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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헬스케어 한국도 성장할까] IT·의료 융합, 해외 날고 국내 제자리 

 

글로벌 IT공룡들 AI 의사 개발 중… 한국은 얽힌 이해관계도 못풀어

▎2019 부산 헬스케어 위크 행사장을 찾은 한 관람객이 LED광선·산소·백색소음 등을 공급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매일 아침 잠을 깰 때마다 카메라가 전신을 훑으며 생체정보를 읽는다. 인공지능이 건강 상태는 물론 감정까지 분석한다. 그에 맞춰 필요한 영양성분이 담긴 음식과 운동 종류를 안내한다. 인공지능의 감시망은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일과 중 지켜야 할 행동 규칙과 심리 분석 결과를 수시로 점검해 알려준다.

영화 ‘아일랜드’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질병 치료에 쓸 장기를 제공할 목적으로 건강한 복제인간을 사육한다는 내용이다. 복제인간까지는 아니지만 이 같은 첨단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가 개인의 일상을 파고들 날이 머지않았다.

고령인구 증가 건강관심 증대로 성장세


▎2019 부산 헬스케어 위크 행사장에서 노년 관람객들이 안구건조증 치료기를 체험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헬스케어 산업 생태계도 날로 성장하고 있다. 첨단 ICT와 만나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다양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IT와 융합한 헬스케어 산업은 기존의 사후 환자치료 중심에서 사전 관리·예방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해외 국가와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 진료를 다시 논의하는 등 앞으로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질 전망이다.

스마트 헬스케어는 보건·의료·의약 기술과 나노·로보틱스·빅데이터·사물인터넷·인공지능·클라우드 등 첨단 기술을 융합한 개념이다. 개인이 의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스마트 모바일 기술을 통해 일상 속에서 맞춤형 건강 관리를 항상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병·의원 문턱을 넘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고, 시간·장소·이동의 제약을 뛰어넘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보편적인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뛰어난 접근성을 제공한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은 연평균 20%씩 성장하고 있으며, 국내 시장도 16%씩 증가해 2022년에 10조7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소득수준 향상, 고령인구 증가, 건강에 대한 관심 확대 등의 사회 변화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개인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자가 진단할 수 있을 만큼 온라인 시스템과 센서 기술이 발전한 점도 한 몫 한다. 이에 따라 스마트 헬스케어는 고령화 사회의 의료비 부담을 해결할 한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정부도 3년 전부터 5대 국가신산업의 하나로 선정해 규제 완화와 정책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은 ICT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의료기관이 아닌, IT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 개발은 크게 4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의사의 진료를 보조해줄 인공지능(AI) 활용 기술 ▷정밀한 진단을 위한 빅데이터 활용 기술 ▷실시간 상황 분석으로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사물인터넷 활용 기술 ▷개인 맞춤형 치료를 위한 유전체 분석 기술이다. 이에 따라 하드웨어 영역에서는 웨어러블·의료장비 등 건강 정보를 수집하고, 소프트웨어 영역에선 앱·플랫폼·콘텐트·인공지능이 정보를 분석·처방하며, 서비스 영역에선 원격진료·정보기록·맞춤관리 등을 제공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은 일상에선 웰니스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휴식, 영양관리, 뷰티 팁, 운동 방법, 재활, 치매 예방 같은 부가 서비스를 제공해 개인의 건강 관리 질환 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해외 기업들 생명공학 융합해 기술 혁신


▎여성 환자가 이탈리아 한 요양시설에서 헬스케어 로봇 도우미와 대화하며 웃고 있다. / 사진:© gettyimagesbank
해외에선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을 융합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이종 기업들과 협력해 기술과 서비스를 혁신하고 있다. 구글은 모회사인 알파벳(Alphabet) 산하에 분야별로 세분화해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구글벤처스’, 노화 방지를 연구하는 ’칼리코’,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베릴리’, 의료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딥마인드 헬스’,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구글클라우드’ 등이다. 구글헬스가 이들의 개별 프로젝트를 통합해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을 이끌 중장기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컴퓨터로 유명한 IBM은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Watson)’을 전문 의료 현장에 투입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왓슨은 지구촌 모든 의학 서적을 탐독해 의료진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추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투입될 계획이다.

스마트폰의 대명사인 애플 기업은 의료 데이터 플랫폼인 헬스키트를 선보였었다. 사용자가 이를 아이폰·애플워치와 연동해 자신의 건강정보를 측정·분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용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처방전도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도 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이트와 앱의 메시지·비디오·오디오를 통해 원격 상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웹 기반 건강 플랫폼, 의사와 의사를 연결하는 서비스 등의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GE헬스케어는 인공지능 컴퓨팅 기업과 손잡고 의료 정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을 연구한다. 1년여 전에 인공지능형 의료진단 플랫폼인 에디슨과, 이를 적용한 앱과 기기를 선보인 적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로 유명한 아마존은 2년여 전 온라인 필팩이라는 약국 스타트업을 인수해 의약품 판매, 병원과 연구 협력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의료 용품 배송 서비스, 의료 정보 분석, 임상 기록의 유효 정보 추출 기술 등도 개발하고 있다.

전자제품·제약·보험 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필립스는 모바일 기기로 환자의 생체 정보를 실시간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활용해 영상진단장비·초음파·마취기 등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존슨앤존슨은 구글의 베릴리와 함께 수술용 로봇 전문 기업을 설립했다. 유나이티드헬스 보험사와 시스코는 아시아 헬스케어 시장을 겨냥해 인도에 연구소를 세우고 중국에서 원격 의료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은 시스템·솔루션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업들이 매출도 높고 성장도 빠른 편”이라며 “하지만 국내 산업 대부분이 주로 완제품·부품 제조에 치중해 있다. 진단·콘텐트·플랫폼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는 전체의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불완전 진료·처방 예방할 제도 보완 숙제


국내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관련 업계의 산적한 이해관계 먼저 풀어야 한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진료는 20년 전에 시범사업으로 시행됐지만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 입법도 예고하고 관련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도 발표했지만, 접근성이 불편한 도서·산간 지역에 한정되곤 했다. 정작 필요한 규제 혁신 대상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의사들도 원격 진료를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들은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진료하면 오진 가능성이 커질 수 있고 처방도 불완전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형 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 돼 지방과 마을의 병·의원은 도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타낸다.

개인 정보도 처리도 풀어야 할 숙제다. 스마트 헬스케어에 적용되는 모바일·클라우드·사물인터넷 같은 기술로 퍼 나르는 의료 정보는 민감한 개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취급하는 병·의원이나 관련 업계는 보안에 허술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병원 정보를 무작정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도 불안하다. 최근 블록체인을 적용한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1526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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