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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약계 백신 개발 스토리] 반세기 노하우 끌어 모아 국산 백신 개발 총력전 

 

코로나19 계기로 끈끈한 동맹… 정부 대규모 투자, 기업 보유기술 집중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경북 안동 백신공장에서 백신을 검수하고 있다. / 사진:SK바이오사이언스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와 민간 의료계의 협력이 공고해질 전망이다. 제약사 입장에서 사업상 선별적으로 이뤄졌던 백신 연구가 국책 과제로까지 격상돼 개발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전염병이 국경을 넘나들고 경제와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어서다. 이에 백신 자급력을 높이려는 정부와 백신 기술력을 축적한 제약사 간 동맹이 주목된다.


지구촌이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은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바이러스유사체를 기반으로 한 백신 후보물질을 찾았다고 지난 4월 7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민·관 협력을 통해 동물실험 효능 분석, 임상실용화 연구 등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그 일환으로 민·관 협력의 다리가 될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단장 성백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을 출범한다. 국비 2151억원을 들여 7월부터 10년 동안 감염병 연구와 백신 개발을 주도하는 국책사업이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연계, 생산공정 연구, 임상시험 시료 생산 등 백신 개발 전 과정을 주도하게 된다. 목표는 하나다. 임상2상까지 마친 백신 7종의 개발과 국산화다. 이를 위해 민·관 협업과 기초·임상 연계를 지원할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와 국가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도 세울 예정이다.

백신 자급 80% 목표로 사스·메르스 극복경험 총동원


이에 따라 제약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사업단은 백신 개발 노하우를 가진 주요 기업들과 손잡고 국가 백신 주권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서 사용 중인 백신은 필수예방접종 19종, 기타 예방접종 5종, 대테러 대비 4종 등 총 28종이다. 이 가운데 국내 자체 생산이 가능한 백신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절반도 안 되는 백신 자급률을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당장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달리 코로나19는 복제·변종·무증상·전파력이 강해 시한폭탄 같은 특징을 갖고 있어서다. 정부의 대규모 지원과 민간의 축적된 노하우 간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셀트리온은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쓰일 항체 후보군을 확보했다. 셀트리온은 질병관리본부 신종감염병매개체 연구과와 협력해 1차, 2차 중화력 검증으로 38개 항체를 걸러냈다. 이를 이용해 세포주 개발과 동물실험을 실시하고 빠르면 7월에 인체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셀트리온은 앞서 3월 18일 정부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국책과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질병관리본부와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이후 국내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을 받아 항체 연구를 진행했다”며 “셀트리온이 인플루엔자 멀티항체 신약과 메르스 치료용 항체를 개발했던 노하우를 집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GC녹십자도 코로나19 해법을 개발 중이다. GC녹십자는 혈장치료제, 서브유닛 백신, 단일클론항체치료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GC녹십자랩셀은 NK세포를 활용한 코로나 치료제를, GC녹십자MS는 타 기업과 손잡고 진단키트 공동개발·기술이전·생산을 연구 중이다. GC녹십자는 지난 50여 년 동안 백신 국산화를 이끌어왔다. 지금까지 국산화된 필수 예방 백신 중 약 3분의 2가 GC녹십자에서 탄생했다. 수두, 신증후군출혈열, 인플루엔자(독감), 일본뇌염, 성인용 디프테리아·파상풍(Td), B형간염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현재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Tdap), 결핵, 탄저 등의 백신 임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법인에서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도 개발 중이다. 45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GC녹십자의 독감 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범미보건기구(PAHO) 입찰에서 다국적 제약사를 제치고 6년째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3월 23일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의 발현에 성공해 동물효력 시험에 들어갔다. 빠르면 9월에 임상시험 할 계획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합성항원 제작 기술과 메르스 백신 개발 경험을 갖고 있어 후보물질의 효력과 안전성이 확인되면 코로나19 백신을 바로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같은 플랫폼으로 자궁경부암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했으며, 2017년 메르스S 단백질 면역원 조성물과 제작방법 특허도 출원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경북 안동에 백신 생산공장이 있어 즉각 생산도 가능하다. 2018년 SK케미칼에서 분사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3가 세포배양 독감백신(스카이셀플루), 4가 세포배양 독감백신(스카이셀플루4가), 대상포진 백신(스카이조스터), 수두 백신(스카이바리셀라)을 자체 개발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기구 인증한 기술력 수출, 저개발국도 지원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오른쪽)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3월 26일 한국화학연구원을 방문해 백신개발 연구에 대해 청취하고 있다.
HK inno.N(HK이노엔, 옛 CJ헬스케어)은 엔테로17·콕사키A16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2가 수족구 백신을 개발 중이다. 진행 중인 임상1상을 마치면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백신이 된다. 이와 함께 3세대 두창 백신, 자가면역질환·폐렴 바이오의약품 등을 연구 중이다. 2년 전 한국콜마와 한 식구가 된 HK이노엔은 1986년 헤팍신-B(B형간염 백신)를 국내 처음 개발했다. 수입에 의존하던 EPO제제(조혈제)도 1998년 처음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어 2세대 EPO 바이오시밀러 기술을 개발해 2017년 일본에, 2018년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

보령바이오파마는 3월부터 영유아용 DTaP-IPV 백신을 국내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를 예방하는 DTaP 백신에 불활화폴리오 소아마비 백신을 혼합한 4가 콤보 백신이다. 영유아 DTaP 백신은 월령에 맞춰 접종해야 해 원활한 수급이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엔 다국적제약사 제품만 출시됐다. 보령DTaP-IPV 백신은 2012년 개발을 시작해 2015년부터 4년간 다국가 임상을 거쳐 2019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 허가를 받아 지난 1월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됐다.

LG화학도 주사용 영유아 백신 유펜타에 소아마비 백신을 더한 6가 혼합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백신으로 WHO 사전적격성평가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유펜타는 2016년 개발한 5가 혼합백신(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B형간염·뇌수막염)으로 유니세프를 통해 저개발국 영유아 질병 예방에 쓰이고 있다. LG화학은 1996년 국내 처음으로 유박스(유전자 재조합 B형간염 백신)의 WHO 사전적 격성평가 승인을 받았다. 이를 20여년 간 유니세프에 조달해 해외 80여개국 영유아 B형간염 예방사업에 공급하고 있다.

세계적 제약사 화이자는 코로나19 발병을 계기로 한국 의료계와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확보한 각종 의료 정보가 앞으로 신약 개발에 중요한 데이터가 될 수 있어서다. 프리베나13으로 세계 폐렴구균 백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제약사 화이자는 한국법인 한국화이자제약을 통해 다국가 임상시험을 한국에 유치하려고 노력해왔다. 국립암센터·분당서울대·삼성서울·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 병원들과 손잡고 임상시험을 수행해왔으며 인제대 병원엔 아시아 최초 치료연구소(CTI)를 설립했다. 보건복지부와 업무협약을 맺어 신약 개발과 보건의료기술 연구도 진행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1531호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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