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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꼴 사고, 대산석유화학단지 미스터리] 한화토탈·롯데케미칼·현대오일뱅크·LG화학, 연이은 사고 

 

주민 불안·불만 증폭… 국가산업단지 아니라 정부 관리감독·지원도 미미

▎대산석유화학단지 전경 / 사진:연합뉴스
고요한 새벽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듯 요란한 굉음이 들렸다. ‘별 일 아니겠지’하고 다시 자리에 누우려던 순간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집 전체가 하늘로 솟았다가 이내 땅으로 꺼지는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유리창은 와장창 깨지고 문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법한 이 장면은 그러나 현실이다. 지난 3월 발생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폭발사고에 대한 인근 주민의 증언이다.

충청남도 서산시에 위치한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는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한 달에 한 번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대산석유화학단지 인근 주민들은 “대산석유화학단지를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하고, 지역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달라”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더 이상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호소다.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6월 2일 방문한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적막했다. 오전까지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그쳤지만 석유화학단지 인근 마을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잇따른 사고로 주민 불안이 폭증하고 있는 지역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올해 들어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월에는 한화토탈이 생산한 용제(Anysol-D100)를 운반하던 차량이 전복됐다. 이 사고로 용제 9톤가량이 유출됐다. 유출된 용제는 화학물질을 용해하는 석유류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상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한화토탈은 지난해 5월 대산공장에서 유증기가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한화토탈 유증기 유출 사고 관계기관 합동조사단은 같은 해 7월에 회사 측의 과실과 파업 등으로 인한 숙련 근무자의 현장 이탈 등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환경부는 한화토탈을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3월에는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내 나프타 분해센터(NCC)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공장 근로자와 인근 주민 등 56명이 부상을 입었다.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대상으로 ‘특별안전보건감독’을 실시한 결과, 82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중대한 위반 사항으로 사법 조치된 건은 47건이다. 과태료 5억741만원도 부과됐다.

4월에는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의 플레어 스택(가연성 가스를 점화·연소시키는 굴뚝)에서 악취가 발생해 인근 지역 주민 70여명이 고통을 호소했다. 5월에는 LG화학 대산공장에서 폭발로 추정되는 화재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1명이 사망했다.

입주 기업 ‘안전 불감증’ 논란


대산석유화학단지 인근 주민들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고에 대해 “기업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종극 대산읍 독곶2리 이장은 “최근 LG화학 대산공장에서 발생한 사고 현장에 있었는데, 회사 측이 이번 사고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다”며 “기업의 안전 불감증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리·감독이 부실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를 두고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석유화학 공장 사고를 기업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과도하다”는 반박도 나온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사고 발생시 가동 중단뿐 아니라 여론 악화 등 엄청난 유무형의 피해를 입기 때문에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며 “이런 기업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안전 불감증 때문에 사고가 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입주하고 있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현대오일뱅크 등 4개사는 지난해 8월 향후 5년간 안전·환경 분야에 807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입주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도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

대산석유화학단지가 울산이나 여수와 달리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있지 않아 단지 인근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국가산업단지와 비교해 안전이나 기반시설 확충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산 지역 인사는 “지난해 현대오일뱅크에서만 4조원 이상의 세금을 내는 등 대산석유화학단지 입주 기업들이 연간 내는 세금이 5조원이 넘지만, 국가산업단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다”며 “지역에서는 대산석유화학단지 입주 기업들이 내는 세금만 지원받을 수 있으면, 안전이나 기반시설 등에 대한 문제를 즉시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실제 대산석유화학단지 인근을 지나는 국도 38호선의 경우 2016년 12월에서야 4차로 확장 공사를 끝내고 개통됐는데, 그 이전에는 농어촌도로였다. 서산시 관계자는 “석유화학단지 인근 도로가 뒤늦게 확장됐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기반시설 확충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천영우 인하대 환경안전융합대학원 교수는 “안전은 기업이 얼마나 세심하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라며 “석유화학단지 내 사고를 안전 불감증이나 부주의 등으로 단순 치환하는 것은 오히려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천 교수는 “안전 불감증보다는 사고 원인 조사, 기록, 분석 등이 강조돼야 재발 방지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롯데케미칼, 주민 피해 보상 합의 난항

한편 롯데케미칼 사고가 발생한지 오는 6월 11일 100일을 맞지만 피해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피해 주민 등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사고와 관련해 접수된 피해 건 수는 건물 피해 400여건, 인명 피해 3000여건, 영업 피해 60여 건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 주민들은 롯데케미칼이 사고 당시와는 달리 피해 보상과 관련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식당을 운영하다가 피해를 입은 한 주민은 “롯데케미칼이 식당 수리 등과 관련한 보상비용을 5월 말까지 주기로 했는데, 6월 1일에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롯데 측이 제시한 보상 비용을 받아도 수천원만의 손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김종극 이장은 “롯데케미칼이 피해 보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주민들과 감정싸움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피해 주민 등에 따르면 영업 보상과 관련해 롯데케미칼 측은 전년도 부가가치세의 20%, 영업일수 60일 기준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피해 주민들은 영업일수 90일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롯데케미칼 측은 “최근에도 관련 피해를 접수하고 있는 상황이라, 피해 주민 모두와 합의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38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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