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ZOOM] 최초 공개 |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울주 삼동면 묘역 

 

거상(巨商)의 마지막 안식처는 낮은 봉분, 평범한 돌비석 하나로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 흔한 갓비석이나 돌장승 같은 석물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월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묻힌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묘역 풍경이다.


생전 그의 고향 사랑은 남달랐다. 1922년 울주군 둔기리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재계 서열 5위의 대기업 총수에 오르고도 고향을 자주 찾았다. 고향에 대한 애정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그는 1971년부터는 매년 5월마다 둔기리에서 마을 주민을 초청해 잔치를 열었다. 댐 건설로 수몰민이 된 주민들은 마을잔치 덕에 매년 고향 사람을 만나 옛정을 나눌 수 있었다.

이제 그가 고향 사람들로부터 위안을 받을 차례다. 신 명예회장 묘역 조성은 롯데그룹 측의 의뢰를 받은 삼동면 지역청년회에서 맡았다. “간소하게 보내 달라”는 생전 신 명예회장의 부탁대로 단촐하게 꾸몄다.

그렇다고 정성마저 덜한 것은 아니다. 봉분에 비석뿐이라 오히려 심사숙고 했다. 특히 묘에 세울 적합한 묘비와 디자인에 고민이 깊었다. 언양 삼동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김범관 울산대 교수(건축학부)에게 자문을 구했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 정회원의 혜안을 빌린 것이다. 여기에 영국 런던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이지현씨가 디자인에 참여했다.

이들의 고민은 평소 신 명예회장의 검소함과 정직함을 대변할 수 있는 비석의 형태를 고르는 것이었다. 돌에도 여러 가지 형태와 얼굴이 있고, 자연석은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묘의 전체적인 형태와 배치도 같이 고려하여야 했다. 결국 그의 평소 성품을 나타내듯 수평적으로 안정적이며, 부드럽지만 강직한 느낌의 석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 한자, 한자 자간을 맞추며 말씀을 새겼다.

- 글=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사진=신승찬

1520호 (2020.02.1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