감을 찾는다. 왜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은 한 여성에 만족 못할까. 그게 잘난 남자들의 성향일까? 그들의 업적과 여성 문제는 따로 떼놓고 보는 게 옳을까? 여성 편력이 상당히 있었던 소설가 아버지가 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아들에게 충고를 한다. 본인의 삶의 역경이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에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버지의 편지 한 대목을 읽어 본다.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아버지의 편지는 두 가지로 읽힌다. 남자로서 어쩔 수 없이 여인을 향한 향기에 도취될 수 없는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러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남자가 여자로부터 느끼는 행복과 불행은 어쩌면 향기와 서리 사이에서 큰 진폭으로 왔다갔다 할지 모르겠다.

뭇 사내들이 첫사랑을 이야기하며 둘러 앉아 있다. 부모가 반대한 사랑을 강행한 그의 눈은 슬픔과 행복이 교차하는 듯 묘했다. 금지된 사랑은 소설만의 영역인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할 때 우리는 반기를 듭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말씀하시죠. ‘너도 애 낳고 살아 봐.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거야’라고요.”

그에게 한 손님이 물었다. 첫사랑이 완결된 것에 아무런 거리낌은 없는지. “내 사랑에 후회란 단어는 없어요. 온 세상이 우리에게 축복하듯 그녀를 내게 양보했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그녀를 세상 끝까지 아끼고 사랑할 의무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린 결혼하며 서로에게 약속했습니다. 서로만 바라보다 먼 훗날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나자고요.”

요즘 없는 순애보에 모두들 숙연해진다. 그는 많은 시련이 그의 운명에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그녀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고 했다. 고난이 오면 그녀에게 ‘널 위해 견딜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긴 세월이 흐른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아도 아무런 후회 없도록 우리가 사랑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렇게 되기에는 부부로서, 연인으로서 서로간의 자의식이 너무 강해진 요즈음이다. 누가 ‘단 하루를 살아도 너 행복하도록 만들 거야’라고 하면 ‘에고 1970년대 1980년대 감성 아니야’라고 나가떨어지지는 않을지 궁금하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종이에 써서 읽어 준다. 러시아의 이반 투르게네프의 중편 소설 [첫사랑]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그의 실제 이야기와 비슷한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것입니다. 투르게네프의 자전적 소설을 제 이야기인양 하는 것에 대해 용서를 바랍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고 싶죠. 요즘 근친상간이나, 친아버지의 친딸에 대한 인면수심 행위가 사회적 파장이 되는 상황에서 이 이야기는 드라마로 말하면 막장 소재지만 제겐 가슴 벅찬 사랑의 찬미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상념에 빠진 그에게 누가 말을 거들어주며 힘을 북돋는다. 그도 소설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 블라디미르가 겨우 16살의 나이에 21살의 닳아빠진 여성과의 사랑의 아픔을 그렇게 표현한 게 정말 달콤 쌉쌀한 초콜릿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듯이 첫사랑은 한 남자를 어른으로 만들 수 있어요. 소설의 결말이 파격적이어서 그렇죠.” “나 역시 금지된 사랑의 주인공일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에는 편견이 있죠. 그 편견에 맞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주저됩니다. 이 자리에서 그래서 소설의 이야기를 하고 내가 느낀 바를 말하는 것으로 마칠까 합니다.”

금지된 사랑의 주인공


▎혁신, 창조적 파괴, 기업가정신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첫사랑은 늘 그렇게 뜨거운 것일까? 그는 자신의 사랑과 소설 속 ‘사랑의 감정’을 맹세하듯 말한다. “그녀 앞에 서면 나는 뜨거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불태우며 녹여버리는 그 불이 도대체 어떤 불인지 알 필요가 없었다. 나로서는 불에 타서 녹아버리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이 달콤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눈을 덮어 버린다. 세상 모든 것을 못 보게 한다. 소설 속 남 주인공 블라디미르의 이웃에 가난한 공작부인의 딸인 스물한 살의 지나이다가 있다. 그는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지나이다는 개성 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바람기가 만연한 여인이다. “늘 그렇듯이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미모는 여성의 무기로 작용하는 듯해요. 여자들도 잘 생긴 남자 좋아하잖아요. 난 충분히 소년의 쿵쾅거리는 심장을 이해합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예쁜 그녀 주변은 여러 남자들의 무리로 들끓었다. 블라디미르도 훌륭한 남성으로 보이기 위한 온갖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소설에는 지나이다를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한데 백작이나 의사 같은 빵빵한 신분의 사랑을 구하는 자들 사이의 소년을 생각하니 멋쩍은 웃음이 나온다. “소설은 밀당으로 가득찹니다. 어쩌면 지나이다는 21살의 여성이지만 요부 같은 여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심리를 다 읽고 몰락한 귀족 집 여자가 돈의 중요성을 깨달은 거죠. 자신의 미모를 파는 행위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중년의 구애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그녀는 블라디미르에게 ‘사랑한다’고 암시하며 희망을 솟구치게 하는 장난을 칩니다. 사랑의 밀고 당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뭐라 할 만큼 어린 소년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친구하자’ ‘누나·동생으로 지내자’며 ‘사랑의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데 도가 튼 여자이다. 지나이다가 말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뛰어내려라.” 블라디미르는 실제로 4m 높이 담장에서 뛰어내리고, 덕분에 지나이다의 키스 세례를 받으며 행복해 한다. 어느 날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에게 따로 애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흥분한 블라디미르의 마음을 생각해 보세요. 야심한 시간에 둘이 만나는 장면을 확인하기 위해 칼을 가슴에 품고 현장에 잠입하는 것이 어찌 보면 무섭게 느껴지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용광로 같은 것이죠. 사랑에 빠지는 데는 0.2초 걸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잖아요. 블라드미르는 5년 연상인 지나이다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는데, 그런 복수심이 일어나는 것도 소년의 열병 같은 것이죠.”

블라디미르는 평생 잊지 못할 상황을 목격한다. 자신이 그토록 저주했던 지나이다의 연인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가장 남자다운 남자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지나이다의 연인이라는 사실은 블라디미르에게 번개에 맞은 듯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들은 아버지를 경외했다. 블라디미르는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를 짝사랑했다. 아버지는 냉담했지만, 아들을 마치 남처럼 예의 있게 대했다.

“소설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아까 그분의 이야기는 금지된 사랑이 첫사랑으로 완결되지 않았나요?”

“네, 사랑의 유형은 다양하나 본질은 같아요. 첫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 우리는 실체와 다른 환상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판단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에서 사랑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알면 사실 사랑을 제대로 하긴 어렵게 되죠.”

“맞아요. 누구는 결혼의 실체를 알면 결혼하기가 힘들게 된다고 해요. 결혼을 남자 위주의 가부장적 제도라고 욕하면서요. 내가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 어떨까요? 우리는 어쩌면 약국에서 준 환상과 통증클리닉에서 주사한 마취제에서 깨어났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고요.”

그래서 누군가는 첫사랑은 대부분 무모하기 짝이 없고, 어이없고, 유치하다고 평가절하 한다. 투르게네프는 죽으며 어떤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버지의 존재는 블라드미르가 첫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블라디미르는 아버지의 숨겨진 연인을 목격하기 전까지 자신이 어른의 세계에 속하지 못한 아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후에는 더 성숙한 인간이 됩니다. 나 역시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운명이라면 마주하고 그렇지 않으면 회피하리라. 작가 투르게네프의 진짜 사랑은 어떠했을까? “서로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야 자식들도 행복할 가능성이 커지는 게 아닐까요? 투르게네프의 부모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기병대 대령 출신인 아버지는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랑 없이 어머니와 결혼했습니다. 어머니는 독재자였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는 경제학자 슘페터의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으리라.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경제적인 걸 좇아 결혼하는 커플은 넘친다. 진실한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회자되는 이유다. “어머니의 가혹함은 투르게네프 아버지의 사랑 없음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요? 5000명의 농노를 거느린 대농장을 상속받은 어머니는 농노들에게 가혹했습니다. 투르게네프를 포함해 아이들을 매질로 키웠습니다.”

투르게네프는 숱하게 사랑에 빠졌지만 어머니의 영향인지 실제 사랑에서 미적거렸다. 그런 와중에 투르게네프가 평생 사랑한 여자가 나타난다. 문제는 그녀가 유부녀였다는 점이다. 투르게네프가 25세 되던 해 그는 19세기 최고 디바로 손꼽히는 메조소프라노 성악가인 폴린을 만난다. ‘세비야의 이발사’에 출연한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1845년 투르게네프는 폴린과 함께하기 위해 러시아를 떠난다. 이후 폴린이 낳은 아들 폴이 투르게네프의 자식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한다. 폴은 자신의 생부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키가 작은 아버지 루이 비아르도와 달리 폴은 투르게네프처럼 키가 컸다. 그의 엄마만이 알 일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사랑이 투르게네프의 이야기와 달리 정말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우리는 보아왔잖아요? 사랑에 버려진 남성과 여성은 지구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치명적 사랑 앞에선 아버지와 아들

“소설이지만 소설이 현실인 경우도 많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그런데 나는 좀 치명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어요. 내 직업이 소설가거든요. ‘내면의 지형이란 게 있다. 영혼의 지형이랄까. 우리는 평생토록 그 지형의 등고선을 찾아 헤맨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데미지]의 첫 구절입니다. 나 역시 소설 작업을 하면서 그 등고선을 찾아 헤맵니다. 여기 모든 것을 다 가진 완벽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어느 날 파티에서 그는 아들의 연인과 조우하게 됩니다. 스치는 찰나의 만남이었으나 서로를 향한 끌림은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둘은 재회하게 되고 되돌릴 수 없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연인을 만나면 만날수록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반면, 아들의 연인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자기 방식으로 지속해 나갑니다. 그러다 아들이 연인과 결혼 발표를 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연인의 금기된 사랑은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되죠.”

데미지에서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든든한 재력의 집안을 가진 여자와 결혼해 영국 대표 국회의원이 된다. TV에 나와 인기도 있고 꽤 멋진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남자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도 여인의 재력을 빌린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공통점이다. 다른 점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데미지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랑에 질투를 느낀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경외한다. 첫사랑이 무너져도 그가 무너지지 않은 이유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과 만나고 있는 여자에게 다시 소년으로 돌아간 듯 강한 질투심과 소유욕을 느끼죠. 아들의 연인에게 헤어지고 자신과 살자고 조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정을 돌보라며 거절하죠. 더 한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합니다. 아들의 연인은 자신의 과거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합니다. 여인의 친오빠는 자살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가 남자 친구 앞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본 후 질투심에서 욕조에서 손목을 긋게 된 것이죠. 너무 치명적인 오누이의 사랑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의 현실에도 이런 금기된 사랑이 가끔 신문 지면을 장식합니다. 사랑에 금지된 사랑이 있는지 누가 물으면 그건 인간이 만든 금기라고 내가 말하는 이유입니다. 데미지를 영화화한 작품을 보면 아들의 연인과 아버지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아들이 충격으로 위층에서 뒤로 넘어져 아래로 떨어져 죽는 장면이 나오죠. 사랑은 때로는 우리를 그렇게 파국으로 몰고 가는 비정함을 남깁니다.”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1499호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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