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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2) 한국 경제 위기의 그림자] 성장잠재력 약해지고 빚은 점점 늘어 

 

‘불황형 흑자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어… 근로의욕 고취하고 기업가정신 발휘하도록 지원해야

2019년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이 위기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한국 경제 주변에 어두운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차마 부인하기 어렵다. 경제 위기는 명확한 측정지표도 없고 그 시기를 예측할 수도 없지만, 무엇인가 불안한 징후가 감싸 돌고 있다. 외부로부터 전염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고 나아가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할지도 모를, 무시하지 못할 한국 경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① 가장 두려운 문제는 성장잠재력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잠재력은 중장기 성장 추세로 가늠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경제 성장 추세는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 되어 1%대로 진입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인다. 빈부격차 심화로 소비수요 기반이 부실해진 데다 그치지 않는 단기 업적주의로 말미암아 성장잠재력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성장잠재력이 추락하면 물가안정, 고용안정, 국제수지균형과 재정균형 또한 모두 다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성장률이 낮아지는데, 대외경쟁력이 여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미 예견되고 있었지만 이제는 ‘불황형 흑자시대’도 저물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느낌이다. 지금과 같은 무기력해진 성장동력으로 미뤄보아 경상수지 적자시대로 돌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성장의 바탕이 되는 기업의 해외 이전 사례가 보이고 있어 더욱 불안하다.

② 성장이 정체되면 세입 규모도 줄어들기에 이미 예고된 재정적자 위험은 순식간에 심각해질 수 있다. 더구나 부채증가 속도가 민간 부문, 정부 부문 다 같이 심상치 않다. 부채는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물에 빠지는 것과 같아 빚진 가계·기업·정부의 행동을 얽어매어 위기대응 능력을 훼손한다. 고성장·고물가 시대에는 소득이 늘어나는 데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쳐져 그럭저럭 부채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저성장 저물가 구조 아래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빚의 비중이 줄어들기보다 늘어나기 쉽다. 가계부채가 국민총생산(GDP) 수준을 넘어선 상황에서 경제성장률만큼 가계부채를 갚아나간다고 해도 약 40(100/2.5)년이 더 걸린다. 빚이 소득보다 더 늘어나는 국면에서 부채가 가져올 재앙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대략 GDP의 40% 수준인 것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공기업 부채까지 포함한 공공 부문 부채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이미 GDP의 60%를 넘어선 상황이다. 여기에 공무원·군인 연금충당부채를 합하면 국가 전체 채무는 GDP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기업 부채는 계정과목만 다를 뿐이지 사실상 국가부채라는 사실이다. 빚이 늘어나면 조그만 경제적 충격을 받아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기가 쉽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아시아 외환·금융위기는 기업부채, 국제금융위기는 가계부채가 과다하게 발생해 결국 경제위기로 확산됐다. 남유럽, 남미 국가가 경제무기력 증후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국가부채가 짓누르는 데다 공짜심리까지 여기저기 널리 있기 때문이다.

③ 물가상승률이 점점 낮아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 inflation) 현상이 뚜렷해지는 데다, 자칫하다 소비수요 기반 훼손으로 물가가 맥없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으로 진전될 위험까지 배제하지 못한다. 소비자물가지수가 2015년 기준 100에서 2019년 5월 현재 105로 연간 물가상승 속도가 물가안정목표의 반의 반 아래로 점점 낮아지면서 마이너스에 이르는 경우가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서민 생활물가는 고통스럽게 올라가고 있지만, 나라 전체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비수요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반증이다. 거래비용 과다로 부동산 거래가 어려운 상황에서 불황이 덮칠 경우, 부채 디플레이션 우려 또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투기는 해악이지만 한국인 자산의 63% 정도를 차지하는 부동산 거래를 막으면서 순조로운 경제 순환을 바라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부동산은 끝났다”는 상황이 되면 열심히 일할 동기도 약해지는 동시에 돈의 흐름이 막히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거래 실종사태를 가볍게 여기다 위기를 가속화시킬 우려를 배제하지 못한다.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의 주택가격과 소득성장률 상승 추이는 비슷하거나 주택가격 상승률이 오히려 낮은 수준임을 직시하여야 한다.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에만 매달리다가는 자칫 구성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성장잠재력 추락, 점증하는 부채, 디스인플레이션, 부채 디플레이션 위험 같은 한국 경제의 위기증상은 채권시장이 보내는 시그널에서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기대의 작용이 신속한 채권시장은 어느 지표보다 미래의 경제상황을 정확하고 빠르게 알려주는 신호기능을 하고 있다. 2019년 6월 현재 무위험 채권인 국고채(3년) 금리는 1.5% 미만으로 적정 수준(예상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3% 미만의 절반 정도 수준에서 형성되는 반면에 회사채(3년) BBB- 등급 금리는 8% 내외로 적정 수준보다 3배 이상 높게 형성되고 있다. 국고채 금리와 회사채 BBB- 금리와의 격차는 무려 5~6 배 수준에 달한다. 무위험채권의 금리는 자꾸 낮아지는 반면에 위험채권의 금리는 적정 수준보다 점점 더 높아지는 비정상적 상황이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의 무기력증상과 동시에 위험과 불확실성 또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머리는 무겁고 다리는 휘청거리는 상황과 흡사하다 하겠다.

성장잠재력을 확충시키려면 국가 경제의 위험과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가계와 기업이 근로의욕을 높이고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이윤추구 동기로 상품을 “더 좋게, 더 싸게, 더 빨리” 만들어내려는 과정에서 성장잠재력이 배양된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단기 성장 효과를 거두려 한다면 소중한 재정을 낭비하고 중장기 성장잠재력은 오히려 마모되기 쉽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처럼 나중이야 어떻게 되든 당장 좋으면 그만이라며 빚을 무섭지 않게 생각하다가 많은 일을 그르쳤다. 재정적자 수렁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데다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언제 있을지 모를 해외 충격을 완충하지 못하고 휘둘리게 된다. 정부부채도 가계부채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힘을 합해 갚는 것이지, 빚을 지게 만든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갚지 않는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면 후손들까지 불행해진다.

경제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돈이 돌지 않는 현상으로 응축돼 나타나기 마련인데 화폐유통속도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돈이 도는 속도가 느려지면 유동성을 그만큼 완화해야 된다. 2019년 6월 현재 정책금리인 기준금리는 1.75%인데 시장 금리인 국고채(3년) 금리가 1.42%라는 일그러진 사실은 금융과 실물의 불균형이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야구에 비유하면, 투수가 던진 공이 이미 포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도 타자는 멋모르고 투수의 동작을 살피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기를 느끼지 못하면 위기에 대응하지 못한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위기가 닥치면 유동성을 펌프가 아니라 폭포처럼 풀어야 한다. (과거) 디플레이션을 겪은 다음에는 (초)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가뭄과 혹서로 땅이 갈라지기 전에 대지를 적시려는 최소한의 대책이 필요하다.

-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1500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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