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춘향전, 벼룩, 그리고 집값 이야기 

 

#1. 셸리, 바이런, 워즈워드 등 유명한 낭만파 시인들이 등장하기 전 17세기 영국에는 소위 ‘형이상학파’ 시인들이 활약했다. 기발한 비유나 관념적 유희를 즐겨 쓴 이들에는 존 단, 조지 허버트, 앤드류 마블 등이 있다. 이들 중 지금도 가장 유명한 시인은 존 단일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20세기 들어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제목으로 차용했다. 물론 그 소설의 서문에도 이 시가 실려있다. 그의 다른 시도 유명한 것이 상당수 있는데 주로 남녀 간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필자도 영문학도 시절 그의 시를 즐겨 암송 했고 연애에도 활용(?)했다. 그의 시 중 하나가 ‘벼룩(Flea)’이라는 특이한 제목을 가진 것이다. 이 시 내용을 일부 소개해보자.

“이 벼룩을 보세요. 그 안을 보세요. …
이것은 내 피를 빨고 그대 피를 빨고 있소.
그리고 이 벼룩 안에 두 피가 섞였소. …
오, 기다리시오, 한 벼룩안에 세 생명이 살게 되었소. …
이 벼룩은 그대와 나요, 결혼 침대요, 결혼의 성전이요. …
그대는 습관적으로 나를 죽이려 하겠지만 세 생명을 죽이는
죄에다 자살과 신성모독이 더해지지 않도록 하시오.”


남자와 여자를 피를 빤 벼룩 안에 세 생명(남, 녀, 벼룩)이 살게 되었으며 벼룩은 결혼의 성전이 되었으니, 여자가 벼룩을 죽이면 세 생명을 살해하는 죄에다 성전을 허무는 신성모독의 죄가 추가된다는 내용이다.

#2: ‘춘향전’은 작자와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가 알려지있지 않은 고전 소설이다. 원래 판소리로 불려 전승되다가 소설로 정착됐으리라 추정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이본(異本)이 12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그 내용이 권선징악과 함께 여성의 정절을 예찬하는 대중적인 것이서 현대에 들어서도 수많은 창극, 현대소설, 연극, 영화로 만들어졌다. 10여 년 전에는 원작의 내용을 비튼 ‘방자전’이라는 영화까지 나왔다. 이 춘향전에는 유명한 한시(漢詩)가 나온다.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한 후 암행어사가 되어, 초라한 행색으로 변장한 채 변사또가 베푸는 연회에 참석하였다가 시 한수 지어보라는 요청에 응한 것이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금잔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일세) 촉루낙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성도 높다네).” 이 시를 읊자마자 겁에 질린 벼슬아치들은 도망갈 채비를 하고, 이몽룡의 입에서 곧바로 ‘암행어사 출또’의 명이 내려진다.

#3: 여러 매체에서 다룬 탓인지 이제는 많이 알려진 공자(孔子)의 일화다. 원전은 ‘예기(禮記)’이다 소설가 최인호는 작고하기 1년여 전인 2012년 ‘맹자’와 함께 ‘공자’라는 그의 마지막 소설 작품을 출간했다. 그의 작품 속 표현을 빌려보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공자의 말은 공자가 노나라에서 제나라로 처음 출국을 단행하던 도중 나온 제일성이었다. - 공자가 제나라로 가던 중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이 모두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여인만 홀로 남아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지요. 사연을 들은 공자는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 사는 것이 어떠냐고 말합니다. 여인은 여기에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 가면 무거운 세금으로 그나마 살 수도 없다고 하지요. 공자는 탄식합니다.” 기원전 6세기경 당시 노나라에서는 권력 실세인 계손자(季孫子)란 자가 치부를 위해 세금 징수를 명목으로 재물을 갈취하여 먹을 것이 없어진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고 있다. “아아, 이 신춘추전국(新春秋戰國)의 어지러운 난세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으련만. 그런 바람이야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와 같은 것. 어차피 봄날은 간다.”

얼마 전이다. 새해 들어 여당 의원 50여명이 선거법, 공수처법에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까지 처리되자 한식당에 모여 ‘떠들썩한’ 자축연을 열었다고 한다. 이에 제1 야당의 원내 대표가 위에 언급된 춘향전의 한시를 인용하며 비난했다. “저들이 변사또처럼 잔치를 벌이며 웃음소리를 높이고 있다”면서 “춘향전에 나오는 ‘가성고처원성고’를 기억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한 신문은 “난장판 정치와 경제난으로 국민의 원성이 치솟는 와중에 요란한 술자리를 가진 집권여당의 교만을 꼬집은 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 한시의 내용 중에 요즘 필자의 눈길을 더 붙잡는 것은 ‘가성고처원성고’가 아니라 ‘옥반가효만성고’의 구절이다. 현 정부가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종부세 및 재산세를 무서울 정도로 올려 징수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옛 직장 후배 중 대출을 받아 세금을 내었다는 사람이 꽤 보인다. 모두 10년 이상 그 집에 거주하며 집값 인상에 기여한 바가 없으나 세금만 두들겨 맞는다고 볼멘 소리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고가 주택에만 부과되기 때문에 ‘조세 정의’에도 맞으며 집값 안정효과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조세정의는 차치하고 필자가 10여년 전 한 민간경제연구소에 있을 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세금으로 집값을 잡은 예가 없다. 더군다나 한 해에 2, 3배가 한꺼번에 오르는 ‘호랑이 보다 무서운’ 재산세 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택 재산세율이 높다는 미국의 경우도 거의 모든 주(州)가 2~5% 정도로 세금 증가 상한선을 두고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20, 30년 동안 자기 집에 산 사람의 경우 집 매입 당시와 거의 같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집값 잡으려다 이렇게 올린 세금으로 갈수록 위축돼온 소비가 더 얼어 붙어 경기만 나빠지고, 이에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로 대응하면 집값은 다시 오르는 악순환 고리만 더 심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적인 부동산 대책을 예고했다. 청와대 정책실장도 “필요하면 앞으로도 메뉴판 위에 올라와 있는 모든 정책 수단들을 풀 가동할 생각”이라며 “(더 센 정책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제1 야당의 대표는 현 정부의 정책이 “집값이 아닌 사람잡는 정책”이며 “18번의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그때마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전세도 오르고 집값도 떨어지지 않는 부작용을 계속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수요자들이 다 피해를 보고 있는데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상황은 실수요자만이 아니라 나라 경제 전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청와대 인사의 말처럼 집값(벼룩)을 잡으려 세금을 계속 올리고 규제를 극한까지 강화하면 결국 집값은 잡히리라는 것은 필자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초가삼간(주택시장)을 다 태우거나,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가 붕괴의 위기를 맞는 상황일 것이다. 존 단의 시처럼 초가삼간보다 훨씬 큰 신전이 무너질 양상인 것이다. 경자년 새해에 현재의 정책 당국자들이 이런 상황을 제대로 수습할 것 바라는 것은 소설가 최인호의 말처럼 ‘알뜰한 헛맹세’에 지나질 않을 것인가. 정말로 어차피 봄날은 간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1520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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