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후흑(厚黑)’의 두 얼굴 

 

리쭝우(李宗吾)는 청나라 말 중국 쓰촨성에서 태어난 문인이다. 손문의 반청(反靑) 혁명조직인 ‘동맹회’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신해혁명 이후 국민정부 때 사천대학 교수 등을 거쳐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다. 평생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오직 [후흑학] 집필에 매달려 외길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그의 저서는 생전에 금서(禁書)로 묶여 빛을 보지 못했다. [후흑학]은 신해혁명이 나던 1911년 쓰촨성 청두(成都)의 공론일보에 실은 글에서 첫선을 보였다. 발표된 직후 세간의 관심을 끌며 예사롭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고, 청두의 국민공보에서 [후흑학(厚黑學, Thick Black Theory)]이라는 책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얼마 가지 않아 검열 때문에 출판이 금지되긴 했지만,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리쭝우가 쓴 책의 서문에서는 후흑학의 발전 양상을 서술하는데, 후흑이 없이 공맹(孔孟)의 인의가 내세워지던 상고시대를 우선 꼽는다. 그 다음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후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때, 그리고 후흑이 널리 퍼진 3기로 분류하고 있다.

작가는 ‘후흑’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면 욕된 이름을 얻게 될 뿐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쓰면 난세에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감출 것을 감추며 냉정할 때에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공공을 위한 ‘후흑’은 나라를 구하는 난세의 통치학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후흑을 이용해 사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비루해진다. 후흑을 이용해 공리를 도모할 경우 후흑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격은 더욱 고매해진다”

두 얼굴을 가진 후흑(厚黑)의 ‘후(厚)’는 얼굴이 두껍다(面厚)는 뜻이고 ‘흑(黑)’은 속이 시커멓다(心黑)는 말이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을 줄여 후흑이라고 흔히 쓴다. 일본말 ‘하라구로(はらぐろ·腹)’도 ‘속이 검다’는 점에선 뜻이 비슷하지만, 그쪽은 주로 정치적 의미로 쓰인다는 점이 다르다.

후흑은 사악하다기보다는 역사적인 영웅이나 간웅(奸雄) 같은 뉘앙스가 있어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관리의 파렴치한 작태, 즉 아첨을 일컫고, 윗사람을 속이며 아랫사람을 업신여기는 태도 등이 후흑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후흑이라는 단어 대신 ‘노회하다’는 더 걸맞은 용어가 있어 굳이 ‘후흑’이란 단어를 일반적으로 쓰지 않으며, 중국에서조차 흔히 쓰이는 말은 아니다. 사실상 [후흑학]이라는 책에서나 나오는 단어다. 리쭝우는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후흑을 갖춰야 한다면서, 놀랍게도 공자와 맹자를 비롯해 삼국지의 영웅들까지 면후심흑(面厚心黑)의 대가라고 꼬집었다.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후흑의 사례로 리쭝우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의 자초지종도 끌어들였다. 춘추시대 월(越)의 왕 구천(句踐)이 오(吳)를 치려다 오나라 부차(夫差)를 보좌하는 오자서와 손무의 활약으로 오나라에 대패한 뒤로 목숨만 건져 간신히 귀국한다. 그 후 가시나무에 누워 자고 곰쓸개를 핥으며 무려 20년 동안 패전의 굴욕을 되새김으로서 마침내 승리자가 되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된다. 월(越)의 국력은 더욱 막강해져 ‘구천은 패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초나라 장왕(楚王)은 즉위한 지 3년 동안 빈둥빈둥하다가 자신을 날지 않는 대붕에 비유한 신하들의 간언을 듣고 그 대붕이 한번 날면 천리를 갈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후 정신을 차리자 심기일전해서 초나라를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다. 덕분에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된다.

청(淸)말 리쭝우가 쓴 후흑학은 오늘날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적용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풀어쓰고 있다. 인간 심리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인 ‘표리부동’을 처세술과 연관지어 학문화시킴과 동시에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로 후흑학이기도 하다.

이 책은 뻔뻔함과 음흉함이 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되 구국, 조직경영 등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이 대외전략으로 삼고 있는 도광양회(韜光養晦)가 대표적이 후흑의 사례며, 삼국지 속의 조조 역시 이 후흑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달리 유비와 제갈량에 대해서는 아주 혹평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부하에게 의중을 보이지 말고 부하가 알아서 하도록 하라. 부하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부하를 널리 포용하라”

후흑학은 또한 리더십의 표상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의도를 부하들에게 투영해 능률적으로 일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나쳐 자칫 지휘관의 입맛대로 움직이게 되면 건전한 조직관리에 역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하들이 알아서 판단해 일을 추진하도록 하면서, 가벼운 코멘트 정도를 던지는 것이 조직의 건전한 움직임에 활력을 준다는 것이다.

후흑학의 압권은 마지막 단계인 불후불흑(不厚不黑)의 경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얼굴이 두껍지도 않고 마음이 검게 보이지도 않는 극단의 등급이다. 무협지로 비유하면 절륜한 내공을 지닌 절대 고수가 파리 한마리 못 잡을 것 같은 백면서생의 얼굴을 하는 반전의 단계다.

나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 정치권엔 후흑의 달인이 유독 많다. 특히 불후불흑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가면이 벗겨지고 속이 다 드러날 때까지 일반인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역설적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아베 일본 총리가 성벽처럼 두꺼운 얼굴을 하고서도 국내에서 지지를 받는 까닭은 바로 ‘국익’을 먼저 챙길 줄 아는 후흑의 정치 덕분이 아닐까. 최악의 정치인은 국민을 잘살게 하는 데는 무능하면서 사익을 위해 끝없이 후흑을 발휘하는 부류다. 그중에는 불후불흑의 뽀얀 얼굴로 세상을 끝없이 속이려 드는 사람도 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후흑인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후흑’이 떠오른다. 진영논리에 휩쓸려 극단적 발언이 난무하고 ‘얼굴에 철판을 깐’ 철면피 정치인들이 즐비하다. 후흑은 멀리 보는 것이다. 역사도 변덕을 부리고 대중도 변덕을 부린다. 리쭝우는 ‘강한 흑(黑)’으로 모든 사람의 공리를 도모하라 했다. ‘후흑’을 선하게 사용해 위민선정(爲民善政)하는 정치인들이 보다 많이 나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1511호 (2019.12.0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