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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어린이집 대신 벌금 내는 기업들] 라이나생명·안진회계법인·아모텍 등 5년째 버티기 

 

설치의무 대상 기업 중 10%가 미이행...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 법안 발의

11월 1일부터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고 버티는 사업장에 이행강제금을 최고 50%까지 가중해 연간 최대 3억원까지 부과한다. 종전에는 1년에 두 차례, 한 번에 1억원 범위 내에서 이행강제금을 산정, 연간 최대 금액은 2억원이었다. 그러나 11월부터는 두 차례까지는 회당 1억원(연 최대 2억원), 3회째부터는 매회 1억5000만원 범위 내(연 최대 3억원)에서 부과한다. 이는 지난 4월 공포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지난 10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다.

이번 개정안은 더 많은 사업장이 어린이집 설치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복지부의 영유아보호법에 따르면 ‘국내 500인 이상, 여성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기 어렵다면 사업장 지역의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체결해 근로자 자녀의 보육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매년 실태조사를 통해 미이행 사업장과 조사불응 사업장에 대한 명단을 공표하고, 이행명령과 함께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오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직장어린이집 의무 설치 대상인 전국 1389개 사업장 실태를 조사한 결과, 137개(9.9%) 사업장이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았고, 민간 어린이집 위탁 등 대체 수단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이행 사업장이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로는 설치장소 확보 곤란, 사업장 특성, 비용 부담 등이었다.

올 상반기 이행강제금 5억900만원 불과

미이행 사업장은 근로자 1000명이 넘는 대규모 사업장 뿐 아니라 일부 지자체, 공공기관도 포함됐다. 이 중 기업들의 비중이 컸다. 설치의무 기업 868개 중 11.9%인 103개가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기업들로는 쿠팡·한미반도체·노랑풍선·미래에셋생명·라이나생명보험·신성통상 등이다. 복지부 백경순 공공보육팀장은 “정부는 모든 미이행 사업장과 조사불응 사업장 명단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 이행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등 후속조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이행 사업장은 전년(167개)보다 줄어들었지만, 직장어린이집을 만들지 않고 몇년째 버티는 기업들도 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라이나생명보험·삼정회계법인·안진회계법인 등 6곳은 2014~2018년까지 5년간 연속 미이행 사업장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미반도체·경동·티웨이항공 등 16개 사업장은 4년 째 버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이 이렇게 버티는 것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는 것보다 이행강제금을 내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복지부·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기업이 직장어린이집을 지으려면 예산이 평균 5억원가량 든다. 노동부의 지원(3억원)을 받아도 기업에선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수억원이다. 운영비도 매년 평균 2억원씩 든다. 직장어린이집 미이행 사업장 한 관계자는 “어린이집을 만들려면 회사 건물을 이용하거나 회사 주변에 장소를 마련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인근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체결하려 해도 어린이집 선정부터 지원금 등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기업이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체결하면 보육에 필요한 비용의 50% 이상을 회사가 어린이집에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예컨대 근로자 자녀 중 1세 영유아 5명, 2세 영유아 10명, 3~5세 영유아 15명을 어린이집에 위탁보육한다고 가정하면 월 430만45000원(40만원×5명(1세)+33만1000원×10명(2세)+22만원×15명(3~5세)×50%)을 위탁 어린이집에 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행강제금을 최대 3억원으로 부과키로 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져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기동민 의원에 따르면 복지부가 지난해 미이행 사업장에 부과한 이행강제금은 12억6400만원, 올 상반기까지는 5억900만원이다. 사업장마다 최소 1270만원, 최대 1억원으로 평균 7400만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됐다. 이처럼 이행강제금은 운영비용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의무이긴 하지만 기업들도 비용이 들어가는 것인 만큼 더 이상의 규제는 쉽지 않다”며 “이번 추가 부과로 이행강제금이 위탁보육 의무이행을 하는 사업장의 평균 부담금액(2억400만원)보다 높아진 만큼 직장어린이집 설치 이행을 독려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 “직원 복리후생을 강제한다” 불만

기업들은 직원의 복리후생을 강제적으로 이행시킨다며 불만도 적지 않다. 직장어린이집 운영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직장 어린이집은 기업들이 선택적으로 하는 복리후생의 일환인데 이런 부분을 강제적으로 설치시키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순간 복리후생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 땐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추진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또는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에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인 영유아보호법의 근로자 기준을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으로 통합해 대상을 확대한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9월 발의했다. 장정숙 의원은 “지난해 보육실태조사는 직장어린이집은 국·공립, 민간어린이집 등 다른 유형과 비교했을 때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면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이러한 직장 보육시설의 혜택을 보다 많은 근로자가 누릴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1510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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