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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 두 얼굴-된서리 맞은 ‘메가 브랜드’] 빈폴스포츠 시장 철수, 패션업계 후폭풍 분다 

 

매출 높아도 효율성 떨어져 ‘아웃’… 해외사업 타격에 온라인 진출 서둘러

▎ 사진:빈폴스포츠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넘기며 ‘메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빈폴스포츠’가 시장에서 철수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현재 백화점 등 100여 곳에 입점한 빈폴스포츠 오프라인 매장을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정리한다고 밝혔다. 50여 개 매장을 보유한 ‘빈폴액세서리’ 역시 하반기 중 오프라인에서 철수하고, 온라인 전문 브랜드로 전환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패션업계 전반이 어려운 상황에 ‘선택과 집중’을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빈폴아웃도어’에서 개편된 빈폴스포츠는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스포츠 의류를 내세우며 침체된 아웃도어 시장의 틈새를 노렸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시장에 안착하는 듯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패션사업이 어려워지자 정리대상 1순위에 올랐다. 높은 매출을 올렸지만 그만큼 매장 수가 많아 비용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1분기 실적도 좋지 않다. 의류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1분기 31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매출액은 357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1.8% 줄었다. 대표 브랜드 격인 갤럭시·빈폴이 부진한데다 에잇세컨즈의 누적 적자만 1000억원이 넘는다. 위기감이 고조되자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연말까지 희망자에 한해 무급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주 4일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임직원 급여를 삭감하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라푸마’ 떼어낸 LF 어렵고, 한세는 ‘FRJ’ 매각 검토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부진한 브랜드를 정리해왔다”며 “점포 위약금 등 단기출혈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빈폴스포츠의 전면 철수를 결정한 점은 의외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은 하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빈폴액세서리처럼 온라인 브랜드로 방향을 틀어 육성하는 방안이 우세하다”고 덧붙였다.

패션업계는 대형 브랜드의 철수 사례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아웃도어 브랜드는 2010년을 전후해 ‘아웃도어 전성기’를 지나며 빠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2014년 정점을 찍은 후 시장의 급속한 침체로 매출 규모 대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라푸마’도 마찬가지다. LF가 2005년 들여온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로, 2010년 연매출이 2500억원에 달했지만 철수를 결정한 지난해 매출은 1000억원으로 반토막이 난 상태였다. 라푸마를 떼어낸 후에도 침체는 계속된다. LF 패션부문의 1분기 법인세비용 차감 전 순손익은 34억7100만원으로 전년 동기 276억1100만원보다 87.4% 감소했다. 매출액은 3840억원에서 2847억원으로 25% 줄었다.

한세실업은 5년 전 인수한 캐주얼 브랜드 ‘FRJ’의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전문 기업인 한세실업은 2015년 FRJ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인의류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며 300억원대 브랜드로 외형을 키웠다.

그러나 한세실업의 강점인 ODM 분야가 발목을 잡았다. 총 매출의 90%가 수출에서 나오는 업의 특성상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셧다운과 함께 동남아와 중남미에 집중된 해외공장 역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브랜드 사업을 전개하는 한세엠케이의 올 1분기 매출은 468억원으로 전년 대비 39.2% 하락했고, 영업이익은 -48억원으로 연속적자를 기록했다.

신성통상의 SPA브랜드 ‘탑텐’은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며 2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상 최대치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신성통상의 1분기 매출은 2123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0.2% 감소하는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67억원을 기록해 적자전환했다. 탑텐을 비롯해 ‘지오지아’·‘폴햄’ 등이 가격대비 합리적인 가격대를 내세우며 공격적인 영업을 이어갔지만 코로나19 타격에 판매부진, 물량 공급 과잉 등 각종 악재가 겹쳤다. 회사 관계자는 “미얀마 자체 생산라인을 가동해 품질 대비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LF패션과 함께 ‘패션 빅3’로 불리는 한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인 한섬은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2715억원, 293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각각 13.1%, 11.5% 감소했다. 한섬의 감소 폭이 비교적 적은 것은 ‘타임’·‘시스템’·‘SJSJ’ 등 고가 상품에 주력한 메가 브랜드를 갖춘 덕분이라는 평가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현대백화점그룹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백화점 부문 매출액이 17.7% 줄었고 영업이익은 65.3% 감소했다”고 밝혔다. 내점객 급감으로 국내 여성·남성 패션, 화장품, 식품관 매출이 20% 넘게 하락한 상황에서 한섬은 선방한 모양새다. 전체 매출에서 백화점 매출 비중이 절대적인 한섬은 오프라인 고객이 주를 이룬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섬 측은 “백화점을 방문하는 고객이 한 달 이상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우리 브랜드를 찾는 고객 수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며 “업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기존 고객층이 탄탄해 선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섬 브랜드는 대체로 객단가가 높은 고가 상품에 집중돼 있어 매장의 집객력(고객이 방문하는 정도)이 줄어도 전체 매출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기존 고객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온라인 채널이 코로나19 사태로 고객을 끌며 매출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한섬 브랜드가 해외 아닌 국내 사업에 집중한 점도 위기엔 기회로 작용했다.

방만한 매장 브랜드 위주로 구조조정 흐름

패션업계는 하반기 들어 브랜드 정리 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바라봤다. 특히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빈폴스포츠 철수로 사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중소업체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패션 중견업체 임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그동안 온라인 사업에 소홀했던 브랜드의 한계가 더욱 뚜렷해졌다”며 “방만한 매장 운영 등으로 과도한 비용을 지출한 비효율적인 브랜드 위주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재하다고 생각했던 빈폴스포츠의 갑작스러운 철수 결정이 패션업계에 ‘트리거(방아쇠 역할)’로 작용했다”며 “업계가 이 위기를 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선 결국 ‘될 브랜드’만 남기고, 그마저도 온라인으로 재편해 집중 공략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540호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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