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Home>이코노미스트>Special Report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상징뿐인 승진’ 서두른 이유] ES식 책임경영 & 지배구조 개편 시그널 

 

수석부회장 취임 때도 ‘최대 위기’ 극복… 승진 소식에 글로비스 주가 급등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10월 14일 ‘회장’으로 승진했다. 2018년 9월 그룹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약 2년만이다. 그런데 이번 승진엔 의문도 뒤따른다. ‘사실상 정의선 체제’인 현대차그룹에서 회장 승진은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선 인사의 의미를 ‘위기 극복을 위한 책임경영을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 코나 일렉트릭 화재사태로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시장 공략 전략이 위기를 맞은 가운데,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정 회장의 ‘상징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기도 한다.

코나 화재에 흔들린 미래차 전략 바로잡나

임시이사회를 통해 결정된 이번 승진은 현대차그룹 기업구조에 있어서 큰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부터 이미 정의선 체제로 운영돼 왔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 회장은 이미 2018년 9월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란 직함을 만들어 회사의 부회장단과 차별화된 위치에 올라섰고, 올해 3월에는 정 명예회장을 대신해 현대차 이사회 의장에 오르며 기업 의사결정구조 정점에 오른 바 있다.

이번 승진은 정몽구 전 회장(명예회장)의 ‘은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룹 회장’은 상법상 공식적인 직책이 아니다. 이번 현대차그룹의 인사에서 공식적 의사결정구조 변화는 정 명예회장이 유일하게 대표이사직을 유지했던 현대모비스에서 물러났다는 점이다.

승진으로 정 회장의 역할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없다. 정 명예회장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사라졌다는 것 정도다. 재계 한 인사는 “이전과 변한 것은 고위급 임원의 인사에 대한 권한과 자율성이 더 커졌다는 것 정도”라고 평가했다.

관심이 모이는 건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이번 회장 선임은 정 명예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연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굳이 정기인사가 아니라 ‘임시 이사회’까지 열어 회장으로 선출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룹 회장이라는 위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름뿐인’ 자리기 때문에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이사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정 명예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7월부터 지병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 측은 “정 명예회장의 병세는 호전 중이며, 이번 인사와 정 회장의 건강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이 당면한 위기와 이번 인사를 연관 짓기도 한다. 코나 일렉트릭의 연이은 화재 사태가 대표적인 리스크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은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총 13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 속에서 현대차는 내년 초 전용 플랫폼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출시하며 전기차 시대를 열어젖힌다는 계획인데, 코나 일렉트릭 화재 사태가 현대차그룹 전기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현대차는 최근 해당차량 보유 고객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내고 리콜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사태를 수습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리콜의 적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주요 협업회사인 LG화학은 자동차안전연구원 조사 결과에 대해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정 회장이 앞서 수석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기아차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연비 문제로 환경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발생했는데, 회사 차원에서 모든 손실을 보존하는 등 기존과 다른 소비자 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바 있다”며 “코나 일렉트릭 화재 사태에서도 소비자의 우려를 해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빠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취임 일성에 코나 일렉트릭 화재사태가 직접 언급되진 않았다. 다만 “고객의 평화로운 삶과 건강한 환경을 위해 성능과 가치를 모두 갖춘 전기차로 모든 고객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이동수단을 구현하겠다”는 말에 현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다.

정 회장의 승진이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은 앞서 2018년 ‘수석부회장’에 오를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설득력을 갖는다. 2018년 현대차는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발사체) 보복 사태와 내수 부진 등으로 별도기준 첫 적자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었는데, 정 회장은 이해 9월 수석부회장에 오른 바 있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책임경영에 나섰고, 이후 실적은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코나 일렉트릭 화재사태뿐 아니라 거대한 변화가 몰려오는 자동차업계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에 재임하며 이미 현대차그룹의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구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면서 전기차는 물론이고 수소연료전지차와 UAM, 로보틱스 등 그룹이 집중할 분야를 설정했다. 자율주행 분야에선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업체인 앱티브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주목받는 플레이어로 도약하기도 했다. 자신이 그려 놓은 밑그림을 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현실화 하겠다는 의지라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 회장의 취임을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보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그룹의 실체적 지배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주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이에 앞서 그룹의 대표자라는 ‘상징성’을 공고히 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룹 대표자 ‘상징성’ 공고해져

현재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를 앞두고 어떤 방식으로건 지배구조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정 회장이 가진 현대차그룹 핵심계열사 지분은 현대차 2.62%, 현대모비스 0.32%, 기아차 1.74% 등 미미한 수준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가진 지분(현대모비스 7.13%와 현대차 지분 5.33%)을 상속받아도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그룹 지배력 확보가 쉽지 않다.

그룹은 2018년 5월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분할 및 합병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정 회장의 지배력을 확보하려 했지만 일부 주주의 반발에 부딪혀 포기한 바 있는데, 이런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상징성’을 키우는 작업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시장 역시 이런 가능성을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의 취임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핵심계열사의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그가 최대주주(23.29%)인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는 급등세를 보였다. 현대글로비스가 앞으로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56호 (2020.10.2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