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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31) 구본창 사진가] 왕성한 호기심이 ‘영원한 현역’ 비결 

 

고희 바라보는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 올들어 두 번째 전시

▎사진:신인섭 기자
고희를 바라보는 사진가 구본창은 올 들어 두 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 중 한 전시회는 뉴욕서 열렸고, 오늘 5월엔 시드니에서도 진행한다.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로 통하는 그는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왕성한 호기심 덕”이라고 말했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은 물론이고 평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다이슨의 청소기는 어떻게 저렇게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아름답고, 유니클로의 속옷은 어떻게 저런 탁월한 기능성을 갖췄는지 궁금해요. 이런 관심과 호기심이, 기복은 있었지만 꾸준히 작업을 하게 만듭니다.”

핸드폰 기능이 좋아져 조명이 없는 어두운 곳에선 핸드폰 사진이 더 잘 나오는 시대다. 특별한 장소, 특수한 상황에선 누구나 폰카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을 남기려면 삶에 대한 생각이 웅숭깊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듯, 그는 자신도 마치 컴퓨터의 폴더처럼 다양한 테마의 수십 가지 박스를 비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 중 한 개를 열어 집중적으로 매달려 하나의 작품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작업을 하지 않을 땐 재미있는 사진을 수집하고 관심 있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다. 다큐멘터리, 세계의 기행 프로그램, 디스커버리 채널도 자주 본다. 또 길에서 수시로 폰카로 사진을 찍는다. 이런 것들이 다 영감의 원천이다. 지속적으로 전시회를 하는 그에게 후배들은 “아직도 무슨 관심이 그렇게 많으냐”고 묻는다.

대형 전시회 열었던 ‘서른여덟살’에 시간 고정

“만년 서른여덟이라고 착각하고 삽니다. 지난해까지 대학 강단에 섰지만 대학원생 보면 어떨 땐 꼭 형 같아요. 한번은 약 타러 병원에 갔다 줄을 섰는데 간호사가 아버님이라고 해 깜짝 놀랐어요.”

서른여덟은 그가 막 작가로 발돋움해 서울 청담동에서 처음으로 큰 전시회를 열었을 때 나이다. 그때의 초심을 지금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항상 새롭게 시작한다는 자세로 일합니다. 상업적인 일을 맡아도 내 작업 하듯 이 일을 어떻게 해야 고객이 만족할까 고심하죠.”

그는 경영학도 출신이다. 고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의 연세대 상대 후배다. 대학 졸업 후 대우그룹의 모태 격인 대우실업에 들어갔지만 해외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회사로 옮겼다. 독일 주재원으로 나간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여기서 사진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로 떠난 건 학비가 거의 안 들었고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2~3년 대학 시간강사를 하며 버틸 땐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해 독일로 돌아갈 생각도 했었다. 독일 유학파는 당시 국내 사진계에선 비주류였고 인맥도 없었다. 그의 미대 진학에 반대했던 아버지는 그 시절 돈 몇 만 원 꾸러 가면 “그러게,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왜 사진쟁이가 되었느냐”고 타박을 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는 경영학도 출신답게 경제 원칙에 충실했다. 단적으로 사진 장비 구입에 드는 돈은 최소화하고 대신 최대의 투자 효과를 노렸다. 과욕을 부리지 않았고 낭비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사진가로서는 드물게 자기 건물을 지었다. 그는 또 예술을 하지만 신용을 중시하고 약속도 잘 지켰다. 송상(개성상인)으로 유명한 개성 출신이었던 부모들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라고 훈계한 덕이기도 하다.

유학파 사진가가 드물던 시절 그는 사진학과에 대한 세간의 평판을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고 한다. 구본창 같은 명문대 출신도 가는 학과라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생긴 것이다.

그의 작품을 관류하는 키워드는 한국적 정서, 시간의 궤적, 그가 발견한 피사체의 감춰진 매력 같은 것들이다. 그는 ‘백자’ 연작과 ‘비누’ 연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문양도 빛깔도 빼어난 청자에 너나없이 주목하던 시절, 그는 박물관을 순회하며 수더분한 백자를 증명사진 찍듯 기록했다. 백자는 본래 다소곳하고 완벽한 대칭도 아니다. 박물관 카탈로그 속 백자와 달리 그의 백자는 초상화를 연상시킨다. 포커스가 나가게 찍어 ‘뽀시시’ 하다. 핑크빛 백자도 있다. 본래 초벌로 구워 유약을 바르기 전의 자기가 핑크빛이다. 그는 조선 여성의 살결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반 백자는 선비, 핑크빛 백자는 조선 여성인 셈이다. 비누 연작은 조석으로 쓰다 보면 닳고 닳아 자투리가 되는 비누에 대한 애틋함을 담았다. 그는 “일상에 남은 세월의 흔적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시절 화우회(미술반)에서 활동했다. 경영학과 동기로 연상극우회(상대 연극반)에서 활동했던 영화감독 배창호를 위해 연극 포스터를 그려주고 초대장도 만들어줬다. 그러나 그 시절엔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유학 시절 초엔 그냥 비주얼 아트를 하고 싶었다. 그때 들은 사진수업 때 교수에게서 칭찬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친해진 독일 친구가 사진에 재능이 있었다. 친구 따라 사진을 전공했다. 지금도 교류하는 독일 친구는 정작 일찍 결혼해 호구지책으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됐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천재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가 되려면 재능 내지는 작가로서의 남다른 감성은 있어야 합니다. 운명처럼 기회를 잡아야 하고, 무엇보다 10년 넘게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돈 많이 준다고 여기저기 옮겨 다기면 작가로서 꽃피울 수 없어요.”

“성과 사회 환원으로 ‘인생 대차대조표’ 맞출 것”

그는 피사체의 물성과 질감을 중시한다. 찍으려는 대상의 표면을 무시할 순 없지만 껍데기와도 같은 표면을 벗겨냈을 때 드러나는 사물의 본질을 사진에 담으려 한다. “표면은, 말하자면 화려하게 화장한 모델의 화장발 같은 거예요. 조명과 찍을 때의 환경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표면 뒤 감춰진 본질이 모습을 드러내요. 그 순간을 60분의 1초, 125분의 1초에 포착하는 겁니다.”

그는 좋은 작품엔 작가의 영혼과 더불어 그가 흘린 땀이 서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 2막에 취미로 사진에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몰려다니지 말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여행은 함께 하더라도 촬영은 따로 하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람과 찍으면 집중이 안 돼요. 출사 마치고 함께 어울려 한 잔 하는 건 좋지만 작업은 나 홀로 하는 게 좋습니다.”

그는 “만족하는 인생이 행복하고 행복해지는 게 곧 인생의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알차게 살았고, 외람되지만 다 이루었다고 자부합니다. 실은 독일 유학 시절 나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이미 꿈은 이루어졌어요.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만일 학부 전공을 살려 대우실업을 계속 다녔다면 나름대로 모범적인 직장생활을 했겠죠. 이제 이룬 걸 사회와 후배들에게 환원해 인생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을 맞춰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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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호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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