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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투자자’ 워런 버핏은 왜 항공·금융주 팔았나] 코로나19發 산업혁명, 자본시장은 산업교체 패권 경쟁 

 

삼성바이오·카카오·엔씨소프트 급부상, 현대차·포스코·신한금융 추락

▎코로나19로 생산·유통 방식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자동화를 통해 기계와 인간이 협업할 수 있도록 만든 SSG닷컴 물류센터의 모습. / 사진:SSG닷컴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강력한 임금 인상 요구와 생산성 향상 필요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결여는 필요로 이어지고, 필요는 혁신을 끌어낸다. 증기기관은 값싼 석탄만으로도 막대한 생산성을 냈고, 머지않아 철도·배에 쓰이며 물류 혁신을 일으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가 신종 산업혁명을 끌어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공포가 전 세계로 번지며 재택근무나 비대면 거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정교한 정보통신기술(ICT) 요구도 커진다.

코스피에선 ICT·바이오 부상, 자동차·금융 부진


전 세계적 공급 과잉과 경쟁 심화, 인건비 상승 등도 혁신 압력을 키우고 있다. 앞으로 산업 지형도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자본시장도 앞으로 산업 변화의 패권을 누가 쥐느냐 예의주시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기업 순위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큰 폭으로 바뀌었다. 6월 18일 종가 기준 반도체 이외에 국내 시총 상위는 대부분 정보통신기술(ICT)·바이오·배터리 관련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과 비교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전체 시총 비중은 3.73%로 2배 가까이 증가하며 3위에 올랐다. 셀트리온도 1.1%포인트 증가하며 8위에서 5위로 뛰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의약품 판매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감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 수준의 생산능력과 품질,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잇달아 해외수주를 따내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및 대량 생산 기대감이 반영돼 주가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JW생명과학·종근당·일양약품·파미셀·진명생명과학 등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시총 비중이 크게 늘었다.

ICT 기업들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네이버는 이 기간 시총 순위 4위로 변화가 없지만, 시총이 약 10조원 늘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4%에서 2.83%로 커졌다. 카카오는 25위에서 9위로 껑충 뛰었고, 엔씨소프트도 26위에서 14위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언택트로 재택근무 등 근로 방식의 변화와 비대면 거래의 확대, 온라인 콘텐트 사용자 증가 등 코로나19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시장은 판단했다.

디지털 혁신에 나서고 있는 SK도 시총 순위가 16위에서 11위로 크게 상승했다. 온라인 솔루션 기업 더존비즈온의 시총 순위는 94위에서 62위로 향상했다.

배터리 기업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LG화학과 삼성SDI의 시총 순위는 7위, 8위로 각각 2단계, 11단계 상승했다.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 승인과 구조조정 가능성, 테슬라와의 협업, 전고체 배터리 기대감 등이 주가를 밀어 올렸다. 정부의 디지털·그린 뉴딜 정책도 이들 업종의 주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에 비해 지난해 12월 27일 시총 상위를 차지하던 자동차·금융 등 업종 기업들은 추락했다.

당시 시총 순위 6·7위였던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는 전체 시총 비중이 각각 1.74%, 1.66%를 기록했다. 그러나 약 6개월 뒤인 올해 6월 18일에는 시총 순위가 각각 12위, 15위로 크게 밀렸고 시총 비중도 1.49%, 1.24%로 쪼그라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개인의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소비심리 경색으로 자동차를 사려는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에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알릭스파트너스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망 : 불확실성 대응’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최대 3600만대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자동차 제조사 및 부품사들의 투하자본수익률(ROCE)은 2015년 대비 각각 47%, 36% 하락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익성의 악화는 재무건전성을 취약하게 만든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및 50개 부품사는 올 3월 초부터 5월 22일까지 197억 달러(약 23조6800억원) 규모의 신규 차입과 524억 달러(약 63조원)의 한도성 여신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ACEA)도 올해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 대비 25% 급감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올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7050만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자동차부품 기업들의 시총 비중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새론오토모티브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총 순위는 648위에서 727위로 하락했다. 디와이는 495위에서 599위로 떨어졌다. 지코도 시총 순위가 777위에서 854위로 미끄러졌고,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돼 현재 거래정지 상태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철강·전기·기계·시멘트 등 정통 제조업 관련 기업의 주가 부진도 두드러졌다. 포스코의 시총 순위는 11위에서 17위로 떨어졌고, 한국전력도 18위에서 23위로 밀렸다. 구조조정 위기에 몰린 두산은 148위에서 198위로 떨어졌고, 세아제강·성신양회 등 기업의 주가도 부진했다.

MS·애플·구글·아마존 등 IT 공룡 쏠림 심화 예상


대출 증가와 안정적 이익 창출 능력으로 꾸준히 시총 순위 상위를 지키던 금융 종목도 부진했다. 시총 순위 10위이던 신한금융지주는 18위로, 13위이던 KB금융지주는 13위에서 19위로 고꾸라졌다. 한국금융지주는 58위에서 75위로, BNK금융지주는 88위에서 109위로, 메리츠금융지주는 121위에서 133위로 각각 하락했다.

특히 보험 업종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큰 폭으로 순위가 하락한 것을 비롯해 동양생명·미래에셋생명·한화생명·흥국화재·코리안리 등 보험사 시총 비중이 대폭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날 거란 우려 속에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고착화로 운용 수익이 감소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고령화 문제와 새로운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른 자본금 확충 부담 등 구조적 요인도 보험업의 비관론을 키웠다.

주가는 경제의 선행 지표다. 산업 지형도의 변화를 예측, 반영한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돈을 벌 것으로 예상하는 업종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미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ICT·바이오 트렌드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 주식시장에 안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96년부터 글로벌 시총 상위 기업들을 살펴보면, 각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1990년대 중반엔 냉전 종식과 미국 중심주의, 세계적 경제 성장으로 제너럴일렉트릭(GE)·코카콜라·엑슨모빌 등 가전·에너지·소비재 기업이 선전했다. 당시 일본 경제가 부상하며 NTT·도요타 등 기업도 세계적으로 많은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인터넷의 보급과 PC의 대중화,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핸드폰이 등장한 2000년 전후에는 혁신을 주도하던 통신·IT 기업들이 주목받았다. 글로벌 시총 상위 10개 기업 중 GE와 엑슨모빌·월마트를 제외하곤 모조리 이들 통신·IT 기업이 차지했다. 시스코·오라클 등 기업은 혜성처럼 등장해 단숨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IT의 영광은 짧았다. 닷컴 버블이 붕괴한 2002년에는 대다수 기업의 시총이 반 토막 났다. IT 기업들은 고개를 숙인 데 비해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난 월마트·존슨앤존슨·BP 등 유통·에너지 기업이 다시 주목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는 순간인 2008년 9월에는 고유가를 맞아 에너지 기업들의 시대였다. 당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6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엑손모빌·페트로차이나·가스프롬 등 에너지 기업이 강세였으며,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HSBC 등 금융주도 선전했다.

2008년 이후부터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ICT 기술 발전으로 M·A·G·A(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아마존)와 같은 거대 IT 플랫폼 기업의 전성시대가 막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 완화로 시장에 돈이 풀리며 이들 기업의 시총은 각각 1조 달러(약 1206조)를 훌쩍 넘었다.

버핏도 산업패러다임 변화 예상, 항공·금융 매각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거래가 일반화되고, 업무도 이들 ICT 기업 플랫폼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빅 테크’ 기업의 강세는 더욱 강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시총 상위 10개 기업은 증시 전체 시총의 30~50%를 차지하며,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순서가 바뀐다”며 “새로운 기업이 시총 10위 안에 진입하면 대개 2년 이상 지위를 유지한다. IT·바이오 등 업종이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주도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가격이 싼 가치주에 장기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워런 버핏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큰 손실을 감수하고도 항공주·금융주를 대량 매도했다. 이는 버핏이 현재 산업에 큰 틀의 패러다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뉴노멀’ 환경에서 외면 받는 기업의 주가는 바닥에 머물기 일쑤다. 신기술 도입이나 사업 전환 등의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가 부진은 장기 지속한다. 예컨대 한국 조선해양으로 이름을 바꾼 현대중공업의 경우 조선업 경기가 활황이던 2011년 주당 50만원을 기록한 뒤로 주가가 계속 미끄럼을 탔다. 2013년 이후로는 20만원을 넘어본 적이 없고, 현재는 10만원 안팎에 정착했다.

KT 역시 10년 전 5만원 선이던 주가가 현재는 2만~3만원 대에 머물고 있다. 유틸리티 기업은 신규 사업 등 새로운 모멘텀이 없으면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기 어렵다.

이런 산업의 패권 교체는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미국의 세계 최대 렌터카 업체 허츠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달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앞서 미국의 대형 의류 소매업체 J크루도 매장 판매 부진 등으로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미국의 대형 백화점 니먼 마커스, JC페니도 부채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궁지에 몰렸다.

이에 비해 아마존 주가는 3월 1600달러대에서 최근 2700달러대로 60% 이상 올랐고, 우버도 이 기간 15달러에서 현재 30달러대를 회복하며 고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산업지형 변화 반영해 ICT주에 더 쏠릴 듯

일본 역시 시총 변화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1위 도요타는 올 1월 말 시총이 25조엔(약 281조원)으로 당시 테슬라 시총의 2배에 달했으나, 6월 중순에는 22조9000억엔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본의 스마트팩토리 기업 키엔스는 시총 순위 6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키엔스는 공장이나 물류 시설을 간소화할 수 있는 센서 개발사다.

소재·부품 기업인 SMC와 의료정보 플랫폼 기업 M3의 시총 순위도 43위, 65위에서 각각 28위, 44위로 점프했다.

이에 비해 금융업인 미츠비시UFJ는 7위에서 15위로, 닛산자동차는 53위에서 75위로 떨어졌다. 특히 닛산 등 자동차 기업들은 판매량 확대를 위해 과잉 설비 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 침체의 타격이 더욱 컸다.

캐나다도 시총 순위 1위가 로열뱅크오브캐나다에서 쇼핑 플랫폼 쇼피파이로 최근 바뀌는 등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에서 산업 패권이 바뀌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칼럼을 통해 “산업 구조의 격변은 주식 투자 전체를 바꾼다. 가격이 저렴한 주식을 노려볼 수는 있지만, 뉴노멀에서 무용지물이 된 기업 주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결국 경영자의 결단에 달려 있으며, 자본 시장은 기업의 변신을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41호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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