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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 특화산업단지 사업 포기, 에쓰오일의 ‘고육지책’] 합의 깨면서 대산 특화산단 ‘반토막’ 전락 

 

에쓰오일 “기간만료 따른 사업종료”… 충남도, 에쓰오일 산업단지 지정 취소 ‘강수’

▎충청남도 대산에 위치한 에쓰오일 부지 뒤편으로 한화토탈 대산공장이 위치해 있다. / 사진:이창훈 기자
최근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에쓰오일이 대산 ‘첨단정밀화학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지역 민심이 들끓고 있다. 대산 지역에서는 “에쓰오일 사업 철수로 인한 유무형의 피해가 막대하다”며 “에쓰오일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에서는 “기업이 상황에 따라 사업 철수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경영의 한 부분”이라면서도 “이미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를 통해 함께 추진했던 사업을 철회하는 것은 외국 기업이라 가능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3대 석유화학 산업단지 조성 꿈 물거품

에쓰오일이 발을 뺀 대산 첨단정밀화학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2023년 12월까지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일원에 291만㎡ 내외로 정밀화학 업종 중심의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의 세부 추진 계획에 반영됐으며, 같은 해 9월 충청남도와 서산시, 에쓰오일,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이 이 사업에 대해 상호협력을 강화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 사업은 여수, 울산 등과 함께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면서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지 않은 대산 석유화학단지를 산업단지로 재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대 10조원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서산 지역의 기대감도 증폭됐다.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11차에 걸쳐 실무협의회가 열릴 정도로 사업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그러나 에쓰오일이 지난 3월 열린 14차 실무협의회에서 대산2 일반산업단지 사업을 포기하고 취득 토지를 매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도 표류하고 있다. 서산시 등은 “에쓰오일의 갑작스런 사업 포기로 사업 규모가 당초 계획에서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 특화산업단지 조성 논의 과정에서 서해에 접한 사유지, 국공유지까지 모두 개발하기로 했는데 에쓰오일의 사업 철수로 이 부지에 대한 개발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서산시에 따르면 에쓰오일이 2006년 대산2 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매입한 114만㎡ 규모의 부지는 한화토탈 소유의 땅을 ‘ㄷ’자 형태로 둘러싸고 있다. 에쓰오일 부지 왼쪽에는 한화토탈 대산공장이 오른쪽에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이 각각 위치해 있다. 이 같은 지리적 요건을 감안해 에쓰오일과 한화토탈 부지를 롯데케미칼과 한화토탈이 개발하고, 서해안에 위치한 사유지와 국공유지를 에쓰오일이 개발하는 쪽으로 사업이 확장됐다.

서산시 관계자는 “에쓰오일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에쓰오일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사업 규모가 대폭 쪼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에쓰오일의 사업 철수는 아쉬운 부분”이라며 “특화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 충남도 등에 최대한 협조하고 행정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쓰오일 불매운동 전개” 들끓는 서산 민심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대표 / 사진:에쓰오일
에쓰오일의 사업 철수로 특화산업단지 조성 계획에서 제외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에쓰오일의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100여 가구와 사업체들이 있는데, 일부 주민들과 사업체들은 이주를 위해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쓰오일 사업 철수로 개발 계획이 변경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는 호소가 나온다.

에쓰오일이 빠진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에쓰오일의 부지를 한화토탈, 롯데케미칼 등이 매입해 개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에쓰오일이 제시한 매각가와 한화토탈, 롯데케미칼이 요구하는 매입가에 차이가 있어 반토막 난 사업마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서산시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2006년 토지 가격 기준 평당 37만원 수준으로 부지를 매입했는데, 현재 매각가로 제시한 금액을 토지 가격으로 환산하면 평당 70만원대다. 에쓰오일은 당초 부지 매각가로 2140억원을 제시했다가 서산시 등이 반발하자 매각가를 1800억원으로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서산 지역에서는 “에쓰오일이 지역 부지를 사들여 차익을 실현하는 등 이른바 ‘알박기’를 하고 있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나온다. 이에 대해 에쓰오일 측은 “부지 매각가는 감정평가액에 근거해 제시한 것이고 폭리를 취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에쓰오일이 한화토탈, 롯데케미칼이 수용할 수 없는 금액을 매각가로 제시한 것을 두고 “경쟁사에 부지를 넘기지 않으려는 의도”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산시 관계자는 “에쓰오일과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은 특화산업단지 조성 논의 과정에서 산업단지 분양가로 평당 150만원 수준이 적정하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뤘다”며 “에쓰오일이 제시한 매각가는 분양가 기준으로 평당 17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에쓰오일이 부지 매각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산석유화학단지의 분양가는 평당 100만원 내외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산 지역에서는 “에쓰오일을 상대로 불매운동이라도 전개할 판”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에쓰오일에 대한 반감이 많다. 당초 에쓰오일은 2006년 부지를 매입하고 3조원 이상을 투입해 대산에 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충청남도는 2006년 7월 에쓰오일 부지를 대산2 일반산업단지로 지정했고, 에쓰오일은 2011년 12월 토지 보상을 완료했다. 이듬해 12월에 부지에 거주하고 있던 185가구의 이주 및 철거도 완료됐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8년 12월에 완료될 사업이었다.

그러나 에쓰오일은 토지 보상과 거주민 이주 등을 완료한 뒤에도 관련 사업에 착수하지 않았다. 서산시 관계자들이 서울에 있는 에쓰오일 본사를 방문해 설득 작업을 벌였으나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서산시 관계자는 “특화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에쓰오일 부지 개발이 진행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으나, 에쓰오일의 갑작스런 사업 철수 통보로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충청남도와 서산시 안팎에서는 에쓰오일이 부지 매각을 늦추기 위해 이른바 ‘시간 끌기’ 전략을 펴고 있다는 의구심도 나온다. 그동안 에쓰오일은 대산2 일반산업단지 개발 사업 기간 연장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에쓰오일의 요구로 이 사업은 지난해 6월까지 6개월 연장됐으며, 이후에도 두 차례 걸쳐 10개월 미뤄졌다. 서산시 관계자는 “에쓰오일은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 철수를 밝힌 이후에도 일반산업단지 지정 취소가 아닌 기간 연장을 원했다”며 “에쓰오일 부지가 일반산업단지로 유지되면 한화토탈이나 롯데케미칼은 해당 부지에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없는데, 이를 모를 리 없는 에쓰오일의 사업 기간 연장 요구는 부지 매각을 늦추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에쓰오일 입장에서는 토지 보상 등의 과정을 거쳐 힘겹게 부지 확보를 했는데, 이 부지를 경쟁사인 롯데케미칼이나 한화토탈이 원하는 액수로 손쉽게 넘기기에는 아쉬울 것”이라고 했다.

이에 충청남도는 6월 1일 에쓰오일 대산2 일반산업단지 지정을 취소하는 강수를 뒀다. 충청남도 관계자는 “향후 사업자들이 용역사를 통해 산업단지 개발 계획을 승인받고 감정평가나 별도 협의 등을 통해 에쓰오일 부지 매각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에쓰오일 사업 철수, 외국 기업이라 가능”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에쓰오일의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 철수에 대해 “외국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이 사업성 등을 검토해 사업 결정을 철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기업이라면 대산 특화산업단지 조성 사업처럼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를 거친 사업에서 쉽게 발을 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에쓰오일이 울산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상황에서 공장 자체가 없는 대산에 석유화학단지 조성을 위해 수조원을 쏟아 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에쓰오일의 사업 철수에 두고 “에쓰오일 경영진이 에쓰오일의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아람코)를 설득해 사업 철수와 부지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에쓰오일 사업 철수에 대해 사정이 밝은 한 관계자는 “에쓰오일 경영진이 최근 코로나19 등의 위기 상황을 감안해 자산 확보 차원에서 대산 부지를 매각해야 한다고 아람코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 에쓰오일은 최근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대폭 늘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1분기 말 연결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5078억원으로, 지난해 말(2910억원)보다 1조원 넘게 급증했다.

에쓰오일 측은 사업 철수 결정에 대해 “사업 기간 만료(4월 말)에 따른 자연스런 사업 종료”라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사업에 대한 내용이 올해 3월 이사회에 보고된 것은 맞지만, 사업 철수 여부와 관련한 안건이 상정돼 의결되는 절차는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서산시는 “에쓰오일이 올해 3월 이사회를 통해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주장한다.

에쓰오일 이사회는 사내이사 1명, 기타비상무이사 4명, 사외이사 6명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내이사는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대표이며, 기타비상무이사 4명은 모두 아람코 임원이다. 이사회 의장은 상공부 장관,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 등을 지낸 김철수 사외이사다.

에쓰오일 측은 “우리 회사는 최선을 다해서 특화산업단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지난해부터 RUC/ODC 프로젝트 투자금 회수 지연, 정제 마진 급락,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경영환경이 급변했다”며 “온산공단에서 진행할 대규모 투자와 동시에 대산투자를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져서 토지를 매각하는 고육지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38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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