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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 팡파르 울리자 ‘사냥’ 나선 작전세력] 대표 교체, 제약·바이오·AI 진출은 작전의 ‘신호탄’ 

 

시총·거래량 적고 주가정체 회사 M&A 타깃... 부정거래 막히자 미래사업·스토리·마케팅으로 투자자 현혹

▎사진:© gettyimagesbank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이 상장사 ‘동양네트웍스’, ’에스모머티리얼즈’에 대한 조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문제가 되는 라임자산운용에서 투자를 받은 회사로, 서로 짜고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두 회사뿐만 아니라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다른 회사들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국내 증시 상장사 중에서 다수의 주가 조작 의심 사례를 감지하고 조사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 검찰의 수사 움직임처럼 실제 국내 증권시장에서 ‘작전세력’이 개입했다고 의심할만한 기업이 넘치고 있다. 주가가 하루에 10~20% 등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기간에 3~4배 상승했다가 고꾸라지는 종목이 수십 개에 달한다. 정부가 중소·중견기업과 신기술 스타트업 부양에 나선 가운데 시류에 편승해 시세차익을 노린 세력의 자금이 밀물처럼 몰렸다가 썰물처럼 빠지고 있는 것이다. 작전세력들은 기업 최고경영자(CEO), 일부 언론과 결탁해 기업의 미공개 정보 등을 활용하면서 주가를 띄운 뒤 뒤늦게 뛰어든 일반 투자자에게 보유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올리고 있다.

적자에도 신사업 기대에 주가 급등


최근 추세는 상장사의 ‘사업 전환’을 주가 부양의 모멘텀으로 삼는 방식이다. 업력이 오래됐지만, 기존 사업 부진으로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기업이 제약·바이오·인공지능(AI)·소프트웨어·소재 등 신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재료 삼아 시세 조정에 나선다. 증권가에서는 이런 업종을 흔히 테마주라고 부르지만, 실제론 뒤에서 작전세력이 주가를 움직이고 있다. 통정매매 등 수급을 통한 시세조종이 사실상 봉쇄되자 신산업 위주의 테마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시세 차익을 노리고 있다. 일부 회사는 CEO 등 경영진까지 가담해 시세 조종에 나서고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해 가장 화제가 됐던 기업은 H사와 S사다. H사는 2018년 10월부터 주가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자동차용 프레스 금형설계 제작 회사인 H사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내리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재무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가운데 2018년 12월 대표이사를 교체하고, 바이오·소프트웨어·플라스틱 등의 사업 목적을 추가했다. 이를 전후해 주가가 급등했고, 개인투자자가 몰리며 지난해 5월 말에는 7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말에는 대주주가 I사로 바뀌며 다시 폭등했다.

경영진 교체와 신규 사업 진출은 주가를 부양하기 좋은 재료이자 작전세력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이다. 한창 잘나가던 주가는 개미투자자들이 한창 붙기 시작하자 매물이 쏟아지며 폭락해 현재 2000원대까지 떨어진 바 있다. H사의 기관투자자 비중은 0%,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0.5~1% 수준이다. 경영진과 개인투자자 비중이 99%가 넘는다. 호재만 보고 좇아 매입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용 부품 제조회사인 ‘S사’도 뜨거운 종목으로 꼽혔다. 지난해 4월 5000원대에 머물던 주가가 6월엔 국내 증시의 부진 속에도 3만6650원으로 치솟았다. 이후 급락하며 6070원(2월 11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S사는 지난해 최대주주 변경과 함께 사업목적에 K뷰티·AI·엔터테인먼트·미디어커머스·영화·방송채널사용·캐릭터 상품 제조 등을 추가했다. 더불어 ‘론스탁투자 S사 월요일부터 점상 랠리 가능성 높음 3만원 밑은 세일구간임’ 등 투자를 유도하는 문자가 대량 유통됐다. S사가 방탄소년단(BTS) 상품의 중국 총판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돌면서 주가 상승 기대감이 커졌다.

이런 문자와 관련해 거래소는 조회공시 요구를 했고, S사는 “한국거래소 풍문 관여 종목 지정 통보와 관련해 론스탁투자, HK투자자문 등의 이름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강력 매수 추천’ 내용의 매수 권유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은 당사와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6~7월 증권가에서는 S사가 효성의 자회사 갤럭시 아에스엠을 인수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으며, 이 재료로 주가의 추가 부양 기대감도 커졌다. 갤럭시아에스엠은 스포츠 중계권 판매 및 마케팅 컨설팅 회사로 조현준 효성 회장과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주요 주주로 참여한 회사다. 이에 대해 2000년대 증권가에서 작전세력으로 활동했던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최근에는 과거처럼 인위적으로 주가를 밀어 올리는 행위는 많지 않다”면서도 “(S사는) 증권가에 새로 유입된 자금이 S사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사와 갤럭시아에스엠 간에 소문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그 뒤로도 여러 소문과 투자를 독려하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그치지 않았고, S사 주가는 다소간 등락을 반복했다. 현재 주가는 고점 대비 6분의 1토막 난 상태로 횡보 중이다. 작전세력이 투자금을 회수해 주가 상승 동력을 잃은 것이다.

소방차 등 특장차를 생산하는 N사의 주가도 흥미롭다. N사는 신규 사업으로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 연구, 생산에 나서며 지난해 5~6월부터 주가를 부양했다. 여기에 미국 거물급 투자자 J씨를 사내이사로 영입하면서 7000원대 주가가 1만원대까지 뛰었다. N사 관계자는 “그래핀에 대한 비전에 J씨도 공감을 표해 어렵게 영입했다.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N사는 J씨에게 50만 주에 달하는 스톡옵션을 부여했다.

미국계 투자자 움직이자 관련 테마주도 들썩


▎코스닥 상장기업 주식을 한 주씩 거래함으로써 호가창 상에서 주식 거래가 고가에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사진 오른쪽) 특정 종목의 시세 상승 가능성을 언급하는 문자 알림.
그러나 J씨는 지난해 초 국내 리조트 개발 회사인 A사의 사외이사로 선임되며 주가 부양에 일조한 바 있다. 2018년 1만원 언저리에 있던 A사 주가는 J씨 영입에 3만원 가까이 폭등했고, 최근 1만원대 중반으로 내려왔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J씨가 시세 차익을 노리고 국내 주식 시장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이 나온다.

또 다른 A사의 주가 흐름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말 바이오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사명을 변경했다. 금속절삭기계 등을 생산하는 회사였으나 사명변경과 신규 사업 추진, 외부 전문가 영입 등으로 지난해 말 주가가 들썩였다.

최근 바이오 등 신기술 테마에 얽힌 기업의 주가가 널 뛰는 것은 정부의 코스닥 부양 및 신산업 육성과 관련이 깊다. ‘혁신 성장’을 경제 정책 기조로 내세운 정부는 창업-민간투자-스케일업-상장 등 엑시트(투자회수)로 이어지는 신기술 기업의 선순환 체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조3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한편, 12조원 규모의 스케일업 펀드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해 초부터 코스닥 육성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이에 기존 기업들도 제약·바이오·정보통신기술(ICT)·사물인터넷(IoT)·AI 등을 신규 사업에 추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산업의 가치사슬 변화에 대응하자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투자 유치가 주된 목적이다. 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지난해는 사업 목적에 바이오를 추가해야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정부가 움직이자 정책자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미들도 코스닥에 대거 몰렸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증시 부진에도 개인투자자는 지난해부터 올해 2월 11일까지 코스닥에서 8조3057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기간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4조8752억원, 6987억원 순매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인은 2018년에도 코스닥서만 3조8293억원을 순매수했다. 개인은 정부 정책으로 제2의 셀트리온이나 유한양행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했지만, 기관·외국인은 다르게 판단한 것이다. 한 작전세력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등 신기술은 무한한 꿈과 제로(0) 사이의 어딘가에서 주가가 결정된다”며 “이런 기대감을 키워주는 것이 최근 주가 부양의 주된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최근 트렌드는 게임 회사다. 중국 게임회사들의 부상으로 그간 외면받던 모바일 게임 회사들을 상대로 인위적 주가 부양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가장 주가 상승 폭이 두드러진 회사는 S사다. 1700원 하던 주가가 지난해 10월 중순 급등하기 시작하더니 12월 초 1만3100원까지 치솟았다. 한 달 반 만에 8배 가량 뛴 것이다. S사는 2018년 매출 257억원, 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등 실적 부진은 여전했지만, 주가만은 부풀어 올랐다.

작전세력은 최근 암호화폐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강남에 투자 부티크를 열고 개인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아 특정 암호화폐 가격을 밀어 올려 시세차익을 노리는 식이다. 2018년 ‘돈스코이호’ 사건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린 것처럼 호재를 시장에 흘려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이런 일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2018년 하반기 T 암호화폐가 암호화폐공개(ICO)를 했다. T코인은 자산 상속 플랫폼을 지향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신 젊은 CEO가 주도해 화제를 모았다. 이 코인에는 2~3개 작전세력이 붙어 조직적으로 ‘시세조종’할 거란 얘기가 돌았다. 2017년 말 2700억원대의 사기를 일으킨 마이닝맥스 핵심 관계자가 숨겨놓은 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내용이다. 일부 투자자에게는 암호화폐를 통해 시세 1차 부양 후 전량 매도해 코스닥 상장사 E사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후 2차 시세조종에 나설 것이란 구체적인 안까지 전해졌다.

암호화폐 투자유치 성행 여전, 투자금 착복 의혹도


▎2014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여의도 공매도 세력들에 의해 경영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바 있다.
T코인에서 얻은 이익을 코스닥에 상장된 E사 주가 부양에 활용할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E사는 지난해 기술특례 상장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한 유전체 분석 및 서비스 회사다. 지난해 6월 4000원대이던 E사 주가는 8000원대 후반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T코인의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상장 실패와 창업자와 작전세력 간 갈등, 투자금 착복 의혹 등으로 작전이 중도 무산됐다. 최근 작전세력들은 ICO를 노리기보다 일종의 펀드를 결성해 이미 상장된 코인을 돌아가며 펌핑해 시세차익을 노리고 있다.

신기술 등으로 기업의 이익 기대감을 높여 시세를 조종하는 행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덕수상고 출신 증권맨들이 주축이 돼 부광약품을 두고 작전을 벌여 막대한 시세 차익을 올린 일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익금 분배 문제로 작전 멤버 중 한 명이 남한산성에서 칼에 찔려 사망하기도 했다. 로케트전기는 매연 저감장치, 영풍광업은 말리 금광 사건, 삼진제약은 인슐린 패치 개발 등의 이슈로 작전주에 활용되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의 가장 큰 차이라면 과거에는 이슈와 수급을 통해 작전을 벌였고, 최근에는 이슈 메이킹과 사업 전략에 승부를 건다는 점이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개발되기 전인 1990~2000년대 초에는 여러 재료를 대중에게 노출하기 어려웠고, 주문도 증권사 창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이 때문에 호재를 증권가에 뿌린 뒤 실제로 주식을 대량 매입함으로써 개인 투자자들의 추격 매수를 유도하는 방식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HTS가 보편화하기 시작하며 작전이 더욱 용이해졌다. 인터넷 언론사를 통해 뉴스를 공급할 수 있게 돼 작전세력으로서는 재료 노출이 쉬워진 것이다. 마침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2000년대 중반 강세장 등 시장 수급도 좋아 작전세력이 활개를 쳤다. 당시 대신증권 등 대형 증권사의 통정매매 등 불법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통정매매란 같은 시기, 같은 가격으로 매매할 것을 사전에 통정한 후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투자자들의 오해를 유발하거나 시세조종 행위로 악용될 수 있어 증권거래법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거래·정보 투명해지자 기업 M&A, 직접경영으로 전환


이에 정부와 거래소는 통정매매를 비롯해 허수주문(유동성 공급)·가장매매(자전거래) 등 시세조종에 쓰일 수 있는 거래방식을 통제하고 감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최근 거래소는 외국계 증권사 메릴린치가 초단타 매매를 위탁받아 거래하는 과정에서 허수매매한 사례를 적발하는 등 위법성 거래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작전 종목의 신규 사업과 계약 상황, 이사진 구성 등을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돼 사실상 종전 방식대로 작전을 펼치기엔 어려워졌다.

과거 시세조종 세력에 몸담았던 관계자는 “요즘에는 허수 주문이 있으면 증권사에서 바로 연락이 오고 거래가 막히며, 특정인이 5% 이상 매매하면 감독당국의 감시망에 바로 걸리게 된다”며 “과거 뉴스 타이틀만 보고 주식을 매매하던 개인투자자들도 요즘엔 내용까지 들여다보기 때문에 작전을 펼치기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맞춰 작전도 진화하고 있다. 특정 기업이 유명인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거나, 실제 확인이 어려운 해외사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꾸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식이다. 실제 사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지난 2~3년 전부터 작전세력이 상장사를 통째로 인수해 이사회를 장악한 뒤 제약·바이오 등 신규 사업 추가, 해외 사업 확장 등에 나서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작전팀 구성이 역할별로 투자자·설계자·트레이더로 나뉘었던 것에서, 이제는 투자자와 설계자를 중심으로 증권브로커·대주주 등이 함께 움직이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기업 인수는 자체 자금을 사용하지만 부양은 사채 시장에서 단기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주가를 부양한 뒤 얻은 시세차익으로 부채를 상환한다. 다른 방식들이 막히면서 최근에 다시 작전에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다년간 적자가 누적된 코스닥 상장사를 중심으로 인수·합병(M&A)이 활발했던 이유가 이런 트렌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는 코스닥 상장사 ‘화진’을 자기 자본 없이 인수한 뒤 회사 자금 414억원을 다른 업체에 투자하거나 대여하는 방식 등으로 빼돌린 혐의(배임) 등으로 기업사냥꾼 양 모(51)·한 모(50)씨를 구속기소 했다. 이들은 허위 보도자료를 통해 주가를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사기적 부정거래)도 받고 있다. 화진은 대기업 자동차 부품 납품사로 연 770억원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이지만, 이 일로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2018년 11월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상장폐지가 의결됐지만, 회사 측 이의신청으로 개선 기간이 부여됐다.

한 증권 브로커는 “전통적 사업은 주가에 큰 의미 없다. 신규 사업으로 주가를 우선 3~4층까지 올린 뒤 이를 다시 추가로 상승시킬 추가 테마와 스토리를 꼼꼼하게 준비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세계 최초라는 말을 내걸면 주가는 무조건 20배가 오른다는 얘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작전 초반 기업 주식의 거래량이 없을 때 대량 매수한 뒤, 기사·문자 등을 통해 주가를 1차 부양한 뒤 저렴할 때 산 주식을 매도해 시세차익을 거둔다. 이후 2~3차 호재 발표 직전에 주식을 다시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띄운다. 최근 코스닥 제약·바이오 업종 시세가 출렁이는 점도 이런 투자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코스닥 우량주 코스피로 대거 이동, 성장사다리 실종

통정매매 등이 막혀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하기 어렵지만, 높은 가격에 주식을 한 주씩 자동 매수하는 방식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심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HTS 호가창에 주식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눈속임이다. 이 밖에도 작전세력은 외국인 투자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홍콩·싱가포르에서 사모펀드를 조성해 도이츠·크레딧스위스·메릴린치증권 등 국내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해 매매하기도 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작전에 편승하고 싶어하는 심리도 주가 조작을 가능하게 한다. 운이 좋으면 높은 단기 차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작전주만 골라 투자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정모씨(41)는 “주식 시장 수익률이 낮고 기관·외국인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투자 메리트가 없다”며 “이에 비해 코스닥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들은 기관이 못 사니 사실상 개인 간 싸움이다. 거인의 어깨에만 올라타기만 하면 함께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히 최근에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돈을 번 지방 부호와 건설업자 자금이 여의도 증권가로 대거 유입돼 이런 작전세력의 주가 부양에 지원 사격을 하고 있다. 지난 1~2년간 있었던 전국적 부동산 경기 활황에 돈을 번 사람들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우량 중소·중견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조성된 코스닥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중요한 성장사다리인 코스닥이 작전세력 등에 의해 오염되면서 어느 정도 성장한 우량기업들은 속속 유가증권시장(코스피) 등으로 이탈하고 있다. 코스닥 대장주였던 셀트리온은 2018년 2월 코스피로 본거지를 옮겼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013년 4월 기자회견을 자청해 “공매도 세력 때문에 경영을 못 하겠다”며 셀트리온 주식을 전량 매각하겠다는 폭탄 발언을 한 바 있다. 공매도 세력에 그만큼 시달린 셈이다. 카카오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옮겼고, 10년 전 코스닥 대장주였던 네이버도 코스피로 이전했다. 신세계푸드·무학·에이블씨엔씨·하나투어·한국토지신탁·동서 등 우량기업들도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다.

금융감독당국, 검찰 등 수사 당국도 코스닥에서 벌어지는 사기적 부정행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작전세력이 기업 안에서 저지르는 배임·횡령 등 부정행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 주가 부양을 위한 이들의 여러 경영 활동이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서다.

이 때문에 검찰이 기소해도 1·2심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는다. 발생한 경제적 이익은 추징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검찰 출신 일부 전관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변호하고 있어 수사 초기부터 막히거나 수사 의지를 꺾는 일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30년간 기업을 200번 거래했다는 한 코스닥 상장사 이사는 수사당국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담장 위를 걷고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떨어지지만 않으면 그만”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물론 작전세력 관계자들도 할 말은 있다. 신규 사업 진출과 경영진 교체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며, 일반적 수준의 주가 관리는 대기업들도 기관을 통해 많이 한다는 것이다. SK 등 적지 않은 대기업이 계열사 CEO의 KPI에 주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대기업들은 계열 증권사를 통해 주가를 부양하며 이는 법적으로도 제재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테마주’ 투자문화 버리고 기업 본질 따져야

그러나 인위적인 주가 조작은 코스닥 및 자본시장 전반의 건전성을 해친다.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코스닥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려면 개인투자자들이 작전 종목을 잘 감지하고 투자를 지양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투자자들이 단타 매매보다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중장기 투자를 펼쳐야 부정 거래 행위도 줄어들 것이란 설명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작전은 회색지대에서 펼쳐지지만 정상적 경영 활동인지, 주가 부양 목적인지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를 개선하고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이를 테마주처럼 인식하는 투자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중장기 투자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전 세력은 대개 기관투자자가 접근하지 않는 시가총액 1000억원 이하 기업에 접근한다. 대주주 지분이 20% 내외로 낮고, 주식 유통물량이 적으며, 최소 2~3년간 주가가 정체된 회사가 좋은 사냥감이다.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이런 기업들의 주가 급등 등 이상이 감지되면 단계별로 투자주의→투자경고→투자위험 종목으로 지정해 투자자들에게 고지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투자경고·위험 등 종목으로 지정되고도 주가 상승이 계속될 경우 하루간 거래가 정지된다”며 “과열 종목에 대해 불공정거래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22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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