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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의 IT 사회학] 학군과 직장이 만들어낸 욕망 ‘부동산’ 

 

‘1번지’ ‘밸리’ 등 브랜드로 대중 자극… 재택·원격근무가 욕망 꺾을 수 있을까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온라인 지도에서는 길을 찾다가 그 목적지를 한 번만 더 눌러도 매매가와 전세가가 드러난다. 친구네 집 찾아가려다가 굳이 몰라도 될 집값까지 알아버리고 만다. 집은 거리에 전시된 어엿한 상품, 즉 욕망의 대상으로 상품화된다.

다양하게 시도되는 부동산 정책 변경은 행동의 폭을 제한하는 동시에 구매 심리도 자극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지금 아니면 못 사요”의 타임 마케팅 효과를 낸다. 비교하다가 초조해진 마음을 부추긴다. 정보의 양과 속도가 빨라진 시대. 사람들의 욕망이 축적되고 계산되고 정리된다. 이 과정에서 수요가 실제 필요로 함을 넘어 욕망이 되면 공급과 무관하게 시장가격은 올라가곤 한다.

부동산 수요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교육, 또 하나는 직장이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70% 선의 대학 진학률(2008년 이래 줄곧 OECD 1위). 자녀를 위해서라면 과잉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요층에게 강남8학군이니 대치동이니 ‘교육1번지’라는 별명은 성능을 약속하는 브랜드처럼 들린다. 한편 테헤란로는 지난 세기말부터 불야성을 이루며 많은 벤처기업의 성공 신화를 잉태했다. 이 ‘테헤란 밸리’의 성장스토리는 마치 실리콘 밸리가 그랬듯이 지역의 중흥을 불러왔다. 모두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했기에, 회사가 그곳에 입성하는 일은 중요해지기도 했다. 개발자 등 첨단 인력을 모시기 위해서는 강남이나 판교에 사무실이 있어야 한다는 도시 전설은 현실이기도 했다. 이는 어엿한 기호적 소비다.

학원과 일터는 어디에나 있지만 ‘1번지’니 ‘밸리’니 별칭이 붙어 상품이 되고 프리미엄을 붙인다. 브랜드라고 설득할 수 있으면 가격을 올릴 수 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 다른 나라에는 보기 드문 상표가 붙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욕망을 드러내는 기호가 만들어진다.

배우고 일하기 위해서 그 중심지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초조감 덕에 교육과 일이 만든 욕망의 도시는 그렇게 팽창해 갔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20세기적 이야기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능적 소비를 넘어선 이 기호적 소비 풍조에 불을 지피는 일들이 발생한다.

‘욕망의 가시화’라는 21세기적 현상

어느 나라에나 명문대학은 있다. 좋은 학교에 가고 싶은 욕망도 어디나 있다. 하지만 대학 서열화가 한국처럼 선형적으로 이뤄진 곳은 찾기 힘들다. 게다가 서울이라는 단 한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곳은 더 드물다다. 도시국가도 아니고 이 인구와 국토를 지닌 국가 중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굳이 동경대가 아니라도 교토대가 있고, 하버드가 아니라도 스탠포드가 있고 MIT가 있고 또 수많은 명문 주립대가 있는 식으로, 나름의 학풍과 존재감이 선형적 서열화를 거부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한국은 ‘인서울’의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를 주문처럼 암기하고 있으니 서울 한 곳에 대중적 욕망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선형적 서열화에 대한 집착은 인터넷과 함께 시작되었다. 재벌기업에서 유출된 대학별 입사 사정기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더니, 주문 같은 서열이 만들어져 떠돌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취직이 힘들어진 시대이기에 이 근거 없는 표 한 장과 암송문은 차별화 욕망을 자극하고 가시화한다. 마치 주가 중계라도 하는 듯 언론도 대학평가 게임에 가세했다. 인터넷 유행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분위기가 되고, 인상이 되고, 인식이 되고, 급기야 사실이 된다.

이런 인터넷의 덧없는 ‘밈(Meme,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 놀이에 지방 거점대학은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바라봤을 터지만 이는 마케팅 전략과 정책의 실패였다. 세일즈 포인트를 만들지 못했다. 닌텐도는 교토에 있고, 도요타는 지명이자 본사 소재지이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실리콘 밸리가 아닌 시애틀에 있고, 월스트리트와 실리콘 밸리는 서로 국토 반대편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이야기가 없이 그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만 있는 듯하다. 지방은 욕망의 기호가 되지 못했다.

‘욕망의 가시화’란 정보 산업의 본질이다. 점수를 매기고 표를 만들고 정렬하고 시각화한다. 사람들은 수치화된 욕망을 서로 비교하며 집착하고 관심은 곧 트래픽이 된다. 서열 놀이는 어찌나 재미있는 일인지 문화가 되기도 한다.

숨겨진 욕망을 가시화해 드러내는 콘텐트는 이처럼 인기가 있다. 비교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고 그리고 부추기는 일. 견물생심에 군중심리, 후회회피까지 온라인에 녹아 있는 행동경제학의 전략을 소비자는 이기기 힘들다.

그렇다면 집값이 내려가는 때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수요가 줄어들 때, 욕망이 멈추거나 종류가 변할 때다. 건국 이래 줄어든 적 없는 젊은 세대의 상경 욕망이 꺾인다면 서울 집값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의 원료인 욕망이 줄어든다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집값 걱정할 때가 아닐 정도로 큰일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욕망이 사라지거나 달라지는 날

하지만 욕망의 방향이 변할 수는 있다. 예컨대 서울에서의 교육과 일터가 덧없는 일이라고 깨닫게 되는 일이다. 고도성장이 멈춘 오늘날. 지방에 더 알찬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면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할 수도 있다. 어차피 서울로 유학 가봐야 취업할 수 없다면, 서울에 취직해 봐야 별 볼일 없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는 일종의 충격 요법이 될 수도 있었다. 출근도 등교도 하지 않아 보니,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서다. 유튜브만도 못한 온라인 강의를 듣다 보니 대학교육의 생산성과 가성비란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지방의 경승지에서 원격근무를 할 수만 있다면 도심에서의 궁핍한 생활을 이제 접고 싶어질 수도 있다.

구글은 내년 여름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은 10년 내 직원 50%가 원격근무를 할 것이라고, 트위터는 원하는 직원은 언제까지나 재택근무를 허용할 것이라고 했다. 생산설비 및 고객 앞에 직원이 도열할 필요가 없는 인터넷 기업이나 할 수 있는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뉴스 덕에 그동안 중요하다 여겼던 근태가 반드시 생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만은 이제 모두 깨닫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실리콘 밸리의 월세는 전례 없이 빠르게 하락 중이다. 그런데 테크 기업의 원격 근무는 실리콘밸리의 부동산 가격을 정말 떨어뜨렸을까? 월세는 떨어졌지만, 집값은 오히려 올랐다고 한다. 낮은 금리와 테크 기업의 주가 부양으로 오히려 이때다 싶은 매수자들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욕망은 쉽게 멈추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547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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