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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홍콩보안법에 숨겨진 중국의 모략] 中, 홍콩 꼭두각시 만들려는 속내 드러내다 

 

약속했던 홍콩 고도자치권 내팽개쳐… 한 켠에선 금융허브 노리는 각축전

▎홍콩 시민들이 5월 24일 천멸중공(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쓴 표지를 들고 중국의 홍콩안보법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5월 2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代) 전체회의에서 홍콩보안법 초안이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로 통과되면서 홍콩의 미래와 금융허브 지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대 1명은 만장일치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심어둔 ‘반대 전문 대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전체회의를 폐막한 전인대는 조만간 상무위원회를 소집해 홍콩보안법을 최종 통과한 다음, 이를 결정문에 포함된 내용대로 홍콩의 헌법 격인 홍콩기본법의 부칙 3조에 넣어 시행할 예정이다.

홍콩보안법을 살펴보면 오싹한 내용투성이다. 이 법은 앞으로 시민 저항의 손발을 묶고 범민주파의 정치 활동을 막을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명목상으로는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간섭을 금지하고, 국가 분열 및 테러리즘 활동을 처벌하며, 국가안보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핵심은 베이징의 중앙정부가 홍콩에 국가안보기관을 설치해 운영한다는 데 있다. 홍콩에 중국의 국가안보기관 간판을 단 정보·사찰 기관이 버젓이 들어서는 것은 베이징이 홍콩의 정치활동과 시위를 직접 감시하고 진압하며 탄압하겠다는 의미다. 이 기관에 베이징에서 파견하거나 홍콩에서 차출한 당성 강한 보안요원들이 상주하면서 반중 인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시 감시하고 이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자유로웠던 홍콩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공산당 감시사회로 바뀌게 된다는 의미다.

주목되는 것은 홍콩보안법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행위’뿐 아니라 ‘활동’도 예방, 금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중국이나 홍콩 정부에 항의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조직을 만들거나 토론회를 조직하는 것도 국가안보를 저해한다고 판단되면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홍콩에 보안기관을 세운 목적은 사실상 중국에 반기를 드는 홍콩인을 예비 구금하고 진압하며 처벌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을 비판하는 의견이 오간 단순 모임에 참가하거나 항의를 주장한 행위도 처벌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단순시위도 무겁게 처벌함으로써 홍콩에서 시민들의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말살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아울러 이렇게 잡아간 사람에게 국가 분열이나 테러리즘이라는 어머어마한 죄목을 뒤집어 씌워 중형에 처할 길도 열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인 학생이나 범민주파 정치인은 중형을 받아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낼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 인민대 무소불위 권력으로 홍콩 정체성 뒤흔들어


▎홍콩경찰들이 5월 27일 중국의 홍콩안보법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자들을 구금 감시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당국이 1997년 반환 이후 ‘한 국가 두 체제’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유지해온 홍콩에 적용할 법을 직접 제정한 것을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조치다. 전인대는 중국 정부의 형식적인 최고 권력기관이다. 전인대는 민주국가의 입법기관과 다른 독특한 권력기관이다. 입법권과 함께 고위직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행정권·사법권·검찰권 보다 우위에 서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최고행정기관인 국무원, 최고 군사지휘기관인 중앙군사위원회(공산당 중앙군사위는 구성원은 동일하지만 조직은 별도), 최고사법기관인 최고인민법원, 최고검찰기관인 최고인민 검찰원의 구성원을 선출한다. 이들 권력기관의 구성원은 전인대에 책임을 지며, 전인대의 감독을 받는다.

공산국가 중국의 형식적 최고 권력기관인 전인대는 민주국가의 국회와 다르며 국민의 대표로 이뤄진 대의기관도 아니다. 전국의 성·자치구·직할시·특별행정구의 인민대표대회와 인민해방군에서 간접 선출한 대표로 구성된다. 중국 국민이 직접투표로 대표를 뽑는 조직은 현급 이하 인민대회뿐이다.

이러한 전인대가 홍콩에 보안법을 강요하면서 홍콩의 정체성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게 됐다.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중국이 1997년 홍콩이 반환될 당시 했던 약속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당시 중국은 반환 이후 50년간 기존의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홍콩은 홍콩인이 통치한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그리고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을 약속했다. 하지만 홍콩은 이번 전인대의 결정으로 중국 본토의 공산당 독재체제를 홍콩에 적용하는 일국일제(一國一兩制), 공산당이 실질적으로 홍콩을 통치하는 홍인치항(紅人治港), 이름뿐인 허울뿐인 자치만 남은 명목자치(名目自治) 시대를 맞게 됐다.

중국이 홍콩 입법회(의회 격)을 거치지 않고 베이징의 전인대에서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홍콩의 반정부 활동을 벌하도록 한 것 자체가 홍콩인에게는 충격이다. 홍콩 반환 당시 약속을 팽개치고 법과 절차가 아닌 힘에 의존해 홍콩을 통치하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홍콩 헌법 격인 기본법에 ‘법률 제정권이 홍콩 입법원에 있다’는 규정에 어긋난다. 하지만 중국은 '외교·국방 등 홍콩 정부의 업무 사안이 아닌 분야의 법률은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홍콩 정부와 상의해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며 내놓고 홍콩 내정 간섭을 시도했다. 홍콩은 이미 2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이를 보도한 뒤로 대대적인 시위에 들어갔다. 홍콩인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집회가 금지된 상황에서도 대대적인 시위로 맞섰다.

中, 책임자 교체 입법절차 무시 무력 통치 의도 드러내


▎5월 22일 홍콩 의회에서 중국의 홍콩안보법에 반대하는 홍콩 범민주당 의원인 레이먼드 찬치추엔이 밖으로 끌려 나가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02~2003년 이번과 같은 내용의 조항을 기본법 제23조로 삽입하려는 시도를 했다가 2003년 7월 1일 7월 1일 50만 명이 반대시위를 하면서 무산된 적이 있다. 중국공산당은 홍콩 주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법과 제도로 억압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온 셈이다. 이번 조치도 1월초부터 주요 간부를 바꾸고 압박을 강화하는 등 오랫동안 공을 들인 뒤 갑자기 단행했다. 중국공산당의 집요함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다.

중국 당국은 올해 1월 초부터 정지작업을 진행해왔다. 1월 4일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의 왕즈민(王志民) 주임을 뤄후이닝(駱惠寧) 전 산시(山西)성 당서기로 교체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중련판은 1940년대 말 설치돼 2000년까지 중국 중앙정부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한 신화통신 홍콩지국의 역할을 계승한 조직이다. 이름은 연락사무소이지만 실질적으로 베이징 당국의 의향과 의사와 의지를 홍콩에 실현하는 기관이었다. 이 인사는 강력한 홍콩 통제 정책을 주문하는 조치로 풀이됐다. 뤄후이닝은 공산당의 뜻을 관철하는 수완과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된다.

중국은 2월 13일 베이징의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을 샤바오룽(夏寶龍) 정협 부주석 및 비서장으로 교체했다. 샤바오룽은 공산주의 청년단(공청) 출신으로 저장(浙江)성당 서기를 지낸 뒤 정협 부주석 겸 비서장을 맡아왔다. 중국이 이처럼 홍콩 주재 최고 책임자와 베이징의 홍콩 정책 책임자를 모두 교체한 것은 홍콩을 손보기 위해 신발 끈을 단단히 조였다는 의미다.

홍콩 경찰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월 28일 홍콩 범민주파 중진 3인을 체포해 기소했으며 홍콩 당국은 3월 27일 5인 이상 집회를 금지했다. 4월 18일에는 홍콩 경찰이 지난해 시위 가담을 이유로 범민주파 중진 15인을 한꺼번에 체포했다.

중국은 4월 하순부터 중련판 주임으로 부임한 뤄후이닝이 홍콩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비난하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홍콩의 사회 안정을 추구할 것을 촉구하면서 홍콩을 본격적으로 압박했다. 중국의 본심이 보안법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범민주파는 홍콩기본법 제22조를 내세우며 중련판과 베이징의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이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중앙 인민정부 소속 모든 부서, 성, 자치구, 직할시는 홍콩특별행정구가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사무에 간섭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캐리람, 법률 재해석 고위관료 교체로 중국 입장 두둔


▎2017년 7월 1일 홍콩에서 열린, 영국에서 중국으로 홍콩 이양 20 주년 기념식에서 캐리램 홍콩 행정장관(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환담하며 함께 걷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4월 21일 홍콩의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했다고 해서 중앙정부가 감독 권한을 잃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중련판을 두둔했다. 홍콩 행정장관이 중국 당국의 홍콩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홍콩 기본법을 아예 새롭게 해석한 셈이다. 다음날에는 이를 반대한 홍콩 정부의 고위관료를 교체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4월 27일에는 홍콩 법무장관 격인 테리사 청 율정사 사장이 입법회에서 “중련판은 홍콩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기관이지만 중앙정부에 소속된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기본법 22조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콩 고위 당국자가 이런 해석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이처럼 중국 당국은 1월 초부터 홍콩에서 공산당 입맛에 맞는 통치를 강화하는 ‘홍콩 공정’을 착착 진행해왔다. 5월 28일 전인대의 결정은 그 결과다.

중국 공산당 지휘부는 홍콩 통제를 강화할 보안법 통과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홍콩 범민주파는 이번 조치가 일국양제 훼손이라며 즉각 항의에 나섰다고 BBC 등 외신이 전했다. 홍콩 경찰은 전에 없이 강경하게 시위를 진압하고 참가자들을 연행하는 모습이 AP·로이터 등 외신 사진으로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 홍콩보안법 제정을 언급하며 “홍콩의 장기적인 번영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며 “홍콩 특구 정부와 행정장관의 법에 따른 통치를 일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말을 잘 듣는 행정장관을 앉혀놓고 홍콩을 계속 통치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는 중국의 홍콩보안법 입법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선 미국이 나섰다. 미국대표부는 홍콩보안법 통과 전날인 5월 27일 성명을 내고 “(1997년 홍콩반환에 앞서) 1984년 체결한 ‘영국-중국 공동선언’에서 보장한 홍콩의 자유와 고도 자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 공동선언은 1997년 중국 반환 뒤 50년에 걸쳐 홍콩이 기존 민주체계를 유지하도록 보장해 ‘일국양제’의 바탕이 되고 있다. 미국대표부는 “1984년 공동선언은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유엔에도 등록됐다”며 “(홍콩보안법은) 국제 평화와 안보와 관련된 긴급한 글로벌 우려 사안으로 안보리 화상회의 소집을 유구했으나(거부권을 가진) 중국에 의해 무산됐다”고 전했다.

세계 각국 일국양제 훼손 우려, 중국 비난에 한 목소리

중국이 5월 28일 홍콩보안법을 통과하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는 물론 유럽연합(EU)의 핵심국가인 독일까지 나서 일국양제를 훼손했다며 중국을 비난했다. 1987년 7월 1일 홍콩을 중국에 반환했던 영국은 “홍콩보안법이 일국양제 원칙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며 “중국의 조치는 1984년 양국이 체결한 홍콩반환협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은 제1차 아편전쟁(1839~1842년) 중인 1941년 홍콩섬을 점령했으며 1842년 헝나라와 맺은 난징(南京) 조약에서 홍콩 섬을 양도 받았다. 영국은 이곳에 빅토리아 시티를 세우고 홍콩총독부를 설치했다. 이어 제2차 아편전쟁(1856~1860년)에서 승전한 뒤 베이징(北京) 조약으로 홍콩 섬 맞은편에 있는 주룽(九龍) 반도를 할양 받았다. 홍콩 섬과 주룽 반도는 영구 할양이었다. 이어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을 맺고 주룽반도 북쪽의 신제(新界·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어로는 신가이)를 99년간 조차했다. 신제는 나중에 산가우룽(新九龍)과 신제(新界)의 2개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다. 신제의 조차기간이 만료된 1997년 7월 1일 신제와 함께 홍콩섬과 주룽반도도 중국에 반환됐다.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아닐 성명을 내고 “일국양제과 법치주의는 홍콩의 안정과 번영의 근간으로 홍콩보안법이 이런 원칙을 깨선 안 된다”며 “홍콩에서 민주주의뿐 아니라 집회와 표현의 자유도 계속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5월 2일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명의의 성명을 내고 “EU는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의 계속되는 안정과 번영에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외교부는 5월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EU 성명과 입장이 같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자유를 누리면서 번영해온 홍콩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이 홍콩의 특별한 지위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릴지가 관건이다. 홍콩은 전 세계의 돈과 인재가 몰리는 부유한 지역이다. 금융과 관광, 그리고 쇼핑 천국이었다. 홍콩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적 번영을 누려왔다.

중국 정치 통제로 홍콩의 글로벌 금융허브 위상 흔들려

홍콩이 중국의 정치적인 간섭에 시달리면서 무엇보다 홍콩이 누려온 글로벌 금융센터로서의 지위가 흔들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콩은 1997년 반환 이후에도 미국과 영국 등 서구사회는 물론 전체 국제사회로부터 중국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왔다. 전 세계는 관세, 투자 등에서 중국과는 다른 자유국가 대우를 해왔다. 자유무역항인 홍콩의 지위를 감안한 점도 있다.

주목할 점은 홍콩은 중국의 지역 대부업체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금융허브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의 자금을 모아 중국에 투자한 것은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을 해왔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인재가 모여들어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여기에는 홍콩의 윤택하고 안정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가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 공산당의 사실상 직접 통치가 시작되는 분위기 속에서 홍콩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홍콩의 글로벌 금융센터로서 지위가 우려되는 이유다.

영국 컨설팅업체 지옌(Z/Yen)그룹과 카타르 파이낸셜센터가 공동 조사해 지난 3월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를 보면 홍콩은 지난번 3위에서 6위로 떨어졌다. 지수가 매년 9월과 3월 발표하는 것을 감안하면 홍콩 소요 사태가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수에 따르면 뉴욕과 런던이 계속 1, 2위를 지키고 있으며 도쿄가 3단계 뛰어 3위, 상하이가 1단계 상승해 4위를 각각 차지했다. 동남아시아의 중화권 국가인 싱가포르는 1단계 떨어져 5위에 올랐으며, 베이징은 지난번과 같은 7위를 유지했다. 지난해 9월 뉴욕-런던-홍콩-싱가포르-상하이-도쿄-베이징 순이었던 것이 이번에 뉴욕-런던-도쿄-상하이-싱가포르-홍콩-베이징의 순으로 개편된 것이다. 순위 변화만으로 한정해서 보면 홍콩이 흔들리면서 생긴 이득을 도쿄와 상하이, 그리고 싱가포르가 나눠 가져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콩의 금융산업이 흔들리면 그 위상을 대신 차지하는 경쟁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문제는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은 여전히 중국 본토로서 관치나 공산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부에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도 국제 경제계에서 이를 믿기는 쉽지 않다. 홍콩이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해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홍콩이 흔들리게 될 경우 그 이득은 크게 봐서 싱가포르와 도쿄가 나눠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도쿄는 여전히 관치의 이미지가 강하고, 싱가포르는 민주주의가 아닌 세계라 일말의 두려움이 있다. 도쿄와 싱가포르의 싸움이 될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다른 도시가 뛰어들어 새로운 경쟁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면 계속 홍콩이 어정쩡하게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끼고 금융산업을 계속 부흥시킬 수도 있다. 홍콩 사태가 불안을 확신하는 계기가 될지, 주변 도시에 기회가 될지는 ‘포스트 코로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감안할 요인이 너무도 많고 미래는 여전히 미지수다. 홍콩은 글로벌 시장을 강타하는 거대한 불확실성 시대의 일부분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37호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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