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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기류에 휩싸인 국내 항공산업] 가격 경쟁력 낮아 외항사에 밀리고 일본행 여행객 급감해 실적 악화 

 

대형 항공사-저비용항공사 모두 고전… 국내외 경기 둔화에 치열한 경쟁 이중고

2009년 949만 명이던 내국인 해외 여행자 수가 2018년 2869만 명으로 3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3000만 명 돌파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정작 항공 업계에서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 대표 대형 항공사(FSC, Full Service Carrier)인 대한항공은 4분기 연속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와 매각 본입찰까지 마쳤다. 고성장을 거듭하던 저비용항공사(LCC, Low Cost Carrier)도 울상이다. 올해 들어 LCC 6개사의 승객 탑승률이 감소한 가운데 한일 관계 악화로 주력인 일본행 여행객 수가 급감하면서 역시 영업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외 경기 둔화와 경쟁 격화 등의 난기류를 만난 항공 업계 현황과 전망을 짚어봤다.


▎사진:연합뉴스
11월 7일 국내 2호 민간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을 찾기 위한 본입찰이 마감됐다. 예상대로 애경그룹-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 KCGI-뱅커스트릿PE 컨소시엄 등 적격 인수후보가 모두 입찰에 참여했다. 매각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르면 다음주에 우선협상대상자를 통보하기로 했다. 이어 우선협상대상자의 확인 실사, 가격 조정 등의 절차를 거쳐 12월 중 주식매매계약(SPA)을 할 예정이다. 매각 절차가 마무리 되면 한진그룹과 함께 국내 민간 항공시장에 경쟁 체제를 열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항공산업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주관사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번 입찰에 앞서 몇 가지 조건을 언급했다. 우선 금호산업이 보유 중인 아시아나항공 지분 31%(구주)와는 별도로 유상증자로 새로 발행하는 주식(신주)을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주 인수 때 최저 투자 금액은 8000억원으로 제시했다. 이 금액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금으로 흘러들어간다. 다만 80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4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조달한 영구채와 채무보증 규모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산업은행의 자금 회수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금액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리스 조건을 조정하는 등 부채비율을 낮추고, 경영상황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계획 역시 포함해야 한다. 여기서는 정량적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종합하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인수 후보는 이번 입찰가와 별개로 아시아나항공의 노후 항공기 교체와 부채 규모 축소 등 정상화를 위해 자금을 더 넣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실사에 참여했던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에 신주 투자 하한선인 8000억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인수 이후 경쟁력을 회복할 때까지 들어갈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새 주인 찾는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무상태에 탈이 나자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자금줄 역할을 맡으며 부담이 누적됐다. 항공업 특성상 주기적인 투자가 필수적인데, 그룹 재무위기까지 대응해야 했던 아시아나항공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금을 조달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앞으로 판매할 항공권 매출을 담보로 자금을 끌어오는 장래매출채권 유동화는 물론,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사모사채 등이 활용됐다. 아시아나항공에 연간 7000억원대 현금흐름이 흘러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입이 늘어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 역시 자력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됐다. 2015년까지만 해도 BBB+ 등급이던 아시아나항공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2017년 BBB-등급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2018사업연도부터 새로 적용된 회계기준에 따라 운용리스 비용도 부채에 포함되면서 부담이 더욱 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기준 운용 중인 항공기의 절반 이상을 운용리스 계약으로 들여왔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49%다. 영업실적은 영업이익 282억원을 거뒀지만 당기순이익은 1959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여기에 항공 업황에 이상신호가 나타나면서 올해 들어서도 1분기 892억원, 2분기 2024억원 순손실을 기록 중이며 3분기에도 적자가 예상된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부채는 총 9조6000억원. 신종자본증권 5832억원을 포함하면 10조원이 넘는다.

국내 항공 업계 맏형인 대한항공의 사정도 녹록하지 않다. 새로운 회계기준 적용이나 업황 변화 등의 영향이 동일하게 작용했다. 아시아나항공보다는 모그룹의 사정에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수익성은 감소했다. 대한항공은 올해 2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2014년 2분기 이후 5년 만에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분기 순이익 기준으로는 지난해 4분기부터 3개 분기 연속 적자다. 증권가에서는 3분기 실적 역시 순손실을 예상하고 있어 4개 분기 연속 적자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도 5년 만에 분기 영업손실


대한항공 역시 난기류에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는 시장에 즉각 반영됐다. 회사채 시장에서 없어서 못 샀던 대한항공의 회사채 인기가 떨어졌다. 올해 하반기부터 연이어 투자자 모집에 실패하고 있다. 지난 7월 총 2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의 주문은 750억원에 불과했다. 10월 29일에도 총 17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570억원의 수요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부채비율 상승과 지배구조 이슈 등 악재가 많았던 지난해에도 회사채 발행 금액의 3~4배가량의 주문이 몰렸던 것과는 딴판이다. 올해 4월에도 2000억원 발행에 5000억원의 주문이 몰리면서 어렵지 않게 수요를 확보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분기 기준으로 영업손실이 발생한 후 공모채 시장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일시적인 일”이라며 “아직까지는 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 항공산업을 대표하던 두 대형 항공사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로는 외부 변수 외에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경영’이 꼽힌다. 표면적인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공통적으로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우선 LCC가 등장한 후 가격 경쟁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항공여객시장에서 슬슬 밀려났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중반 제주항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곳의 LCC가 항공 업계에 새로 등장했다. LCC들은 이름 그대로 불필요한 서비스를 최대한 줄이고 항공권 가격을 낮췄다. 대형 항공사들은 LCC와 가격 경쟁에 나서기보다는 서비스 품질 차별화를 내세웠다. 덕분에 중장거리 노선에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성장의 과실은 놓치고 말았다. 대한항공의 2018년 연간 여객 탑승률은 82.79%로 2015년부터 줄곧 80%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매각 전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항공산업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이라고 평가한다. 빈 좌석이 남더라도 쌓아 둘 수 없기에 재고 관리가 불가능한 데다, 완벽한 가격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항공 여행에 익숙해진 여행자들은 이미 온라인 사이트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항공권을 찾고 있다. 가뜩이나 가격 인하와 비용 감축 경쟁이 반복되던 항공시장이 더욱 치열한 격전지가 됐다. 맥킨지에 따르면, 현재 물가를 기준으로 1960년에는 승객 1명이 1㎞ 비행할 때(ASK, available seat kilometer)마다 30센트 이상의 요금을 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20센트 밑으로 내려왔고, 2000년대를 지나면서 10센트대로 낮아졌다.

현상 유지만으로는 생존 어려워


가격 경쟁 속에서 항공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출 수 있었던 항공사는 생존하기 쉬웠다. 연비가 좋은 신규 항공기를 도입하거나 수익성이 높은 항로를 집중 공략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낮춰야 도태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역시 신규 항공기에 투자했지만 경쟁사에 비해 뒤쳐졌다. 자회사를 설립해 대응한 LCC시장은 직접 경쟁 대상이 아니라고 치더라도 외국계 대형 항공사들과 비교해도 가격 경쟁력에서 밀렸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2016년까지만 해도 50%를 넘겼던 대한항공의 미주노선과 오세아니아 노선 점유율은 2017년 이후 40%대로 떨어졌다.

항공여객시장에서 경쟁에 뒤쳐진 대형 항공사들은 항공화물시장에 기댈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말부터 부진에 빠졌다. 경기 둔화와 무역 분쟁 등으로 줄어든 항공 물동량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대한항공의 누적 화물 물동량은 전년 동기 대비 9.9% 줄었다. 아시아나항공은 같은 기간 3.6% 감소했다. 항공 화물 시장을 이용하는 품목 가운데 절반 이상은 IT 제품과 화학제품, 기계류 등 부피 대비 마진율이 높은 제품이다. 따라서 국내 전자 업체와 화학 업체 등의 수출 회복세가 나타나야 항공사들의 항공화물 사업도 회복될 전망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 국제선 화물 수송량이 전년 대비 9.5% 감소했는데 대한항공은 10.2%, 아시아나항공은 11.3% 감소하는 등 국내 항공사 감소폭이 더 컸다”며 “물동량 회복을 위해서는 IT제품을 포함한 국내 수출 회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설립 이후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던 LCC 업계에서는 치킨게임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항공여객수요는 여전히 늘고 있지만, 성장세가 줄어들면서 LCC 업계 전체가 성장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실제로 올해 들어 국내 LCC 6개사의 항공기는 지난해 대비 12% 늘었지만 항공 수요는 6%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일본행 여행 수요가 급감하면서 9월 LCC 6개사 합산 국제선 여객 증가율은 4.9% 감소로 돌아섰다. LCC 여객 증감율이 역성장한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치킨게임 돌입한 LCC 업계

일본 노선이 정상화되더라도 LCC 업계가 예전 같은 성장세를 누리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 노선이 타격을 받기 전인 지난 3월부터 LCC 6개사 합산 탑승률은 하락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2017년 이후 8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던 LCC 6개사 합산 탑승률은 올해 9월 78%대로 떨어졌다. 제주항공과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등 LCC 업체들은 2분기 실적에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비상장사라 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는 이스타항공과 에어서울 역시 적자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을 제외하면 국내 항공사들의 주가는 연초 대비 20% 이상 하락했다”며 “2012 년 이후 연평균 13%씩 성장하던 출국 수요 성장 기조가 하락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증권가에서는 일본 노선 부진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3분기에는 국내 LCC 업체들이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수 5000만 명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서 대형 항공사 2곳과 LCC 6곳 등 8개나 되는 항공사는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올해 운항면허를 받은 신규 LCC 사업자 3곳이 2020년 영업 개시를 예고했다. 국내 LCC 업체는 9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인구수가 3억2676만 명이나 되는 미국과 동일한 수준이다. 한국보다 인구수가 두배 이상으로 많은 일본 LCC 업체도 8곳뿐이다. 항공 업계 재편 가능성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뒤숭숭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인수합병 시장에서는 이스타항공이 매각설이 돌았다. 이번 매각설은 이스타항공 측이 매각을 검토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단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다만 항공 업계에서는 비슷한 소문이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분위기다. 과거 미국 항공 업계의 전례에 비춰볼 때 업계 재편 없이는 항공산업 전반의 실적 개선이 어렵다는 시각 때문이다. 미국 항공 업계에서는 1978년 규제 완화 이후 LCC 업체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100개가 넘는 항공사가 난립했다. 그런 탓에 항공사 파산이 줄을 이었고 인수합병으로 시장 재편됐다.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사 가운데 하나인 델타항공은 2008년 노스웨스트항공과 합병 후 탄생했다. 세계 최대 항공사로 꼽히는 유나이티드항공 역시 2010년 콘티넨탈항공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업계 재편 결과 미국내 항공사들은 재조명을 받고 있다. 2001년 항공주 투자는 실수였다고 선언했던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15년이 지난 2016년 항공주 투자를 재개했다. 살아남은 미국 대형 항공사 4곳에 모두 투자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델타항공은 2018년 영업이익 6조3000억원, 유나이티드항공은 2조5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영업이익률은 각각 12.5%, 5.1%였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09호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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