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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세 도입 현실화될까] “사회 환원 필요” VS “산업·기술 발전 저해” 

 

국내외에서 찬반 양론 팽팽… 정부는 “옵션 가운데 하나로 검토”

▎사진:© gettyimagesbank
정보통신기술(ICT)의 눈부신 발전은 때론 논란을 낳는다. 새로운 개념의 세금 도입 문제가 그런 예다. 특히 이른바 ‘로봇세(robot tax)’가 대표적이다. 로봇세는 제조업의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생산용 로봇, 즉 산업용 로봇을 엄연한 근로자로 보고, 이들이 노동으로 생산해내는 경제적 가치에 매기는 세금이다. 세계 최고 갑부 중 하나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지난 2017년 외신 인터뷰에서 “인간과 같은 일을 하는 로봇의 노동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그는 “로봇세를 부과해 고도의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재교육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유럽의회는 2016년 로봇세 도입을 위한 초안을 만드는 데 나서기도 했다.

물론 로봇세가 도입된다고 로봇이 인간처럼 때가 되면 알아서 척척 돈을 내진 않는다. 로봇을 소유한 기업들이 내는 세금이다. 전 세계 산업 현장은 지금 로봇세 도입 논의에 요동칠 만큼 수많은 로봇을 보유해 다루고 있다. 한국도 그 선봉장 중 하나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을 기준으로 가동 중인 산업용 로봇이 30만대에 달했다. 10년 전인 2008년 7만7000대의 4배로 일본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였다. 직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774대가 배치돼 로봇 밀집도(Robot density)로는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제조 선진국 독일(338대)이나 일본(327대)을 앞질렀다. 경영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25년까지 한국에서 제조업 노동력의 40%가량이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이 로봇세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2025년까지 국내 제조 일자리 40% 로봇이 대체


산업용 로봇이라고 하면 자동차 등의 전통 제조업에 속한 공장 기계들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이보다 종류가 훨씬 다양하다. 예컨대 미국 아마존이나 중국 알리바바 같은 최신 ICT 기반의 유통 기업들은 물류거점마다 많게는 수백에서 수천대 로봇을 고용 중이다. 밤낮없이 신속하게 물류를 처리하는 데 로봇이 효율적인 데다 야근 수당 등으로 나가는 인건비 부담이 만만찮아서다. 효율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사람 수를 늘리기보다 로봇 수를 늘리는 게 낫다고 이들 기업은 판단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AI로 소비자 맞춤형 투자 상품을 제공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가, 의료 현장에선 의사의 팔이 되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수술을 돕는 의료용 로봇이 보편화됐다.

로봇세 도입 찬성론자들은 이런 다양한 로봇들이 기업에 막대한 돈을 벌어다주면서도 납세 의무에선 자유로워, 기업이 사람을 고용했을 때 각국 정부가 걷는 소득세 등 세금에 누수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반면 로봇 기술이 빠른 속도로 향상될수록 인간의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한 보고서에서 올 연말까지 AI와 로봇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 510만여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들로부터 로봇세를 걷어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이로 인해 발생할 각종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찬성론자들의 생각이다. 로봇세 도입을 검토했던 유럽의회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이를 보류했지만 2017년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이라며 로봇에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찬성론자들은 이를 두고 “로봇의 인격권을 인정해 앞으로 세금을 매길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반대론자들은 로봇세 도입이 산업 발전과 기술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국제로봇연맹은 “로봇 산업뿐 아니라 자동화가 진행 중인 많은 산업 분야에서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성장이 위축될 것”이라며 “로봇세를 도입한 국가도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로봇세 논란에서 줄곧 반대 입장을 나타냈던 제임스 베슨 미국 보스턴대 교수 역시 “로봇세를 도입하면 기업들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고용이 위축돼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충분한 합의와 법제도 정비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의회가 로봇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아직 세계 각국에서 로봇세 도입을 위한 뚜렷한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나라마다 법이 달라 로봇세 도입에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기계장비에 세금을 적용하는지, AI를 탑재한 로봇에만 적용할 것인지, 이 경우 AI 수준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모든 기준이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미국과 영국 등은 법적으로 상각자산인 기계장비를 재산세 부과 대상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한국은 기계장비를 취득세 부과 대상으로 볼 뿐 재산세 부과 대상에서는 제외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로봇세에 대해선 국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강철승 한국수산정책포럼 대표(전 중앙대 교수)는 “토지나 주택, 자동차처럼 로봇도 인간이 소유한 재산으로 보고 로봇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부가가치세법에선 무인 자판기(자동판매기)에도 사업자등록번호를 부여해 세금을 매긴다”며 “로봇도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로봇세 부담에 기업들이 로봇을 못 쓰게 되면 (다른 식의) 생산성 향상에 성공하지 못하는 한 산업 경쟁력이 선진국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로봇세가 해결책이라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유럽의회 로봇에 법적 지위 부여했지만…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정부는 로봇세 도입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17일 정부는 제53회 국무회의에서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디지털 경쟁력 세계 3위 달성, AI를 통한 지능화 경제가치 최대 455조원어치 창출 등을 목표로 세웠다.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경제에서 AI 활용이 늘어남에 따라 활력이 제고되면 기계세나 로봇세, 디지털세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나 차차 고려해나갈 사안”이라고 밝혔다. 최 장관은 “정부에서 (현재) 검토하고 있진 않다”며 “4차 산업혁명이 급속하게 진행되면 다양한 옵션으로 검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선을 그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517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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