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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에게 남녀차별은 ‘낭비’] “바퀴 하나 없는 자전거가 글로벌 경쟁 이기겠나” 

 

유리천장과의 싸움 선도… “여성 사장 나와야”

▎이건희 회장이 2011년 7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비교전시회를 참관한 뒤 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모습 / 사진:삼성전자
“늘 보잘것없는 제게, 배움이 짧은 제게 ‘거지 근성으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라고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21대 국회의원인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에서 고인을 추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양 의원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이다. 이제는 국회의원이 됐음에도 그를 설명하는 가장 임팩트 있는 말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큰 상징성을 갖는 그의 성공 스토리가 그를 국회에 입성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졸 출신 여성이 제조업 연구개발 분야에서 임원에 오른 사례는 삼성전자는 물론 제조기반 국내 대기업에선 최초의 일이었다.

물론 양 의원의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여상을 졸업하고 1985년 고졸 사원(연구원 보조직)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양 의원이 임원직에 오르기까지 기울인 노력은 평번한 이들이 감히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임원’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삼성전자’의 기업철학과 시스템이다. 이 회장은 양 의원이 수학한 사내 기술대학교(현 삼성전자공과대학교) 등 인재양성 시스템을 만들었고,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수차례 내리며 위에서부터의 ‘유리천장 깨기’에 앞장섰다. 국내 최고 기업의 수장이 여성인력 활용에 적극 나섬으로써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 전반의 유리천장 타파를 10년은 앞당겼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보여주기’ 아니라 철저히 기업인의 눈으로

재계에선 이 회장이 1987년 취임한 이후 삼성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여성 인력 확대’를 꼽는다. 당시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 특히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에선 관리자 급의 여성인력은 전무했다. 하지만 그가 취임한 이후 삼성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문 인력’으로서의 여성 채용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관리자를 넘어 ‘임원’에 도달하는 사례가 한국 대기업 중 처음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회장은 생전 우리 사회와 기업이 여성이 지닌 잠재력을 잘 활용한다면 훨씬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취임 후부터 기존의 남녀차별 관행을 모두 걷어내는 일에 몰두했다. 삼성은 인사개혁을 통해 차별적 관행을 타파하고, 우수한 여성인력을 육성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기 위해 각종 방안을 마련했다.

본격적인 변화는 1992년부터 나타났다. 상반기에 여성 전문직제 도입으로 비서전문직 50여명을 공개채용하며 여성 채용을 늘렸다. 그 해 하반기 공채에선 성 차별을 완전히 배제한 공개 경쟁 채용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금융권을 제외하곤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당시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이 같은 채용제도가 도입됐다”며 “이와 함께 기존 직제와 제도를 개편해 여성인력 육성 방안을 수립하라는 지시도 이 때 나왔다”고 말했다.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한 이후 이런 기조는 본격화됐다. 그해 공개채용에서 삼성은 전 계열에 걸쳐 500여 명의 대졸 여성을 채용한다. 연말에는 최초로 여성 경력사원 선발에도 나섰다. 당시 여성인력이 가장 많았던 광고 계열사 제일기획이 가장 먼저 실시했다. 묵시적으로 수행되던 여성 채용 상한선을 없애고, 남자사원과 차별되던 승진 규정도 삭제했다. 광고제작 부서에서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여성전담팀을 구성하는 한편, 여성인력의 근무를 영업 분야까지 넓힐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도 수립했다. 제일합섬(現도레이케미칼)에서는 사무관리직과 생산직, 남녀 구분 없이 동일한 단일 호봉제를 도입했다. 그 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과감한 여성인력 등용정책을 펴는 데 대해 1000만 여성을 대표해 지지와 환영을 표한다”는 공문을 삼성그룹에 전달했다. 제일모직과 제일합섬에 도입된 변화들은 1995년부터 전 계열사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1993년 말 단행된 그룹 인사에선 삼성생명에서 국내 10대 기업 최초로 여성 임원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에도 국내 여성 인력 활용에 있어서 삼성은 최초의 타이틀을 계속 쥐었다. 2000년부더는 매년 그룹인사에 여성 임원이 포함됐고, 제일기획 부사장까지 역임한 최인아 상임고문과 같은 스타급 기업인들도 속속 배출했다.

주목할 건 여성인력 확대를 바라 본 이 회장의 철학이다. 1997년 출간된 이건희 회장의 자서전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로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중략)…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당사자가 겪게 될 좌절감은 차치하고라도 기업의 기회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이 문장엔 ‘여성인력’을 바라본 이 회장의 시선이 오롯이 담겼다. 비단 ‘남녀 평등’이란 구호를 위해 성차별을 없애자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여성인력을 차별하는 문화와 제도 자체가 낭비’라는 철저히 실용적이고 기업인적인 시선이 드러난다. 남성에겐 없는 여성적 감수성이 보완돼야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도 녹아있다.

실제 이 회장이 추진한 ‘남녀 차별 타파’는 기업인으로서 ‘인재에 대한 갈구’에 가까웠던 만큼 가식이 아닌 진심이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신경영 선포 이후 그룹 비서실과 인력개발원에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여성인력 확대에 공을 쏟았다. 이는 실질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들로 이어졌다. 기혼 여성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을 강조했던 이 회장은 서울은 물론 전국 주요 사업장에 기혼 여성을 위한 어린이집을 설치했다. 인력개발원에서 실제 여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사해 도출한 결과였다.

끝나지 않은 삼성의 ‘유리천장 부수기’

이 회장의 유리천장과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최고경영자의 지시가 제도를 바꿀 순 있을지언정 보이지 않는 차별과 뿌리 깊게 박힌 어긋난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후에도 여성인력 활용에 있어 끝없이 강조했다. 2003년 출간된 책 [이건희 개혁 10년]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03년 이학수 전 부회장에게 그 해 경찰대 1~3등을 모두 여성이 차지한 것을 이야기 하며 “여성인력 활용이 아직도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후 자동차 생산직에까지 여성 채용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는 와병 전인 2011년 가졌던 여성 임원과의 오찬에선 “여성 임원이 사장까지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유리천장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여성 사장’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 게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삼성그룹에 여성 사장은 전무하다. 이 때문에 삼성의 여성 인력 활용 드라이브가 멈춰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2011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향후 10년 이내 임원의 10% 이상을 여성으로 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명시돼 있는데, 2020년 상반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여성임원 비중은 절반 수준인 5%(1058명 중 57명)에 그친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58호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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