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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사태에 휘청거리는 금융업계 판도] 신한금융, 멀어져가는 금융그룹 선두 지위 

 

연이은 사모펀드 사고에 기약 어려워진 초대형 IB 인가

▎라임사태 피해자들이 지난 3월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를 판매한 금융사들이 투자자 피해액 전액 배상 권고를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금융업계 전반이 주목하고 있다. 국내 금융그룹 지형도는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와 독일 헤리티지 DLS(파생결합증권) 등과 관련한 충당금 일부가 반영되면서 한차례 지각변동을 경험했다. 여기에 전액 배상이 결정될 경우 여파가 지속될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이다.

지난 7월 1일 금융감독원은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와 관련한 분쟁조정위원회 결과를 공개하고 라임자산운용과 신한금융투자에게 투자금 전액 배상 권고를 결정했다. 권고안 수용기한은 7월 말까지였지만 금융사의 연장 요청을 받아들여 8월 27일로 미뤄졌다. 금감원에서는 권고사항인 분쟁조정 제도에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언급이 나오면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8월 11일 진행된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편면적 구속력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내놨다.

금융당국의 권고안을 수용할지 여부는 국내 5대 금융그룹 가운데 누가 선두에 위치하고 있는지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2020년 1분기까지 순이익 기준으로 선두에 섰던 신한금융그룹이 2분기에는 KB금융그룹에게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지주사 지배주주 순이익을 기준으로 신한금융그룹은 2018년과 2019년 연간실적에서 KB금융그룹을 따돌리며 국내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2020년 들어서도 1분기까지는 9324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7295억원에 그친 KB금융그룹보다 우위에 섰다.

KB금융에 덜미 잡힌 신한금융


공고할 것 같았던 신한금융그룹의 지위는 2020년 2분기에 뒤집혔다. 신한금융그룹은 2분기 8731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9818억원을 기록한 KB금융그룹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선두 자리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금융투자업계를 뒤흔들었던 각종 사모펀드 관련 사고다.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와 독일 헤리티지 DLS(파생결합증권) 등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긴 분쟁 상품을 판매했던 신한금융투자가 충당금을 쌓으면서 순이익이 줄었다.

신한금융투자는 헤리티지와 라임 펀드 관련해 판매액 대비 3분의 1 수준의 충당금을 쌓았다. 헤리티지 펀드와 관련해 3799억원 가량을 판매한 신한금융투자는 1248억원을 충당금으로 적립했다. 라임펀드와 관련해서는 2119억원을 판매해 769억원을 영업외비용으로 반영했다. 덕분에 신한금융투자의 2분기 순이익은 104억원에 그쳤다. 2019년 2분기 719억원, 2020년 1분기 467억원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다. 반면 KB증권은 2분기 순이익으로 1502억원을 거둬들이며 KB금융그룹의 선두 탈환에 힘을 보탰다.

충당금 규모만 놓고 보면 신한금융투자의 2분기 실적은 단기 이벤트로 치부할 수 있다. 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사태로 인해 2분기에 충당금이나 영업외비용으로 반영한 금액 2016억원은 신한금융그룹의 덩치를 감안하면 큰 금액은 아니다. 같은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쌓은 충당금이 1806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회성 이벤트로 생각할 수 있는 규모다.

문제는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각종 사모펀드 사고에 계속해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에도 알펜루트자산운용의 채권형 사모펀드 환매 연기와 홍콩계 헤지펀드 젠투(Gen2) 파트너스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젠투파트너스의 사모펀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해당 펀드에서는 지난 7월 1조900억원 규모의 투자금에 대해 환매를 연기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이 가운데 4000억원 가량을 판매해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를 담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 대부분이 사모펀드 사고에 몸살을 앓고 있지만, 2019년 이후 발생한 사모펀드 관련 사고에서 판매 규모 1, 2위에 해당하는 대형 사고에서 판매 상위에 이름 올린 곳은 신한금융투자다. 따라서 이들 사고에 대해서도 배상 권고가 나올 경우 연내 신한금융그룹의 선두 탈환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2분기에 분쟁이 발생한 상품에 대해 2000억원의 충당금 적립이 이루어졌으나 추가 적립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분쟁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징계 불확실성만으로도 부담

각종 사모펀드 사고와 관련한 배상액과는 별도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것만으로도 신한금융그룹에게는 부담이다. 당장 신한금융투자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입성은 기약하기 어려워졌다.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규모 4조원 이상을 확보한 증권사가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2배까지 만기 1년짜리 어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발행어음 사업을 신청할 수 있고, 레버리지 규제와 외국환 업무 등에서 혜택이 주어진다. KB금융그룹에서는 KB증권이 지난 2017년 초대형 IB 인가를 받았다.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초대 형IB 인가에 나설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다. 지난 2019년 8월 66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면서 2019년 3분기말 자기자본 4조원을 넘겼다. 2020년 들어서는 김병철 전 대표가 신년사를 통해 ‘초대형 IB로서의 위상 확립’을 내걸며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신한금융투자는 라임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징계를 기다리는 입장이라 초대형 IB 인가를 신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전 대표 역시 지난 3월 라임자산운용 투자자 손실 관련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금융당국에서는 금융사고 등으로 중징계를 받은 증권사에 대해서는 최장 5년간 초대형 IB 인가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라임 사태와 관련한 손해 배상과 별도로 판매사에 대한 징계를 위한 제재심의위원회를 오는 9월 개최할 예정이다. 신한금융투자 입장에서는 라임 사태와 관련한 징계 수위가 확정되지 않는 한 초대형 IB에 도전장을 내기 어려운데다 연이어 발생한 사모펀드 사고에도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초대형 IB 인가 신청과 관련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49호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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