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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년 두산, 흔들리는 가족 경영] 사업조정·지배구조개편, 두산가(家) 4세들 운명 좌우 

 

얽히고설킨 가족 경영, 순탄해 보이는 승계 속 불안요소 잠재

두산그룹은 2016년 박정원 회장이 취임하면서 국내 기업 최초로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박승직 창업자가 1세,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2세, 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그 형제들이 3세 경영인이다. 그리고 2016년 박정원 회장이 취임했다. 그는 4세 경영자로 고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회장직 승계에서 보듯 두산그룹은 ‘장자 상속’과 ‘형제 승계’ 방식으로 운영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승계 방식과 비슷한 구조다.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수장에 오른 뒤, 한 세대가 끝나면 그다음 세대로 바통을 넘기는 식이다. 고 박용곤 명예회장, 고 박용오 전 회장,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형제 사이로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두산가(家) 3세인 이들은 1981년부터 2015년까지 34년간 순서대로 두산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엇비슷한 지분, 존속가능 기업은 누구 몫?


순탄한 형제 상속이 이뤄지며 두산그룹은 형제간 화합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주목한다. 2005년, 3세 형제들의 갈등이 극에 달해 검찰 조사까지 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다. 자리에서 물러난 박용오 회장이 형제들의 비자금 조성을 폭로했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검찰조사를 받았고, 박용오 회장과 그의 자녀들은 경영에서 배제됐다. 박용오 회장은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갈등이 격화되면 결국 손해’라는 결론에 이르면서 3세들의 형제 상속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4세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두산은 다시 ‘형제 상속’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매끄러울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후보가 늘었다는 점은 가장 큰 불안 요소다. 두산그룹 계열사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는 4세들은 10명에 달한다. 3세들은 친형제 사이였지만, 4세들은 사촌지간이다. 박용곤 회장의 자녀 가운데서는 박정원 회장, 박지원 ㈜두산 부회장 겸 두산중공업 회장, 박혜원 오리콤 총괄부회장이 있다.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 아들인 박진원 네오플럭스 부회장, 박석원 ㈜두산 부사장이 활동 중이고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과 차남 박형원 두산밥캣 부사장, 삼남 박인원 두산중공업 부사장도 있다. 박용만 회장의 아들 박서원 ㈜두산 전무 겸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모두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의 최고의사결정자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두산의 3, 4세들은 지주회사 격인 ㈜두산의 지분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 그런데 이들이 보유한 두산 지분이 엇비슷하다는 점도 상황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권을 놓고 싸움이 벌어지면 파벌이 생길 수 있다. 한진그룹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인 조현아, 조원태 남매의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두산 지분율을 보면 이런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박정원 회장(7.41%)과 그의 형제들이 보유한 두산 지분율 합은 14.81%다.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3.48%)과 그의 아들들이 보유한 지분은 10.1%,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3.44%) 일가가 보유한 지분율은 10.12%.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4.26%)을 비롯한 그 가족의 지분율은 9.85% 수준이다. 4형제 일가가 가진 지분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사업 조정과 지배구조 개편이 예고된다. 존속 가능한 기업과 정리 또는 합병될 기업이 결정된다. 여기서 두산 4세들의 역할과 향후 거취 문제가 불거질 전망이다.

준비된 두산의 총수 마지막 시험대에 오르다


▎박정원(58) 두산그룹 회장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에서 ‘준비된 회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장손이면서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총수직에 오르기까지 30년 넘도록 경영수업을 받았다. 두산산업, 동양맥주, 두산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다.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취임해 상사 BG(사업부)를 맡으면서 ‘승부사’라는 호평도 받았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성 위주로 정리해 이듬해 매출을 30%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연료전지 사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정하고 국내 업체인 퓨어셀파워와 미국 연료전지 원천기술 업체인 클리어엣지파워를 인수해 사업을 키우기도 했다.

2009년 두산건설 회장직에 오르며 두산가의 4세 가운데 처음 회장이 됐다. 두산의 등기임원으로 활동하며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을 총괄했고 이후 박용만 회장으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승계해 오너4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 구단주로 활동하며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그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9년 두산건설의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을 총지휘했지만, 두산건설은 2013년 미분양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 두산건설은 적자에 허덕이다 상장폐지의 쓴맛을 봤다. 2016년 두산그룹 회장직에 오르며 실적 부진 개선, 미래먹거리 사업 개발이란 과제를 안았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박정원 회장에겐 또다시 위기 극복의 과제가 맡겨졌다. 과거 두산인프라코어의 혁신을 진두지휘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룹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했던 박 회장이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그룹 서열 2위 두산중공업 위기에 ‘책임론’ 부상


▎박지원(55) 두산그룹 부회장 두산중공업 회장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중공업 회장은 그룹 내 서열 2위로 평가 받는다. 차기 그룹 회장직을 승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부회장이란 직책은 물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동생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두산그룹이 오랜 기간 형제 상속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의미한 평가는 아니다.

박 부회장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은 가스터빈 사업을 확대하는 부분에서 좋은 평가도 나온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세계 5번째 가스터빈 독자모델 보유국이 됐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서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그의 안목에 가산점이 됐다.

그러나 두산그룹 위기의 핵심이 두산중공업에 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는 2001년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장 부사장, 2007년 두산중공업 사장, 2008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16부터는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두산중공업 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책임자 중 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사업이 쪼그라드는 가운데 확실한 캐시카우를 찾지 못했다. 적자행진을 거듭하던 두산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가 두산중공업 재무구조까지 악화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지난 4월 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참여연대·민주노총·전국금속노조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산중공업 경영진이 합리적 근거 없이 두산건설을 지원했다며 배임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현재 두산중공업이 안고 있는 부채만 약 4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1조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하면서 “경영정상화가 안 되면 대주주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형제상속 후보 위기 속 두산메카텍 역할 주목


▎박진원(52) 두산메카텍 부회장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은 두산가(家) 4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다음으로 두산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2019년 12월 기준 박진원 부회장이 보유한 두산 지분은 3.64%다. 두산 3세 경영진들이 순서대로 회장직을 역임했던 것을 고려하면 다음 차례가 박진원 부회장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산메카텍이 흔들리는 두산그룹의 지원카드로 쓰이는 상황도 박지원 부회장에겐 호재가 될 수 있다.

두산메카텍은 정유, 가스, 석유화학 플랜트의 화공장치를 제작하는 업체다. 두산 계열사 가운데 수익을 내는 알짜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두산그룹이 흔들릴 때마다 재무구조가 나빠진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활용됐다. 두산중공업 자회사였던 두산메카텍은 두산건설과 ㈜두산에 흡수된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두산은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두산메카텍 지분 100%를 현물출자해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두산메카텍 흡수를 계기로 두산중공업이 살아날 수 있다면 박진원 부회장의 입지도 탄탄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산중공업이 단기적으로는 부채비율을 낮추고 추후 두산메카텍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할 수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두산메카텍의 지난해 매출을 약 3118억원, 영업이익 184억원 가량으로 추산한다. 기업 실사와 분석이 필요하지만, 지난해 실적을 토대로 두산메카텍의 기업가치를 계산하면 2000억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만 재계 관계자는 “두산 살리기에서 두산메카텍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다.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두산 분석’으로 박사 학위 두산건설 상폐 책임 못 벗어나


▎박태원(51) 두산건설 부회장
박태원 부회장은 주로 두산건설에서 경력을 쌓은 건설통이다. 2006년 두산산업개발 상무, 2008년 두산건설 전무, 2014년 두산건설 사장을 역임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6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일각에선 경력보다 가문의 후광을 업은 초고속 승진이라는 평도 있었다. 두산건설의 부실이 두산그룹의 위기를 부채질했다는 점에서 박 부회장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경기가 가라앉는 등 시장 상황이 나쁘기는 했지만, 박 부회장이 책임론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할인분양과 장기 미착공 사업장에서 발생한 금융비용 적채로 회사의 부실이 커졌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9년 두산건설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주상복합 아파트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사업 실패는 뼈아프게 다가왔다. 2700가구 대단지 미분양 사태에 두산건설이 흔들렸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두산그룹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두산그룹 전체가 위기를 겪었다. 두산건설은 2011년 이후 한 번도 당기순익을 내지 못했다. 10년의 적자를 본 끝에 지난해 상장 폐지됐다.

박 부회장은 경영보다 다른 분야로 주목받은 바 있다. 그는 ‘두산 사례 연구’로 프랑스의 케지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재벌가 일원이 집안에서 경영하는 기업의 사례를 논문으로 써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속된 성공 신화로 근거 없는 자만심이 가득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며 두산이 어려워진 이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그가 보유한 두산 지분율은 2.70%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30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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